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생활의 시작-세 번째 직장으로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장 4절~5절)
"R, 그런데 말이야...
광야생활이 끝나면 우리는 가나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되잖아?
그럼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가나안 백성들과 벌인 전쟁이었어"
상해 출장 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20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양쯔강을 바라보며 뜬금없이 광야와 가나안 이야기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와이프를 잘 둔 덕분(?)에, 능력자인 아내의 직장 커리어를 따라 자신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옮겨 다녔고, 상해지사에 근무하게 된 아내에 맞추어 상해에 정착해, 이제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워졌고 반면 휘황찬란한 상해 금융가의 네온사인에 휩싸여 양쯔강은 금빛으로 빛나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광야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 번째 직장의 클라이맥스에서 오히려 광야와 같은 고독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It's life!'
그런데 이 친구의 말을 듣고, 어쩌면 이 세 번째 직장이 저의 직장생활의 종착지(광야)가 아니라, 어쩌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였습니다.
(예, 제 예감대로 이 세 번째 직장을 끝내고, 네 번째 직장에서 저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글의 소재로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틈틈이 기록해 두었던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 번째 직장 스토리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직장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저는 더 이상 이곳에서 업무를 찾을 수 없어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제 막 결혼을 하였고, 아내는 수도권에서 살고 싶어 했기에, 저는 되도록이면, 수도권에 있는 공장 관련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히도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것처럼) 신혼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반드시 그 회사에 입사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겼습니다.
공장을 혼자서 지은 경력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아 경력만 보면 취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문제는 저의 영어실력이었습니다.
비록 외국계회사에 다녔고, 외국도 다녀 보았지만, 외국인 사람을 보스로 모시고, 매일 영어로 이야기하며 일을 하는 것은 경험을 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지 불안하였습니다.
더구나 speaking은 그런대로 짧은 단어, 아는 단어만 사용하면 되니 그럭저럭 하겠는데, 문제는 영어 listening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뷰를 앞두고 저는 노심초사 고민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인터뷰를 보았던 C한국 지사장은 본사에서 멕시코에 공장을 지을 때,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로 회사에 입사하였고, 그 후 20여 년 그 회사에 근무하며, 공장장, (지)사장을 역임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지사장(General Manager)을 하다가 한국공장을 짓기 위하여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외국투자의 관문이었던 코트라(Kotra)의 도움을 받아 수원사무소에 임시 사무소를 차리고, 일차적으로 영어가 능통한 비서를 고용하여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C사장이 우선적으로 뽑아야 했던 매니저급은 재무를 관리할 재무팀장과 공장건설을 책임질 프로젝트 매니저였습니다.
헤드헌터를 통하여 구인광고를 내었고, 그것이 저에게까지 닿아 연락이 온 것입니다.
" I like your agressiveness! (난 너의 적극성이 마음에 든다.)"
인터뷰를 마친 그날, C사장은 저에게 개인 메일로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합격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면접에서는 그 결과(합격 혹은 불합격)를 그다음 주쯤 헤드헌터를 통하여 보내오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면접 당일, 그것도 후보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인터뷰를 했기에 그런 파격적인 답변을 받았을까요?
저는 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보고, 저의 경험이 딱 거기에 일치하기 때문에, 제가 적임자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의 형편없는 영어회화 실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적인 면접 방식으로는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면접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초기에 간단한 인사 정도만 주고받은 후 C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가 가지고 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두 번째 직장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관련 파일을 열고는 거의 50분 동안 제가 한 일에 대하여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프로젝트에 관련된 용어니 내 발음이 안 좋더라도 상대방이 프로젝트 전문가라고 하니, 대충 '내 말은 알아들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면접에서 제가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날 즈음 C사장은 웃으면 좋은 소식을 줄 터이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C사장도 영미권 출신이 아니라 영어로 말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부담을 줄여주어서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이 지난 즈음 (아마도 내부적인 보고 절차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헤드헌터로부터 정식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고, 출근 전 잠시 사무소로 와서 한국의 general manager인 P상무를 만나봤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또 다른 면접의 자리이냐라고 물어보니, 그냥 동료가 되었으니 안면을 트는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미 정장을 하고 사무소에 들어 P상무를 만나 봤습니다.
