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큰아들의 직장 후반전(9)

실세로 드러난 S의 등장(2)

by 리본안

"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꼭 R본부장님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고, 허가를 받고 진행할 것입니다."

그동안 모두에게 잔을 돌리느라 거나하게 취한 S이사는 새로 온 본부장들과 기존의 팀장이상의 멤버들과 상견례를 하는 회식 자리에서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저의 옆으로 마침내 다가와 앉았습니다.

"예? 허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제조본부장일 뿐이고, 저는 엄연히 S이사님 밑의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R본부장님이 이 회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 것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데리고 온 본부장 중에 제조본부장 역할을 빼놓은 것도 R본부장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러고 보니 데리고 온 본부장 중에 구매본부장 역할을 맡은 나이가 저 보다도 꽤 많았던 분은 자신의 본업은 제조 쪽이라 하였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번엔 구매 쪽만 맡았다고 하면서 저에게 잘 지내보자고 하였습니다.

M연구소장이 떠난 후 유일한 임원이었던 L이사는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어필하여 그토록 원하던 연구소장을 맡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은 본부장이었던 저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소위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조본부장이라는 자리는 제조 일반적인 상황을 점검하고 사람을 잘 관리하면 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한국회사에서는 제조본부장이나 공장장 자리는 보통 연구소 출신 중 하나를 파견하거나, 일반적으로 누구나 와서 사람관리를 잘하면 되는 자리라고 인식합니다.

사고 없이 유지만 잘하면 되기에 기술적으로나 아니면 품질시스템적으로 지식이 부족해도 거기에 큰 기대나 실망을 하지 않는 자리라는 것을 특히 한국회사에 와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제조본부장인 저에게 그렇게 자세를 낮추는 것을 보고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히려 자기가 회사에 (악)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저지를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선전포고하는 듯한 의미로 이해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를 위해서 잘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상대방의 지나친 환대가 조심스러워 더욱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중요하지 않는 일반적인 본부장이고, 그토록 부담스러웠다면 왜 굳이 자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S이사의 뒤에는 실제적인 이번 M&A의 물주인 K회장이 있고, S이사는 이 물주의 오른팔이며, 그래서 이 회사의 모든 중요한 결정권은 O대표가 아닌 S이사에게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S는 그렇게 실무의 총책임자인 양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조본부장인 저를 포함한 모든 본부장들은 S의 지시를 받았고 보고서도 O가 아닌 S에게 맞추어 작성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의 인수단이 들어오고 한 달쯤 지나서 드디어 K회장이 회사에 나타났고, 그를 위하여 O대표이사의 방 이면에 따로 밀실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옛날 조선시대 어린 왕의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던 왕후처럼 K회장은 공식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인사한 적도 없이 가끔씩 들러 자신의 사람들 (주로 S와 S가 데려온 본부장들)과 밀실에서 만나고는 소리 없이 나가곤 했습니다.

내부적인 조직도에서 어느새 O대표이사 위에 K가 회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올라서 있었고, 저도 따로 K 회장님께 각 본부별로 보고서를 만들라고 해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기존의 본부장, 임원들과 개인면담도 했다고 들었지만, 유독 제조본부장이었던 저는 스케줄이 어긋나 한 번도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K회장도 굳이 스케줄을 따로 만들어 애써 저를 만나지 않았는데, 아마도 S이사의 밑에 있는 존재감이 없는 제조본부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번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던 거의 모든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은 모두가 한 번쯤은 피의자로서, 피해자로서, 아니면 최소한 이 사건의 증인으로서 조사에 호출당하거나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나중에 비상대책위원장을 하였고, 이 사태의 중심에 서있었던 저는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에 소환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W회사에 실사를 가기로 되었는데, 저는 R본부장님이 꼭 가셔서 평가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S이사는 부탁하는 어조로 말하였지만 그것은 보스로서 저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구매업무 총괄 T업체 하고는 뭔가가 맞지 않았는지 S이사는 이번에는 다른 업체를 들이려고 하였습니다.

"예 저도 그 업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업체는 우리 제품의 하청업체 후보자로서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구매나 품질부서의 일인데 제조본부장인 제가 가는 게 주제넘은 일이 아닌가 해서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이니 R본부장님이 가셔야지요. 전에 말씀드렸듯이 R본부장님이 허락하셔야 하청업체로 W로 바꿀 것입니다."

S이사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매서웠습니다.

순간 얼마 전 회사를 떠난 G팀장이 S이사와 구매 문제로 한번 붙었다가 겁을 먹고 움츠려 들었다며 그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R본부장님, 본부장님도 아시다시피 제 업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사실 사람을 볼 줄 압니다. 그런데 S이사의 눈빛에는 살기가 있어요."

"본부장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분명히 우리 본부장은 업체 실사를 합격시키라고 할 건데?"

W회사 실사를 앞두고 새로 온 품질본부장을 모시고 있던 품질팀장이 저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팀장님은 어떻게 하실려구요?"

"글쎄 모르겠습니다. 원칙대로 심사하면 분명히 불합격 일껀데... 그러면 새로 온 본부장님이나 임원들한테 찍힐 테고... 본부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사 보고서를 팀장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예 담당인 N대리나 M과장이 쓸 것입니다."

"그러면 팀장님은 그냥 그대로 사인만 하면 되는 거네요."

"예?"

평소에 윗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에 맞추느라 눈에 띄는 노력을 했던 품질팀장은 저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는지 되물었습니다.

