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께서 모스크를 떠나 선술집으로 오셨습니다

하페즈의 서정시 제10편

by 작은 나무
궁중 잔치의 모습

어젯밤 우리 스승님께서

모스크를 떠나 선술집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걷는 벗들이여,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 스승님께서 주막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시는 이 날에

우리 제자들이 감히 어떻게

메카를 향하겠습니까?


우리는 길 위의 주막에서

일생을 머물기로 하였으니

창조 이전의 언약에

이게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그녀 머릿결에 얽매인 행복을

이성(理性)이 알았더라면

지성을 뽐내던 현자들도

미치광이가 되어 묶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고운 얼굴이 우리에게

경전의 구절을 가르쳤고

그 이후 우리의 경전에는

그녀의 다정함이 유일한 주석입니다.


우리의 뜨거운 탄식과

우리 흉중에 타오르는 불꽃......

그대의 돌 같은 마음은

어느 밤에 부싯돌이 되겠습니까?


우리 한숨이 화살 되어 하늘을 뚫으나

하페즈야, 말을 말거라!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화살을 맞기 전에 달아나거라.


페르시아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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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국인이 이슬람의 금기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아마 무슬림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안 먹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14세기 이란의 시인 하페즈는 분명 무슬림이었습니다. 자신의 필명으로 쓴 "하페즈"(حافظ)라는 단어 역시 이슬람의 경전 쿠란을 모두 외운 사람을 일컫는 존칭입니다.


그러나 하페즈는 모스크, 즉 이슬람의 사원을 버리고 선술집으로 향하는 스승의 이야기로 이 시를 시작합니다. 제자들 역시 부득이하게 스승을 따라 사원을 포기합니다. 기도의 장소를 떠나 이탈의 공간에서 술을 마실수록 이성은 떠나갑니다. 지성의 고삐가 느슨해지니 무모한 사랑에 묶인 행복을 알게 됩니다. 매일 읽어야 하는 경전은 더 이상 쿠란이 아니라 미인의 고운 얼굴이고, 이제부터 외워야 하는 것은 무함마드의 언행록이 아니라 연인의 다정한 표현입니다. 종교는 떠나가고 사랑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날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캘리포니아가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와인의 원산지는 이란을 포함한 고대 근동입니다. 이슬람의 율법과 신정 국가의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이란인들은 여전히 애주가의 민족입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에 이란을 여행할 때도 불과 보름 동안 현지 친구들과 술잔을 몇 번이나 기울였습니다. 지극히 종교적인 동시에 지극히 술을 사랑하던 문명에서만 이런 시가 탄생할 수 있었겠지요.


물론 하페즈는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이란인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입니다. 와인보다 하느님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이런 시조차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영적 체험에 취하는 것이며, 그가 경전이라 일컫는 연인의 얼굴은 쿠란이 언급하는 "하느님의 얼굴"에 대한 은유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일부 성직자들의 글에서 하페즈는 입에 술을 한 번 댄 적 없는 금욕의 시인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시는 역시 해석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춘분과 함께 이란력으로 1405년 새해가 찾아왔으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서 평화가 돌아와 이란의 국민들이 마음 편히 와인을 따를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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