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떠나는 것도 힘들어
사실 S와의 인연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저와 그렇게 엮일지 몰랐기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그와의 첫 만남은 회사를 떠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아득한 기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제가 중국 상해에 있는 공장에 견학 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서너 명이 함께 중국공장을 안내받았는데, 함께 교육을 받았던 키 크고 마른 백인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중국에 물류시스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 담당이라고 소개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상해는 견학 차 방문한 여러 site의 공장 중 하나였기에 그땐 그저 지나치는 인연 중 하나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만 변명해. 모두 너의 잘못이야"
G사의 그 유명한 품질 사태가 발생했을 때, S는 AJ에 의해 어느새 G사 영업담당 아시아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때 당연히 한국으로 달려왔으나, 그때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C사장은 P상무를 총책임자로 지명했고, 영국에서 품질전문가 B가 주도했기에 G사의 Mr. A는 B 하고만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B는 모든 게 품질팀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그 짐을 짊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기에 품질시스템의 결함들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반면 문제를 바라보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질책하는 경향이 있었던 S의 눈에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중 하나인 품질팀장이 이내 회사를 떠나버리자, 추궁할 상대로 오직 나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문제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저의 말을 처음부터 끊고는 정색을 하며 손가락질로 저를 비난하여 말을 끊곤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는 가급적 S와 부딪히지 않으려 피해 다녔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B나 Mr. A에게 초점을 맞추어 개선책을 내놓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S를 무시한다고 거슬렀는지도...
"R부장님, 저 회사 떠납니다."
C사장을 도와 저와 함께 한국지사를 설립하는데 힘을 합쳤던 창립멤버들은 거의 모두 다 떠나갔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았던 재무이사가 S사장이 오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마침내 저에게 작별통보를 하였습니다.
창립 초기에 저와 같은 직급인 차장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벌써 이사를 달았고, 저는 S사장에게 찍혀있었기에 여전히 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 왜요?"
말은 예의상 반사적으로 그렇게 나왔지만, 저 또한 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R부장님도 아시잖아요? 이 회사는 미래가 없어요."
앞서 말씀드린 호주 John사장 앞에서 사업보고 때, S사장과 F상무(벌써 상무로 진급하였습니다.)의 보고 후 세 사람의 킥킥거리는 모습을 보고 회의실에 있었던 재무이사도 아마 저와 똑같은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야 너는 매사에 너무 소극적이다. 그래서 너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매년 있는 개인에 대한 평가 때 저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생산 쪽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놀라운) 성과지수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S사장은 저의 성과지표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겠지만, 매니저급에게 있는 개인 역량 평가 점수는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저의 개인적인 태도를 지적하였습니다.
S사장을 비롯하여 초기 창립멤버들은 모두 떠나갔고, 공장에는 자동차 촉매 쪽에 경험이 없는 팀장들로 채워졌습니다.
모두가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인 공정은 익숙하지 않아서 저는 오히려 나대지 않고 그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 수 있도록 되도록 뒤로 물러나 좀처럼 의견을 내지 않고 자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소극적인 모습이 S사장에게는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R팀장님, 저에게 힌트 좀 주세요. R팀장님은 짐작하고 계시는 것이 있으시잖아요?"
유달리 높고 까다로운 스펙을 가지고 있는 품질팀장을 뽑느라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제가 보기에도 유능한 능력을 가진 T가 그 까다로운 채용절차(말레이시아 그 까다로운 품질팀장의 인터뷰도 통과한)를 통과하고 합류하였을 때, 우리는 앞서 언급한 그 cell 이 막히는 불량문제로 골치가 아픈 상태였습니다.
품질문제의 책임자로서 T 역시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 데, 이 문제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몇 개월 질질 끌고 오는 상태에서 T팀장은 답답한 지 저에게 다가와 은근히 묻곤 했습니다.
(T는 제가 이 회사를 떠난 후 다른 장소에서 두 번이나 조우할 정도로 막역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이 부분이 미숙해."
S사장의 인사 평가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S사장은 제가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례로 이 cell이 막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을 들었습니다.
근사한 문제해결시스템(DMAIC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현장 친구한테 들은 한마디 말로 그것을 해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가 그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신나서 S사장을 찾아가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고 보고했을 때, S가 왜 기뻐하지 않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이 바로 짠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이런 문제들은 자신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스템적으로 풀어야 나름 보스로서 자신도 어느 정도 참여했고 기여했다고 보고하기도 좋은데, 이 놈은 그것을 우연히 (짬밥으로) 한 번에 해결한 것입니다.
허탈한 감정이 들었을 것입니다.
"R부장님, S가 R부장님에게 오늘 너무 지나치네요."
T는 팀장회의가 끝날 때마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같이 나오며, 저의 안색을 살피며, 저를 위로해 주곤 했습니다.
이 후로 S는 제가 어떤 의견을 내어도 그것에 면박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그러한 것이 때로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T팀장은 때로는 저에게 안 됐다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리고 S는 사사건건 저의 트집을 잡았습니다.
"야 네가 이번 상향평가시스템에서 나를 결정력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지? 그 이유가 뭐냐?"
S는 난데없이 저를 불러서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저는 외국계회사에서 시행하는 인사평가시스템에 상사를 평가하는 상향평가시스템에서 S를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에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대부분 익명으로 하는 것인데, 여기는 익명이 아니라 실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랫사람을 평가할 때, 평가한 사항에 대하여 정확하게 피드백해서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로, 상사 역시 아랫사람의 평가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리더십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었기에, 이를 공개적으로 하고 투명하게 오픈하여 소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참 자만한 시스템이죠?
세상에 사람의 본성은 다 똑같은데...
서양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아랫사람에 대하여 냉정하고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는 유전자라도 있다는 말인가?
상사의 좋은 점을 평가하는 항목에 머리를 웬만큼 짜내어 원만한 사항들을 기입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문제는 부정적인 면을 적어야 하는 칸이었습니다.
당연히 '없음'이라는 의미로 blank상태에서 다음 단계를 넘어가려고 하니, 시스템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나마 아주 완화된 표현을 써서 '결정을 좀 늦게 한다'라는 취지로 썼는데, S는 이것에 흥분하여 저에게 달려온 것입니다.
저는 마지못해 겨우 그 예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며 에둘러 말했지만, 한 시간 넘는 동안 S는 그것에 대한 결정을 늦춘 이유를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직장생활에서 자신만만하다가 크게 실패하고,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영역은 일, 업무의 성과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직장생활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인데, 그런 면에서 별로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늘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고, 늘 큰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사태는 언제나 긴박하게 돌아갔고,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새 프로젝트를 찾아 떠났기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도 마무리되고, 큰 업무 성과를 거두고 주위가 안정되니,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시작하였고, 제대로 된 임자를 보스로 만났습니다.
그렇게 S앞에서 실패와 불신임을 경험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꾸만 작아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심적인 고통과 억눌림이 심하여 내 생애 처음으로 거의 매일 노트에 푸념 어린 기도를 써 내려가야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앞서 언급한 상해에서의 그 친구와의 만남이 있은 후 저는 여기가 광야이고 가나안에서의 전투를 위해 훈련을 받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제 마음속에 이 괴로운 광야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은 한동안 전역을 하고도 자신이 군대에 있는 꿈을 꿉니다. 꿈에서 여전히 군복을 입고 군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합니다.
왜 아직도 군대에 있지? 답답하고 황당하다가 꿈에서 깨지요.
저는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 번째 직장에서 S와 고전분투하고 있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생애 이 직장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고 또 그만큼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아니 반 강제적으로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