호랑가시나무 열매와 함께
나는 가능하면 새벽 미사를 다닌다. 추운데 새벽에 어떻게 나가냐고 하지만 실은 하나도 안 춥다. 어둑한 거리에 터벅터벅 혼자 성당 가는 길은 마음이 제일 가볍다. 전에는 겨울이 되면 항상 얼굴이 파랗게 질린 듯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얼굴이 고구마를 구워놓은 듯한 검붉은 색상이다. 얼마나 많은 양의 거위털인지 오리털인지를 몽땅 넣어 만든 코트를 뒤집어쓰고 다니면 추위란 것은 없다. 밍크 털도, 거위 털도, 오리털도 다 동물복지를 위해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추워 눈 질끈 감고 있다. 성탄과 연말이 함께 있는 요즘은 어쩌든 정리할 일도, 감사할 일도 많은 계절이다.
성탄절 시즌이 되면 가장 핫한 나무가 구상나무와 호랑가시나무가 아닐까 싶다. 다른 계절보다 캐럴송도 들리고, 구세군의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들리는 계절이면 더욱 그렇다. 요즘은 다들 조화로 된 구상나무 츄리와 호랑가시나무 화환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입구에도 커다란 츄리에 각종 장식을 달고 있고, 전구가 깜빡거리며 인사한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는 별이 반짝거린다.
츄리를 볼 때마다 슬픈 제주도의 구상나무가 생각나서 속상한 기분이 든다. 제주도에서 자라고 있던 멋진 수관을 자랑하는 구상나무의 모습을 본 프랑스 식물학자인 위르뱅포리 신부님이 이 나무를 1907년 미국과 유럽으로 보낸다. 그리고 다양하게 품종이 개량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유명한 구상나무 츄리가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죽어가고 있는 구상나무 고사목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개발하여 멋진 나무로 재탄생하고 있으니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그리고 가장 성탄절에 많이 보이는 성스러운 나무라고 불리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예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자신의 부리로 뽑다가 자신의 가슴을 빨갛게 피로 물들이며 죽은 새가 로빈이라고 하는데 이 새가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성당에서는 호랑가시나무의 가지와 열매로 장식을 한다. 그리고 전에는 성탄절이면 주고받던 크리스마스 카드에 꼭 그려져 있던 톱니 같은 가시 돋친 나뭇잎과 빨강 열매가 달린 호랑가시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이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사랑의 열매’로 만들어져 연말이 되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
난 이 호랑가시나무 잎이 너무 예쁘다. 겨울에 하얀 눈 덮인 빨간 열매와 파란 잎의 각진 부분에 가시가 달린 모습은 한 겨울나무 중 가장 멋진 것 같다. 앞면은 광택이 나는 짙은 녹색으로 반짝거리지만 뒷면은 황록색이다. 봄에 자잘한 백록색의 꽃이 피는데 아카시향이 난다
호랑가시나무는 남쪽의 해안지역에 많이 자라고 있는데 자생지로 부안 도청리 모항에 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그래서 그곳은 카페나 식당의 이름에 할리우드가 눈에 띈다. 영등일에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꺾어 물고기를 함께 문 앞에 매달면 잡귀의 침입을 막는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집들은 없다고 한다. 그런 귀중한 호랑가시나무 자생지가 부안에 있는데도 그곳에 사는 아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관심이 없으면 10년 살고 있는 자신의 집 현관문의 색상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과 같다.
천리포수목원을 자주 가는 편이다. 거기 가면 호랑가시나무와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볼 수 있다. 그곳의 설립자이신 미국인 민병갈 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다는 나무이기도 하다. 언젠가 남쪽 어느 시골에 갔는데 우물가에 완도호랑가시나무가 있는 것을 봤다. 어떻게 여기에 이것이 심어져 있냐고 했더니 전부터 있어서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완도호랑가시나무는 잎에 가시가 없고 부드러운 타원형으로 약간 다르지만 구별해 내기 쉽지는 않다. 아무리 귀중한 보물이라도 진가를 모르면 그냥 물건이 된다.
가을에 광주에 결혼식이 있어갔는데 가로수로 구골나무가 심어져 자라고 있었다. 김대중컨벤션센터 근처였는데 자잘한 하얀 꽃이 파란 잎 안에 숨어있는 구골나무가 있었다. 잎만 보면 호랑가시나무와 흡사해서 보통은 구별하질 못한다. 호랑가시나무는 봄에 꽃이 피니, 가을에 하얀 꽃이 피었다면 구골나무일 것이다. 안면도 수목원에는 구골나무가 엄청 많이 심어져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근처를 다가가면 향기에 멈출 수밖에 없다.
전에는 남쪽지역에 탱자나무도 많이 있었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어가는 나무이지만 서울에서도 가끔은 볼 수 있다. 창경궁 같은 오래된 곳에 가면 볼 수 있다. 무서운 가시에 피는 하얀 꽃이 얼마나 향기를 내는지 안쓰러울 지경이다. 과거에는 죄인을 귀양 보낸 후 집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가두는 위리안치(圍離安置)가 있었는데 이 탱자나무가 역할을 하였다.
다들 가시 달린 나무들이 향기가 진한 하얀 꽃을 피우고, 겨울에도 초록색의 잎을 반짝거리며 그대로 달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가시는 달고 서있지만 추운 겨울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곤 한다. 이 나무들이 왜 가시를 달고 살아가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 결국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호랑가시나무 열매의 형상을 따서 만든 사랑의 열매처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우리 가족과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더 행복한 일들이 많아지길 기원해 보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