"야 참 내 황당해서. 아니 면접을 보러 온 친구가 복장이 그게 뭐냐?"
인사나 하는 자리라고 했지만 P상무는 이 자리를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한국공장을 지을 책임자로서 중책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자신이 또한 그 채용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따라서 입사하고 나서 친하게 된 영업팀장과의 술자리에서 P상무는 저의 면접 복장을 보고 이게 도대체 뭐야 하는 반응을 보였다며 저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어쩌면 사소해 보였던 초창기의 P상무와 C사장의 이러한 불협화음은 나중에 우리 회사를 송두리째 흔드는 커다란 혼돈의 소용돌이의 원인이 되리라고는 이 당시는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P상무는 한때 한국 굴지의 자동차회사 중 하나였고, 현재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D사의 연구소 팀장 출신이었습니다.
P상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자동차 촉매인데, 당시 한국에는 촉매를 만들어 공급하는 두 개의 회사가 있어서, 거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가격을 정해 D사와 다른 자동차회사인 H사의 납품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P상무는 두 회사의 거의 고정되어 버린 납품 단가를 흔들어야겠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글로벌 자동차촉매 회사인 우리 회사의 제품을 D사의 신개발 프로젝트 메인 부품으로 지정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더구나 만 여개가 넘는 자동차 부품을 글로벌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G사의 구매부서 중 자동차 촉매는 한국의 D사 구매팀이 관할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회사의 영국 본사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G사에 자동차 촉매를 공급하는 전진기지로서 한국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P상무가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이참에 한국에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P상무는 이 계약을 계기로 D사를 나와 우리 회사의 general manager (한국직함으로서는 부장이라는 의미이지만, 외국본사에서는 지사장을 의미하는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가 되었고, 이 비즈니스를 실행시키기 위하여 한국공장을 짓는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P상무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대표(지사장, general manager)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사에서 공장을 세울 총책임자(general manager)로 C사장을 파견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졸지에 두 명의 general manger가 존재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C사장은 한국공장의 general manager로서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결정하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였고, 채용을 확정하고, 저에게 P상무에게 동료로서 인사하러 한번 들르라고 한 것이고, P상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사장으로서 저의 채용 또한 자신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 사람 간의 껄끄러운 동거는 한 사람의 입사로 인하여 악화일로를 걸었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는데, 이 화약고의 불씨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 등장한 고춧가루맨 F이사였습니다.
두 사람 간의 알력은 얼마 후 본사의 지원을 받은 C사장 밑에 P상무가 들어가 영업을 총책임지는 것으로 서열정리가 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P상무는 자신이 D사 출신이라 한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이며, 세계적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H사에 영업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H사에 영업을 하고 있는 경쟁사의 영업맨 중에서 기술적으로도 박식한 F이사를 영입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C사장은 회사로서는 손해가 없는 장사였기 때문에 F이사를 영입하는 데 찬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F이사는 사업 초창기에 이미 팀이 구성되어 있는 영업팀으로 입사시키기에는 본사에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공장을 지은 후 바로 세워졌던 테스트 센터(자동차 엔진에 자동차 촉매를 걸어 촉매의 성능을 검증하는)의 센터장으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이 F이사가 정치적으로 야심이 많은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공장은 지어지고, 시운전도 잘 끝나고, 우리는 D사에 성공적으로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글 서두에 있는 그날의 불량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것도 내부적으로 쉬쉬하며 일단락되는 듯 흘러갔습니다.
F이사가 스스로 심지가 되어 C와 P 두 general manager를 이간질하는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