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지 않았던 말

단명할 것이다.

by 배초향


잡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을 자면 누군가에게 빨려 들어가거나 어떤 힘에 의해 가위눌리곤 했다. 그러면서 아팠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서울에 살다 남편 고향 옆으로 이사 가게 됐다. 직원 다섯 가족이 한 아파트 사택에 모여 살았다. 고향이라서 아는 사람과 친구가 많아 외롭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가까운 시골에 살고 계셨다. 한참 마이카시대가 열리던 시기여서 우리도 차를 구입해 시골집에 다니며 모처럼 효도할 수 있었다. 시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소도 키우며 사셨다. 도시에 살다가 돌아온 시동생과 함께 사셨다. 절에 다니던 시어머니는 절(암자)의 스님이 시동생 중매를 하게 됐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산속에 있는 절에 함께 가게 됐다.

산속에 살짝 숨어있는 듯하던 절을 찾아 올라가자 작은 텃밭이 있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산사가 있었다. 장독대에는 마른 나물들이 소쿠리에 담겨 있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곳이었다. 회색 승복을 입은 나이가 많지 않은 스님이 계셨다. 인사를 했는데 계속 나를 바라봤다. 민망할 정도로. 시어머니의 큰며느리라서 그러나 보다 했다. 작은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은 신자들의 가족 사항을 다 알고 있다.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 주었고, 다른 방으로 옮겨 직접 담근 차를 우려 건넸다.

차를 주면서 말하셨다. 며느리도 알아야 한다며 나에게도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했다. 지금 작은며느리 중매가 문제가 아니다. 큰며느리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큰며느리 관상이 단명할 상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시어머니는 더 놀라서 어쩔 줄 모르셨다. 얼굴이 파랗게 질리셨다. 중매 얘기는 이미 끝나버렸다. 뭔가 기도문을 써 주면서 이것을 열심히 외우며 기도하라고 했다. 꽤 길었지만 받아왔다. 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하셨다. 그래서 기도문을 외우고 다녔다.

아이들이 막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더 어지러웠다. 내가 단명할 것이라는 얘기는 세 번째 듣는 말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다 보니 당장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머리가 더 아프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을 울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적 다섯 살 무렵부터 나만 듣던 말이 있었다. 딸이 많아 그리 귀하게 크지 못했는데 아프기도 자주 했다. 출생신고도 1년 지난 후에 해서 주민등록증 나이가 한 살이 적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아파 내 이름의 ‘영’ 자는 ‘永’을 썼다고 했다. 오래 살라고. 산골 마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마을로 넘어가던 길에 움막 같은 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당골네가 살았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당골네라고. 그리고 동네에서 굿을 하곤 했다. 굿하던 곳에 몇 번 가서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당골네는 징을 치며 잎 달린 대나무로 그날의 주인공을 막 때리며 주문을 외쳤다. 그러면 사람들이 허리 굽혀 절을 하고 굿은 절정에 이른다. 생각하면 동네잔치 같은 모습이었다. 대여섯 살 무렵의 일이 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지. 잊고 싶은 일들인데 자꾸 생각난다.

예쁜 아주머니였는데 그 당시 가장 천한 직업이었던 무당이라서 모든 사람이 하대했다. 그 무당이 동네에 나타나면 어른들은 나한테 ‘너네 엄마 온다’고 놀렸다. 인사하라고. 단명할 상이라서 그 무당한테 팔면 기도 해줘 오래 산다는 이유였다. 엄마도 그 말을 수차례 하며 인사하라고 채근하며 당골네에게 쌀을 줬다. 기도해 달라는 시주였을 것이다. 난 매번 엉거주춤하며 도망가기도 하고, 인사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죽지 않고 평범하게 잘 자랐다. 공부 욕심이 많던 아버지는 공부 잘한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도시로 전학까지 시켜줬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객지 생활하게 됐다. 단명할 것이라는 말은 거의 잊혀가고 있던 고등학생 때 또 한 번 듣게 됐다. 자취하던 집에 찾아왔던 스님이 나를 보더니 또 단명할 상이라고 했다. 몇 달을 우울증으로 슬럼프에 빠졌다.

그 뒤 잊고 살았는데 시어머니 앞에서 들은 단명할 상이라는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안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듣고 난 후부터 악몽에 시달렸다. 가위에 눌리고 몸이 많이 피폐해져 갔다. 떨치려 노력했지만 수년 동안 시달렸다. 젊은 나이에 앞날을 받아둔 상태의 삶은 그리 평온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눈물이 나며 우울증이 심해졌다.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 형제나 사촌들도 일찍 돌아가셨다. 나의 우울증은 그런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키우던 토리를 얼마 전 보냈다. 다른 말티즈는 15년씩 산다고 하던데 우리 토리는 열 살을 못 넘기고 가버렸다. 내 운명 때문에 일찍 가버렸을까. 공연히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은 단명에 대한 의식은 희미해졌다.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은 어릴 적 당골네가 기도 해줘서일까. 아니면 시어머니 앞에서 받아 몇 달을 외우고 다녔던 기도문이 효험이 있었던 걸까. 어쨌든 지금은 건강하게 일흔 살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 잘 살았지 않은가. 부질없는 과거의 미신에 얽매여 있었던 걸까. 단명이라는 이미지가 나에게는 머리에 너무 박혀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매일이 귀하게 생각된다. 무릎 꿇고 신께 기도한다. 매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조급해하지 말고, 아등바등거리지도 말고 관조하며 무심한 마음으로 오늘에 충실하며 살고자 한다.


기도하는 손- 인터넷에서 따옴


대문 사진은 주엽나무입니다. 숲 속에서 가장 무서운 나무이죠.



#단명 #기도하는 손 #당골네 #가위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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