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대부뚝 길은 비포장도로라 비가 오면 질척였다. 교복을 입고 그 길을 걸어 학교에 가면 신발에는 빨간 진흙이 묻어 있다.
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흙이 묻어있는 지저분한 신발을 내려다본다. 공연히 아이들 시선이 발등에 꽂히는 것만 같아 마음속으로는 창피해 죽을 것 같았고 어린 마음은 아주 작아진다.
새벽 다섯 시.
어머니는 가마솥에다 불을 지펴 밥을 안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을 지어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정성 어린 고마움을 느끼며 아침밥을 꼭 챙겨 먹었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길을 내가 다니기에는 아주 험난한 등굣길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논둑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마음 한 편에서는 무섭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만 꾹꾹 눌러 걷다 보면 군부대 담장이 보인다.
왼쪽에는 낮은 지붕의 한적한 마을이, 오른편에는 높고 묵직한 담장이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버스정류장이 보여도 버스는 타지 않는다.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보다 그냥 걷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걸어 학교에 도착한다.
중학교 삼 년은 ‘걷기 훈련‘의 연속이었다.
재미있는 일화는 군인아저씨들이 연애편지를 우편함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친구들과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을까? 상상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좋은 때다,
우리도 언젠가 연애할 날이 오겠지!
하며 미소 짓던 추억이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날, 학교수업이 끝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뜨거운 태양과 맞서며 얼음 한 덩이가 간절했던 그 날들,
가끔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며 불평도 할 줄 몰랐다. 그렇게 집을 향하여 걷노라면 지쳐서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그 시절은 칠십 년 대, 자가용도 드물었고 교통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불평불만 없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며 그 불편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십 대부터 단련된 다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어려웠던 환경이 오히려 나의 자산이 된 셈이다.
사십 대에 한 번 건강이 무너진 적이 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젊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되뇐다.
“움직여야 산다. “
먼저 집밖으로 나오면 자연을 접하고 걷게 된다. 자연과 가까이해야 복잡하던 생각이 맑아지고, 굳어있던 몸이 풀린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는 몸이 먼저 안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것을.
진흙 묻은 신발이 창피했던 소녀는 세월이 흘러 걷는 일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게 되었다.
중년 이후로 접어들면 이전보다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올바른 자세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깨와 가슴을 펴고 척추와 허리를 세우고 양발을 십 일 자로 한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발뒤꿈치, 발바닥, 발앞꿈치(발가락) 순서로 누르듯이 걷도록 하고 뒤꿈치가 땅에 닿을 때는 뒤꿈치의 한가운데가 닿아야 한다.
발목에 힘을 주지 않고 터벅터벅 걸을 경우 무릎, 고관절, 허리까지 충격이 갈 수 있어서 허벅지부터 힘을 주고 되도록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발목에 힘을 주어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올바르게 걷는 자세를 의식하면서 몇십 년을 걷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자세가 참 좋다고 한다. 더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도 이 자세로 걸으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나는 또 걷는다.
26년 3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