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향으로 달무리를 가리는가

하페즈의 서정시 제9편

by 작은 나무
폴로 경기를 묘사한 삽화

청춘의 찬란함이 다시금

정원으로 돌아왔으니

곱게 노래하는 나이팅게일에게

장미의 소식이 가닿네.


봄바람아, 들판의 청년들에게

다시금 발길이 닿는다면

측백나무와 장미꽃과 바질에게도

나의 경의를 전해다오.


술을 파는 배화교 아이들이

이토록 자태를 뽐낸다면

술집 문지방의 흙먼지를

나의 속눈썹으로 쓸어내리라.


용연향으로 달무리를 가리는가,

그대의 머리칼은 폴로 채인가,

내 고개도 공처럼 굴러가는가,

내 마음만은 쳐내지 말아다오.


술을 들이키는 우리들을

한껏 비웃는 저 자들이

외려 신앙을 저버린 게 아닐지,

나는 저들이 안쓰럽다네.


하느님의 벗들을 벗하여라!

노아의 방주에 묻은 먼지는

대홍수가 내리던 와중에도

물 한 방울 보지 못하였으니.


문 밖을 나가라! 집을 떠나라!

양식을 청하지 말아라!

세상은 끝내 손님을 음해하는

간악한 집주인이니.


가나안의 요셉아!

그대가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으니

그대의 지겨운 감옥에

작별을 고할 때가 왔다네.


하페즈야, 술을 마시고

건달이 되어보고 행복하되

다만 저들처럼 쿠란으로

사람을 속이지는 말거라.


페르시아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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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현지에 있는 제 친구 및 지인들 중 연락이 닿은 분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합니다. 값비싼 VPN이나 스타링크가 없는 친구들은 당연히 연락도 못 하지만요. 며칠 전 테헤란의 상공이 불바다가 되어버린 영상을 보았습니다. 다음 아침이 되니 한낮의 하늘이 칠흑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발붙이고 사는 같은 지구상의 현장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원합니다.


이토록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면, 이란 사람들은 위안을 구하고자 하페즈의 시집을 임의로 펼쳐 시성(詩聖)의 뜻을 살피고는 합니다. 만약 지금 그들이 펼친 페이지에 이런 시가 나온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위대한 시인은 한눈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란인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말을 타고 긴 막대로 공을 치는 마상 하키의 일종인 폴로 경기는 고대 이란의 궁중에서 사랑받던 스포츠였습니다. 경기 중 이리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시인들은 연모하는 대상을 폴로 막대에, 스스로를 공에 연상하고는 했습니다.


이 시에서 하페즈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연인의 뽀얀 얼굴 위에 드리운 머리카락 한 가닥을 보고, 야간 경기 중 보름달을 가리는 폴로 채의 그림자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임의 머릿결은 아무런 막대가 아닙니다. 나무 대신 용연향, 세상에서 가장 짙은 향기를 뿜는 향료로 만들어진 폴로 채입니다. 물론 실제로 용연향으로 폴로 경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공을 치기도 전에 채가 산산조각 날지 모릅니다. 하페즈가 노래하는 사랑은 그토록 말도 안 되고 기괴하고 불안정한 것입니다.


사랑은 불가능한 폴로 경기와도 같고, 세상은 손님을 독살하는 집주인입니다. 간악한 세상과 가나안의 요셉 사이에는 무슨 연결 고리가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믿을 수 없으니, 나그네로 잠시 신세를 지더라도 신속히 떠나라고 하페즈는 말합니다. 마침 가나안의 요셉도 감옥에 작별을 고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구약, 이슬람의 쿠란에 따르면 아름다운 청년 요셉은 그를 연모하던 귀부인의 무고로 인해 파라오의 감옥에 몇 년 간 투옥됩니다. 그러나 결국 자유인을 넘어 이집트의 재상이라는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렇다면 하페즈는 삶을 감옥으로 여기고 죽음을 해방으로 보는 것일까요? 허나 하페즈는 결국 술을 마시고 불량하게 살라고, 즉 현세를 누리라고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무엇이 감옥이고 무엇이 재상 자리인지, 저도 명확한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이란의 제 친구들이 지금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소망합니다. 그 감옥이 미군의 폭격이 되었든지, 이슬람 공화국의 폭정이 되었든지, 어떻게 해석하든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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