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파멸의 주방

슈크르 필레의 심판

by 아름이

주방의 공기는 차가운 기계유 냄새와 뜨겁게 달궈진 설탕 시럽의 열기가 뒤섞여 기묘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원가온과 감딸기가 **Saint-Honoré(생토노레 / 파티시에의 수호성인 이름을 딴 왕관 모양 케이크)의 기초가 될 **Pâte feuilletée(파트 푀유테 / 반죽 사이에 유지를 넣어 결을 만든 겹파이 반죽)**를 밀어 펴는 순간, 닫혀있던 식자재 창고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그는 선생님의 숨겨진 제자이자, 가온의 과거를 파고드는 파멸의 화신, '리암(Liam)'이었습니다. 리암은 가온이 준비하던 Crème Chiboust(크렘 쉬부스트 / 커스터드 크림에 이탈리안 머랭을 섞은 가벼운 크림) 볼을 거칠게 걷어찼고, 노란 크림이 차가운 타일 바닥에 비릿한 Huile de machine(기계유 / 기계 윤활 및 발열 방지용 오일)**와 섞여 흩뿌려졌습니다.
​하지만 가온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을 감고 환풍구 너머로 들려오는 기계음 속에서 마치 매일 아침 반복하던 영어 듣기 훈련처럼, 본질적인 소리를 찾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가온: (낮게 읊조리며) "리암, 네가 소음으로 내 감각을 흐리려 해도 소용없어. 나는 매일 낯선 언어를 귀에 새기듯, 이 혼돈 속에서도 나만의 레시피를 듣고 있으니까. 이제 **Glaçage(글라사주 / 디저트 표면에 광택을 내는 코팅 작업)조차 할 수 없는 이 주방에서, 나는 가장 정직한 결정을 만들 거야."
​가온은 리암의 도발을 피해 뜨겁게 끓는 Sucre cuit(숙레 퀴 / 설탕과 물을 특정 온도까지 끓여 시럽이나 결정으로 만드는 기술) 냄비 앞에 다가갔습니다. 리암이 반죽기를 발로 차며 Autolyse(오토리즈 / 본 반죽 전 밀가루와 물만 섞어 휴지시켜 글루텐 형성을 돕는 제빵 기법) 중이던 반죽을 짓밟으려 하자, 가온이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원가온: "리암, 네가 내 꿈을 파묻으려 한다면, 나는 그 무덤 위에 가장 견고한 설탕의 성을 쌓아주마. 100일의 시간이 증명한 내 진심은 결코 네 기계유 냄새에 지워지지 않아! 이 반죽의 **Pointage(뽀앙따쥬 / 반죽을 둥글려 따뜻한 곳에서 진행하는 1차 발효)**가 끝나기 전에, 네 오만함을 먼저 끝내주지."
​깨진 유리 파편 위로 붉은 딸기 시럽과 검은 기계유가 뒤섞여 흐르는 가운데, 가온과 리암의 눈빛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맞부딪혔습니다. 리암은 광기에 어린 웃음을 지으며 **Détrempe(데트랑프 / 파이 반죽의 기초가 되는 밀가루 반죽)**를 향해 다시 발을 치켜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 가온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섭씨 150도까지 치솟은 냄비를 비틀어 잡았습니다.
​가온은 시럽 속에 포크를 담가 허공으로 거칠게 휘둘렀습니다. 순식간에 Sucre filé(슈크르 필레 / 실처럼 가늘게 뽑아낸 설탕 장식)**가 날카로운 금색 실이 되어 리암의 시야를 가로막았습니다. 당황한 리암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바닥에 흩뿌려진 미끄러운 크림 파편이 그의 발목을 낚아챘습니다.
​"크윽...!"
​리암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 위로 가온이 휘두른 설탕 실들이 거미줄처럼 덮쳤고, 단단하게 굳어가는 설탕 결정체는 리암을 결박하는 감옥이 되었습니다.
​원가온: "리암, 너는 Fermentation(페르망따시옹 / 발효)**의 기다림을 배우지 못했어. 조급함이라는 독이 결국 너를 쓰러뜨린 거야."
​리암은 결국 정신을 잃었습니다. 가온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습니다.
​원가온: "아버지 병원 보안팀이죠? 지금 바로 주방으로 사람 보내세요. 처리해야 할 '불순물'이 생겼습니다."
​병원장 아들로서의 단호함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가온은 망설임 없이 옆에서 겁에 질려 있던 딸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단단히 맞잡았습니다.
​원가온: "가자, 딸기야. 이런 기계유 냄새나는 곳은 이제 우리랑 어울리지 않아. 우리가 만들어야 할 **Cuisson(뀌쏭 / 굽기 혹은 조리 과정)**은 여기가 아니야."
​가온은 리암을 보안팀에 맡긴 채, 딸기를 데리고 주방의 철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의 등 뒤로 아침 햇살이 길게 뻗어 나와 두 사람의 앞날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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