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에게 나는.. 나에게 아들은..

by 이and왕

아버지에겐

나의 자유는 방종이며 어리석음이었고

나의 토론은 현실 부정이었다.

나의 낭만은 술 주정이었으며

나의 인연은 수시렁이 애벌레들과 같다 하였다.

결국 아버지는

내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에 갔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하였다.


나에겐

아들이 하는 컴퓨터 게임은 부질없는 인생 놀음이었으며

아들이 듣는 음악은 히피의 장난이었다.

아들이 하는 몸짓은 허망한 신기루였으며

아들이 만나는 얼굴 없는 인연들은 세상의 파괴자라 하였다.

결국 나는

아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에 갔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하였다.


어느 날인가

저녁노을 속에 힘없는 풍경소리 마냥 들리던 아버지의 한마디

“아비야....... 잘 있냐”

아마 아버지가 세 겹 산속으로 몸을 눕히기 전날이었을 것이다.

비창을 잔뜩 머금은 고은 흙 한 삽 두삽...아버지의 몸 위로 차곡차곡 쌓여갈 때

아버지와 같이했던 과거가 나에게 후회하는 슬픔을 안겨 주고,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을 미래가 나에게 절망의 슬픔을 안겨 준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손을 놓고 아들의 손을 잡으며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아내와 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