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거 할머니를 보고
요즘은 높은 산에 가는 것은 피한다. 괜히 무리하게 움직이다 다치는 일은 시작을 안한다. 가능하면 낮은 산이나 둘레길을 걷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올라갈 때도 항상 조심스럽게 다닌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 보면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이 많다. 당연히 부럽다. 나도 얼마 전에는 저렇게 달려 다녔는데 하며 부러워한다. 다음 차를 타더라도 무리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운동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매일을 살금살금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 버킷리스트가 뭐냐고 물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사냐고 한다.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할머니가 계신다. 온 동네를 하루 종일 빙빙 돌고 다니니 모를 수가 없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특별하다. 옷은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한 조합이다. 신발은 늘 짝짝이고,, 무릎에는 무릎 보호대, 허리에는 허리 보호대를 아무렇게나 둘렀다. 머리에는 두건을 몇 겹으로 두르고, 머리띠를 하고, 목에는 작은 수건을 둘렀다. 늘 헝크러진 머리카락이 붉은색인 것이 특이하다. 붉은빛 염색을 하시나보다. 그리고 70도 정도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신다. 앞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시커먼 얼굴에는 온통 하회탈처럼 주름이다. 거기에 어찌나 인상을 쓰고 다니는지 감히 접근할 수도 없다.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의 얼굴이다. 동네 폐지 줍는 할머니다. 차림으로 보면 안 아픈 곳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몸이다.
상가에서 박스가 많이 나와 동네만 돌아다녀도 꽤 수입이 될 것 같다. 길에 버려진 박스뿐만 아니라 가계마다 들어가서 폐지를 들고 나오기도 하신다. 그리고 리어카에 폐지를 담고 그 귀퉁이에 주렁주렁 다른 폐품들을 달고 다닌다. 할머니가 지나가면 대굴대굴 끌려가는 캔 소리가 난다. 모두가 비껴드린다.
우리 건물 상가 앞에 폐지를 잔뜩 모아 두고 거기서 정리를 하고 계셨다. 사람들 통행에도 지장이 있고 지저분하였다. 종일 리어카로 담아와서 그곳에 쌓아두고 있으니 상가 사람들이 불평할 수밖에.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다른 쪽 구석진 곳에서 하시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한다. 어느 날인가 다시 가서 말했더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계속하셨다. 듣는 내가 민망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할머니 아들. 그 젊은 아들은 한수 위였다. 그리고 또 그대로였다.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최후의 수단으로 구청에 신고했다.
희한하게 이런 분들은 구청이나 경찰을 엄청 무서워한다. 그리고 말을 잘 듣는다. 구청에서 나와서 정리했다. 이 분도 살아가기 위해 이런 험한 일을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다들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한다. 그리고 박스도 직접 가져다 실어주기도 하고, 지나가면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지나가다 음료도 드린다. 그러면 엄청 공손하게 감사하다고 하신다. 아까 그 욕하던 분이라고는 생각이 안 든다.
어느 날 동네에 오래 사셨다는 분의 얘기를 듣게 됐다. 폐지 줍는 할머니는 저 건너편 2층집 주인이라고 한다. 돈도 많으신데 저렇게 다닌다는 거였다. 속 사정이야 알 수가 없지만 인제 쉬셔야 하는 나이인데 저렇게 험하게 일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돈이 많다고 놀고, 돈이 없다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맞벌이하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시골에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올라오셔 함께 살면서 손주를 돌봐주셨다. 그런데 갈수록 우울증이 심하게 됐다. 무서워서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는데 시어머니가 나가서 혼자 살고 싶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집을 구해 혼자 살게 해 드렸다.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홀로 일어나셨다. 새벽부터 일어나 동네 폐품을 주워 파셨다고 한다. 이를 안 아들은 난리를 피웠지만 너무 편안하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폐품을 주어 팔면서 우울증도 말끔히 낫고, 돈도 모아 아들에게 맡기더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노후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우울증 해결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도 다시금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건 당연하지만 내 몸을 학대하면서까지 일을 하는 건 무리 같다. 열심히 일하는 할머니의 삶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누가 보던지 아파 보이는 몸을 이끌고 무리한 일을 해야 하는지. 혹시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다들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간다. 각자의 삶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명한 판단이 흐릿 해진다면 누군가 조언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나의 삶을 보고 걱정하지 않을까. 항상 나를 다시금 돌아다보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