"N대리나 M과장은 실무자이니까 부적합한 사항들을 곧이곧대로 리스트업 해서 올릴 거고... 팀장님은 그 보고서 그대로 사인만 하면 되시잖아요?"

"그러면 품질본부장님이 가만있으시겠어요?"

"그건 품질본부장님의 몫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시키고 이 부적합사항들은 향후 시정하겠다 이런 식으로 보고를 할 거고... 그럼 본부장님이 책임을 지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팀장님이 굳이 나서 애들에게 지시해서 조사를 꾸미라고 지시할 수 있나요? 애들 보는 눈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팀장급이 굳이 오버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말을 둘러서한 것입니다.

사실 윗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이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본부장급인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습니다.

W회사를 방문하게 된 아침 회사 앞에는 조사단의 주체인 품질과 구매본부 사람들 외에 U회계팀장과 총무일을 겸임하고 있는 C 인사팀장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R본부장님, 본부장님은 우리와 함께 움직이시죠."

C팀장은 저를 억지로 끌다시피 하며 U부장이 타고 있는 차에 데리고 가서 태우더니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차로 가면서 왜 자신들까지 여기에 개입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동행한 U회계팀장도 그 회사에 실사단으로 참석하라는 S이사의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U부장에게 떨어진 명령은 우리가 W회사에 투자(현금으로 지분을 투자하는 것)하려고 하니 검토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U부장은 그 회사의 재무상태를 검토하였고 그 결과 그 회사가 수익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부채가 많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S카 물러날 사람이 아닌지라 S는 결국 저까지 개입시킨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 저의 생각은 그것은 제 업무가 아니고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발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평소처럼 그런 태도로 나오면 침묵은 곧 동의하는 것이라 R본부장도 이번 일에 참여하고 동의하였으니 이것을 구실로 U부장을 몰아붙이겠다는 심보였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안테나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W회사에 도착하니 마침 그 회사의 부사장이 나와서 맞이하였는데,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어? 누구였?'

그렇게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그 부사장이 저의 손을 대뜸 잡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본부정님께서 친히 오셨네요? 전에 회사 방문했을 때 하도 회사에 대하여 설명을 잘해주셔서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자 같이 갔던 우리 회사 직원들의 데면데면했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비로소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R본부장님, 오늘 중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라인 투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시는데 평소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셔서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2~3주 전인가 S이사가 저를 불러서 공장 투어를 지시했습니다.

회사를 매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회사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현장의 라인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회사견학은 언제나 제조본부장인 저의 몫이았습니다.

따라서 여느 때처럼 그 손님들을 모시고 투어를 가이드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투자자들과는 달리 직접 자기 돈을 넣는 사업가의 입장이라 보기 드물게 아주 꼼꼼하게 물어보셔서, 답변하는데 정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아 이 분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이 사업을 운영하고 싶어 하신다는 느낌을 가져서 달리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부사장님은 그때 회장님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회사를 인수한 S와 O는 회사를 장기간 운영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회사의 가치를 부풀려 되팔거나 아니면 돈을 빼돌려 이익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시작부터 보였기에 이 회장님에게 여러 옵션을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건네는 명함에는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혀있었습니다.

(사실 서로에게 부르는 직함들이 상무라 했다가 부사장이라 했다가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혀있기도 하고…

아마도 상황에 따라 직함을 바꾸는 관행 때문인 듯합니다.)


아마도 전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K회장이나 S이사에게 뒷돈을 대 주고 그 대가로 그 대표이사가 있는 업체를 우리의 하청업체로 만들어 놓은 후, 실제로 있지도 않은 거래장부들을 만들어, 우리 회사가 그 회사로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함으로, 회사의 돈을 빼돌리려는 수법임을 이제는 저조차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가로 중국의 모업체가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은 주가를 올릴 수 있는 호재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의 주가도 올릴 수 있고, 자신들이 주식을 팔고 다시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듯 순진한 제조만 한 사람이 보기에도 뻔한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을 때, 어차피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니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저도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어차피 오래 다닌 회사도 아니고요.

“그래도 당신이 꿋꿋이 태연하게 남아 있는 것이 회사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고 있을지 모르죠.

당신 밑의 사람들은 떠나도 벌써 떠나고도 남을 저 본부장님이 떠나지 않고 저렇게 떡 버티고 있으니,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남아 있는 게 아니겠냐?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당신만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특히 당신 밑에 종업원의 과반수가 넘은 현장직원들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당신뿐이지 않겠냐?”

잘못하면 회사가 망가지고 그러면 저조차도 직장도 잃어 생계가 막막해 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내는 어느 날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내도 매일 회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고, 당연히 제가 회사를 떠나야 할 상황인지 하나님께 여쭙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회사를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기도하며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라는 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일관적인 뜻이었습니다.


다행히도 S의 이러한 시도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나 봅니다.

이런 식의 관계는 특정한 강자가 판을 주도하지 않는 한 대등한 입장에서는 서로의 요구를 굽히지 않기 때문에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특출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소위 꾼이 없는 도박판에서 비교할 수 없는 큰 판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결국 판을 먹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판에서 그는 웬만한 패는 계속 죽으며, 좋은 패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S이사나 O대표나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판돈이 너무 빈약하여 오래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뜻대로 누구 하나 움직여주지 않았고, 그들은 아주 조급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판돈이 바닥나 버렸는지, 급기야 자사주를 건드려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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