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k란 May 25. 2024

첫사랑



 첫사랑의 향기는 아카시아 꽃향기를 타고 내게로 왔다.

나의 고향은 작은 시골마을, 우리 집은 넓은 동산을 품고 있다. 그곳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놀이터이다. 친구와 숨바꼭질도 하고 다리도 닿지 않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끌고 가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배우려고 애썼던 장소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질 때면 사춘기 언니 오빠들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오래된 밤나무와 자두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을이 되면 수십 그루의 밤나무에서 입을 떡 벌린 밤송이들과 크고 작은 밤알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었다. 뒷마당에는 앵두나무와 포도나무가 있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던 생각이 난다.


 우리 집은 동네사람들이 딸 부잣집으로 불렀고 나는 칠 남매 중 다섯째 딸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는 아이들이 두세 명 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아이와 주로 소꿉친구로 친하게 지냈다.

 우리 동네에 교회보다 더 큰 대궐 같은 한옥집이 있었다. 그 집은 고아원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5학년 어느 날, 그 집이 이사를 가고 가정집이 이사를 왔다. 그 집엔 나와 동갑인 잘생긴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신선함과 설렘으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만나보고 싶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 아이는 먼저 다니던 학교와 교회로 다녔다. 그래서 만나야 할 공통점이 없으니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 내가 그 집에 찾아가서 같이 놀자고 하기엔 나에겐 숙기가 없었다.

그저 우리 집 앞마당에서 멀리 보이는 그 집 대문 옆 툇마루에 앉아 노는 모습만 힐끔힐끔 훔쳐볼 뿐이었다. 그 아이는 서울에서 이사 온 왕자님이라면 나는 시골 촌아이라 할까? 뭔가 주눅이 들어 있었나 보다.

나와 친하게 놀던 소꿉친구는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그 친구 집에 가서 놀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 온 아이는 도무지 나와 함께 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들끼리만 노는 거 같았다. 나는 그 집 쪽을 자주 바라보며 그 아이가 마당에 나오기만을 기다릴 때가 많았다.

어린 마음에 혼자만 간직한 채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그 아이의 교복 입은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왔다. 우리 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제주도 사람이고 왠지 우리 집과 색다른 가정으로 여겨졌다.

제주도 할머니들의 강인한 면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큰딸은 유치원 운영을 하고 있고 연세대 다니는 형이 있다고 한다. 그 가정사를 알게 된 후 그 아이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에 꽃 피우지 못한 첫사랑을 짝사랑으로 묻어둔채 간직하기로 했다.

 소꿉친구와 그 아이는 주로 교회나 동네에서도 자주 만나 놀았다. 그래서 가끔씩 신선한 꽃향기로 다가왔던 첫사랑의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중학교 여름방학이 되면 타교회에 가서 성경공부를 했다. 소꿉친구와 동생 두 명과 함께 간 적이 있다. 그저 신나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집을 떠나 친구와 함께 새로운 일탈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가로등도 없는 논둑길을 소꿉친구와 걷고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

 “나 무슨 병에 걸려 얼마 못 산다! 그래서 사진들을 다 태우고 정리하는 중이야"

 ”얘가 무슨 장난을 치고 있냐!" 하며 나는 그 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 소꿉친구는 아프지도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 친구도 나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던 거 같다. 그 후에 그런 말을 왜 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이렇게 처음으로 느끼는 마음은 서툴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던 거 같다. 이제 중년이 되어 옛 추억을 떠올려보니 풋풋했던 감정이 새롭다.

어릴 적 불쑥 내 안에 들어온 첫사랑, 아니 짝사랑의 예쁜마음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장가계를 다녀와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