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애증하는 나라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셨다.
한 직장에 30년 가까이 다니셨던 분이셨고, 한 지역의 총괄 책임을 맡는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하셨다.
그러던 중, IMF를 겪으며 실직을 하셨고, 한동안 우울감과 상실감에 많이 빠져계셨다. 그런 아빠 모습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택시 운전기사도 하시며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 힘들고 상실감에 마냥 빠져있을 순 없을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고,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게 왜 그때는 몰랐을지, 내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다. 아빠는 말수는 적으셨지만,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려는 참 성실한 분이셨다.
실직 후에 여러 가지 일을 해보시다가 당시 미국에 있는 가족의 권유로 미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해보지도 않았던 요리를 하시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아빠에 대한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아빠는 당연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빠의 딸이니 타국에 있는 아빠가 늘 걱정이 되고,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다가도 힘든 상황이 발생되면 도피처라는 생각에 그만둔 적도 있었다.
아빠를 보지 못한 지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ㅡ
이렇게 가족이 떨어져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ㅡ
이번에 못 보면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고ㅡ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빠를 보러 가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4년 만에 아빠를 만나게 되었고 아빠는 너무 좋아하셨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우리 아빠는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코로나를 맞게 되면서 안 좋은 상황이 겹쳤던 아빠는 미국에서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도 미국에서 1년간 지냈던 적이 있었기에 미국이란 나라는 나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라였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나에겐 애증이 나라가 되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나라이지만, 우리 아빠를 너무 외롭고 힘들게 지내게 한 곳이기도 하다.
아빠는 불법체류자는 아니었지만, 한국에 잠시라도 오는 것을 매우 불안해했다. 아빠는 나이가 많았고, 그 며칠 휴가를 낸다면 아빠 대신 다른 사람이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빠는 미국에서 지낸 10년 동안 딱 한 번만 한국에 나왔었다. 내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가 맞지만, 나에게는 슬픈 기억을 안겨준 나라이기도하다.
아직도 미국에 있는 친척들은 한국에 나오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나, 영주권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우리 아빤 그런 상황은 아니었는데도 한국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죽음조차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그렇게 되셨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친척들은 본인 가족과는 같이 붙어있지 않는가. 나는 아빠와 떨어져ㅡ 아빠는 우리와 떨어져 혼자 외롭게 있으셨다는 사실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미국을 방문할 수도 있겠지만, 가게 된다면 아빠가 있었던 지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아마도 아빠에게도 미국은 좋은 기억 속의 나라는 아니었을 것 같다.
새삼 아빠가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