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밥상

by 배초향

겨울이라 눈 오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닌 정상적이다. 설 명절이 가까워오는 눈 오는 날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가끔은 생각난다. 시골 출신이라 설 명절을 앞두고 인사 겸 찾아갔다. 도로가 덜컹거려 멀미가 날 정도였다. 다른 곳은 다들 아스팔트가 깔려있었는데 이곳은 하두 덜컹거려 내가 그네 타며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제법 동네가 큰 것 같았는데 문화적인 혜택을 늦게 받은 곳이라고 했다. 남편이 도시로 나와 학교 다닐 때도 호롱불을 켜고 있었다고 노상 얘기한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제일 먼저 만난 분이 두루마리에 갓을 쓰고 계셨다. 먼 친척인 서당의 훈장님이라고 했다. 그 후 그분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신 분이다. 그분 아들도 차관까지 하셨으니 미개해서 갓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도 그 당시 풍경을 말하면 무슨 조선시대 얘기냐고 한다. 시어머니는 정말 키가 작으신 분이셨다. 그 당시에도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셨는데 얼굴에는 만면에 인자를 그리시며 맞아주셨다. 그래도 아들이 저만큼 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하신 시아버지는 그 당시에도 그냥 쳐다만 보고 계셨을 것이다. 정확한 기억이 안 난다. 학생이던 시동생들이 두 명 있었다.


인사를 하고 났더니 방으로 밥상이 들어왔다. 아들만 있었으니 누가 부엌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는 집안이었다. 큰아들을 위하여 차려진 밥상이었다. 큰 상 두 개가 펼쳐지더니 그곳에 반찬이 상다리 부러지도록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은 접시에 담긴 반찬은 내가 처음 보는 장아찌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생선까지 구워 나왔다. 요즘처럼 멋진 요리는 물론 아니었지만 밥을 다 먹도록 한번씩만 먹어도 젓가락이 갈 수 없는 수많은 반찬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아 밥을 먹었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오만가지 반찬을 다 만들어 상을 차려 내셨다. 그 뒤로도 내가 언제 가든지 맛있는 반찬이 수 없이 많았다. 어떻게 그리 생각을 해내셔서 만드시는지. 그리고 시댁만 갔다 오면 얼마나 많이 들고 오던지 내 주변 가족들은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 집 냉장고에서 생강가루가 보였다. 가루 내서 주셨던 것이다.


결혼 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명절이 되면 10여 일 전부터 마른 것부터 만들기 시작하셨다. 나도 가서 거들었지만 지금은 그 옛날 음식을 다 잊어버렸다. 지금은 구태여 어렵게 만들어도 먹을 사람도 없고, 줄 사람도 없고, 특히 그만큼 정성을 기울일 시간도 없다. 그래도 가끔은 시어머니가 차리던 밥상이 생각날 때가 있다. 제사 때가 되면 특히 시어머니가 당신 시어머니가 좋아했다는 음식을 정성껏 만드시는 것을 봤기에 나도 따라서해드린다. 젊어서는 답답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내가 조금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는지는 모르지만 명절과 제사 음식을 정성껏 많이 차린다. 오는 식구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한다는 생각과 돌아가신 부모님들께 식사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차리니 전혀 불편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도 제사 음식 만드는데 손을 보태지만 거의 내가 다 한다.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생것으로 있는 재료들이 칼과 불을 거쳐 멋지게 접시에 담기면 엄청 뿌듯하다. 매일 슈퍼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거의 인터넷 구매를 한다. 냉장고가 4개이다. 무슨 냉장고가 4개씩이나 되냐고 하지만 박스 구입을 하다 보니 그렇다. 여유가 있는 날이면 냉장고 문이 바빠진다.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 중 하나이다. 음식 예쁘게 만들고, 싱크대에 가득 담긴 설거지 깨끗하게 해 두고, 차 한 잔 마시면 최고이다. 가족들 생일도 언제나 집에서 한다.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한상 가득 차려 생일 축하 노래를 한다. 우리 집 토리도 생일축하 노래는 아는지 촛불을 붙이면 난리가 난다. 멍멍거리며 노래를 따라서 한다. 그리고 꽃 한 송이 포장해서 그 안에 신사임당을 넣어 주면 엄청 즐거워한다. 친구들은 사위생일상 차려준 장모는 좋은 건지 부담스러운 건지 모르겠다고 들 한다. 사위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쩌든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생일상을 차려 줄 생각이다. 그리고 제사상도 차려 부모님께 대접하려고 한다.


명절을 앞둔 오늘은 아침부터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안쓰러운지. 오후에 결혼식에 가야 해서 여유 있는 오전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힘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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