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달콤한 맛
뽕나무는 친근한 나무다. 서울의 동 이름에도 뽕나무 ‘蠶’이 많이 들어있다. 잠실, 잠원동 등이다. 비단을 만들어 팔던 실크 로드. 부를 축적해 주던 길이다. 그 길을 만든 장본인은 누에가 만든 고추다. 누에는 뽕잎만 먹는다. 그러니 뽕나무가 얼마나 중요했을까. 잠실이란 누에치기를 관장했던 옛 관청이다. 요즘에야 쉽게 누에를 볼 수 없지만 체험용으로 키울 수 있다.
요즘은 체험할 수 있는 것 모두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보편화되었지만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 수초도 엄청난 가짓수가 있다. 모든 곤충도 다 집에서 기른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다 죽어나가는 생명들도 엄청날 것 같다. 생명의 한살이를 관찰하려고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지면 좋겠다
친구들과 일 박하러 휴양림에 갔는데 한 친구가 누에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숲 해설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누에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누에 씨를 40여 일 뽕잎 먹여 키운다고 한다. 5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네 마리는 다 자라서 고치를 지었는데 이 한 마리는 발달이 늦어 지금까지 고치를 못 짓고 있다 한다. 항상 싱싱한 뽕잎을 줘야 하기 때문에 데리고 왔다. 산에 가서 어린 순을 따와 상자에 넣어줬더니 사각거리면 먹는다. 저녁에 고치를 짓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그날은 맹숭맹숭했다. 그 뒤 이틀 후에 지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에는 알을 낳지만 씨를 낳는다고 표현한다. 볍씨만큼 귀중한 알이기 때문일 거다.
고치를 짓고 있다
나방이 나와 알을 낳는다.- 친구가 촬영하여 보내 줌
60년대에는 시골에서 집집마다 누에 치는 일은 농사짓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서도 양잠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어릴 적에만 시골에서 살아 또렷한 기억이 없지만 누에 치는 계절이 되면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뽕잎을 따와 잎 하나하나 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누에는 까탈스러워 물기 있는 잎은 안되고, 먼지가 묻어 있어도 안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누에 치는 방 앞에 서 들으면 뽕잎 먹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5령이 되어가면 얼마나 빨리 먹던지 금세 뽕잎을 넣어줘야 하곤 했다. 농번기와는 약간 어긋난 계절이어 온통 누에치기에 매달렸다. 누에고치를 팔아 한 몫 잡아 살았던 것 같다.
어려서 아픈 치레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못 살 것 같아 호적도 올리지 않고 있다 일 년 후에 올렸다고 한다. 이름도 늦게 지어 내 이름에 '永'이 들어간다. 오래살라고 지었다고 한다. 덕분에 실제 나이에 비해 주민등록상 생일이 한 살 어리다. 생일이 차이 나는 건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다. 퇴직은 1년 뒤에 해서 좋고, 연금은 1년 늦게 받아 나쁘고 등등. 어렸을 때 아프다고 보약을 많이 먹어 지금 그 보상이 되고 있는지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건강한 것 같다. 김형석 교수님도 어릴적 아파서 내놨다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는 건 어려서 아프다고 잘 챙겨 먹어서 그런것 같다고 하신 걸 들었다.
내가 어릴 적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다. 해마다 그 기억은 뽕나무 열매가 익으면 더 떠오른다. 어릴 적 아팠다는 얘기는 누누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스스로 기억되는 건 5, 6세쯤 되었을까 한다. 기력이 떨어져 있었고, 몹시 목이 아파 말을 할 수 없어 거의 누워 있었다. 장에 갔다 온 엄마가 오디를 사가지고 오셨다. 언니들 몰래 나 혼자만 먹으라고 줬다. 목이 아프다는 핑게로 혼자 먹을 수 있었다. 오디의 달콤함은 나를 벌턱 일어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그때의 달콤한 오디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라는 말은 많이 있지만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오디였다.
그 후로는 아팠던 기억이 별로 없다. 해마다 오디가 나오면 매번 사 먹는다. 그러나 한 번도 그때의 그 맛은 없었다. 지금도 산에 가면 입이 까매지도록 산뽕을 따먹는다. 요즘 뽕나무는 오디의 달콤한 맛 때문에 벌레가 자주 생겨 잘 익은 오디를 먹긴 힘들다. 재배하는 뽕나무의 오디가 커지면서 맛도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
누에는 식성이 까탈스러워 절대 다른 잎은 안 먹고 뽕잎만 먹는다. 그만큼 고귀한 존재인듯하다. 고치 하나는 실을 1.5km 정도 만든다. 가는 비단 실을 만들기 위해 입을 얼마나 많이 움직였겠는가. 번데기가 되어 구황식량으로 보답까지 하며 한살이를 보낸다. 그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이 온전히 주고 사라진다. 그에 걸맞게 뽕나무도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잎부터 뿌리, 열매까지 온전히 사람한테 이로운 것들만 있다. 어린잎을 말려 뽕잎차를 만들어 먹으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혈당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다.
인간은 오롯이 내 것을 다 주는 대상은 자식밖에 없지만 누에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준다.
누에는 스스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한테 모든것을 다 주며 감사표시를 하는 것일까?
누에한테 ' 누에야,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 실다오~.'라고 노래라도 불러줘야 할 것 같다. 뽕잎 열심히 먹고 나에게 달콤한 열매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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