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기적의 기적을 누리는 기쁨

by 투싼박

눈에 띄는 어려운 과학책

사실 고백하자면, 오랫동안 내게 『코스모스』는 '어려운 과학 책'이라는 선입견에 가로막힌 거대한 벽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 책을 접할 기회는 많았다. 필독도서로 유명했고 도서관에 가면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두껍고 난해해 보이는 표지를 볼 때마다 으레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지루할 거야"라고 짐작하며 외면해 왔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나는 우주와 과학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있는 학생은 아니었고 저런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스스로가 재미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과학과 우주는 재미없고 재미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을 업으로 삼아 연구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직업적 특성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할 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런 과학적 사고가 세상을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어떤 억울한 상황에서는 위로도 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상대성 이론'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나 흥미로웠다. 아마 더 어렸을 때 접했다면 금방 질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얽혀 돌아가는 우주의 원리가 그 어떤 이야기보다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우주로 향했다. 시공간의 뒤틀림을 이해하는 것과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애리조나 투싼(Tucson)의 환경도 한몫했다. 투싼은 세계적으로 천문 관측이 유명한 도시가 아닌가. 밤마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마주하며 살다 보니 우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마침 이전에 읽었던 장편 소설을 다 읽고 새해를 더 멋진 한 해로 만들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음 책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운명처럼 다시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냥 다른 책을 보면 되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다. 그런데 웬걸,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오는 짧은 헌사에서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이 아내 앤 드루얀에게 남긴 이 메시지는 내가 읽어본 그 어떤 글보다 로맨틱했다. 우주를 다루는 거대한 과학 서적의 시작이, 결국 '한 사람과 함께한 찰나의 기쁨'을 고백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정한 헌사라는 점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렇게 나는『코스모스』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책 소개

『코스모스』는 단순히 천문학 지식을 나열한 과학 도서가 아니다. 1980년 출간 이후 대중 과학서의 '성경'이라 불리는 이 책은 우주의 탄생인 빅뱅부터 생명의 진화, 그리고 인류 문명이 어떻게 과학을 통해 우주를 이해해 왔는지를 방대한 스케일로 다룬다. 세이건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물리 법칙이나 행성 탐사의 역사를 시적인 문체와 인문학적 통찰로 풀어내며, 우리 존재의 근원이 별의 죽음에서 온 '별의 먼지(Star stuff)'임을 역설한다. 과학적 사실을 넘어 우리가 우주 안에서 어떤 존재이며,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image.png 칼 세이건 저자(글) · 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 2010년 01월 20일


어느 과학자의 가장 다정한 고백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이 로맨틱한 도입부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된 고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이건의 시선은 먼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에서 시작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체들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그 미시적이고도 복잡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현재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온 '기적'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책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더 넓은 곳으로 팽창해 나간다. 생명의 탄생과 진화과정부터 시작해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과 태양계의 행성들을 훑고, 우리가 속한 우리 은하의 압도적인 크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선은 우리 은하마저 우주의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상상조차 하기 힘든 광막한 우주 끝까지 나아간다. 우주의 탄생인 빅뱅부터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경계까지, 세이건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시야 자체가 우주와 함께 팽창하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만약 이 책이 그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만 나열했다면, 연구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논문들처럼 건조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이건은 그 압도적인 우주의 끝에서 다시 시선을 돌려 '지구'를 바라보게 한다. 수천억 개의 은하 중 이름 없는 어느 은하의 변두리, 그곳에 떠 있는 아주 작은 '창백한 푸른 점'. 우주의 관점에서 다시 본 지구는 너무나도 외롭고, 그래서 더없이 아름다운 행성 중 하나였다.


image.png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이 지점에서 세이건은 인류가 저질러온 전쟁과 증오, 이기적인 악행들을 언급한다. 광대한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작은 점 안에서 서로를 할퀴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짓인지를 꼬집는다. 이 마무리는 정말이지 완벽했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겸손함을 동시에 역설하는 그의 통찰력에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 장의 헌사로 돌아왔을 때, 처음 읽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칼 세이건이 서문에서 말한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의 기쁨'의 무게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지구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고, 그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사랑을 피워낸다는 것은 '기적의 기적'을 누리는 일이다.


마무리

지금껏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연'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툼과 질투, 시기 같은 감정들에 피로감을 느껴, 어느샌가 나 스스로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같은 시간과 사건을 공유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계의 형태는 변할지언정,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동력은 바로 이 책에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조차도, 알고 보면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허락된 찬란한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수십 년 전의 내가 거부감을 느꼈던 그 딱딱한 표지 안에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위대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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