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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and왕 Jan 01. 2025

내 아내와 잘 살기...

3편 해주기...

“내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기” 의 이번 주제어는 “해주기”다.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해주기”에 익숙해져 있다.

밥 해주기.. 옷 해주기.. 청소해 주기.. 보살펴주기..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625 사변 때 피난길이다.

한 가족이 피난 보따리를 싸고 피난길을 나선다.

아버지는 지게에 바리바리 물건을 얹혀서 지고 가고..

어머니는 머리에는 큰 보퉁이를 이고, 등에는 애를 업고, 손에는 그나마 종종걸음을 걸을 수 있는 아이 손을 잡고 걷는다.

이리저리 혼란스러운 피난길...

어머니는 등에 업은 아기가 혹여나 잘못될까 봐 다독다독 조심조심 걸으면서도 어지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손잡은 아이를 놓칠세라 손에 힘을 주며 아이를 잡고 간다.

해가 서산을 물들이며 넘어가고 있다.

어느 집 외양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볕 짚을 긁어모아 바닥에 깔아 놓는다.

아버지는 지게를 벗어던지고는 “아이고” 하며 깔아 놓은 볏짚 위로 벌러덩 눕는다.

어머니는 지게에 있는 살림살이 일부를 꺼내어 물을 길어오고 먹을 양식을 씻는다.

아버지는 담뱃대에 불을 댕기며 “이놈으 세상...이놈으 세상”하며 한탄을 한다.

어머니는 불이 잘 붙을 만한 것들을 긁어모아 불을 붙인다.

등에 업힌 아기는 배가 고픈지 악을 쓰며 울어 된다.

“옹야 옹야 조금만 기다려라 잉... 젖 줄게.. 옹야 옹야” 어머니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젖먹이에게 엄마가 옆에 있으니 안심하라는 듯이 다독이며 아기를 어른다.

종종걸음 아이도 배가 고픈지 앞쪽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다른 가족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빨고 있다.

“이리와라..이리와..엄마가 빨리 감자 쪄 줄틴게...쯧쯧”하며 아이의 누런 코를 닦아준다.

“아직 멀어는 가?.. 어허...” 곰방대를 털털 털며 아버지가 먹을 것을 보챈다.

“인자 불에 얹혀 쓴께 쫌만 기디리쇼...쫌매만..”

어머니는 먹은 것도 없는데 젖으로 차서 팅팅 불은 젖가슴을 보며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살살 쓰다듬으며 등에 업은 아이를 바로 앉는다.

“에고.. 불쌍헌 것..어찌 요런 시상에 태어나갔고..어여 먹어..어여”

하루 종일 젖을 먹지 않은 아이는 추운 엄동설한에 빨갛게 익은 볼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엄마의 젖을 빤다.

“아니 뭐 한당가...아직 멀었는가?‘ 하며 아버지가 빽-하며 고함을 친다.

어머니는 아직도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부딩 켜 안고 주섬주섬 일어나 감자를 삶고 있는 곳으로 간다.

”다 됫소..다 됫소..“

어머니는 무거운 지게를 지고 왔을 아버지에게 빨리 양식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감자 세 개를 담은 그릇을 찬물과 함께 가져다준다.

그리고 종종걸음 아이에게도 감자 하나를 건넨다.

어머니는 감자를 삶아낸 냄비를 쳐다보다가 건더기 하나없는 감자를 삶아낸 뜨거운 물을 호호 불며 마신다.

 

내가 언제가 들은 한국의 어머니, 아내의 모습이다.

피난길에 아버지나 어머니나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주기”에 익숙한 어머니들은 자신의 힘듦보다는 가족을 위한 “해주기”의 걱정으로 움직인다.

 

곰방대만 빨지 말고 장작을 해와서 불을 피우던지... 한탄만 하지 말고 어린아이라도 보던지... 지만 먹지 말고 아내 먹을 것도 챙겨 주던지....

 

아내와 옷을 사러 집 근처의 아웃렛을 가면 아내 옷은 1이고 내 옷은 5로 산다.

그나마 내가 같이 가서 아내가 1이라도 산 것이다.

아내 혼자 가면 내 옷만 산다.

내 어릴 적 어머니도 그랬었던 것 같다.

명절 때 온 집안 식구들의 옷은 한 벌씩 사는데 정작 어머니의 옷은 없었다.

항상 없었는데 아버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를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저녁 밥상... 아버지는 반듯한 밥상을 당연히 받았다. 그리고 우리들도 반듯한... 은 아니지만 밥이라도 배부를 수 있는 만큼은 먹었다.

하지만 같이 먹는 또는 따로 먹는 어머니의 밥은 항상 우리들 밥의 반 정도 되던가 누룽지를 끊인 멀건 죽이었다.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가는 우리네 여인들은 항상 그러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주위에서 내가 해야 될 것을 해주면 정말 편하고 살맛이 난다.

그렇지만 이러한 편안함이 누군가의 수고에 의한 것이고 누군가의 헌신에 의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수고와 헌신의 간극만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아내와 이러한 간극을 원하지 않는다.

아내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하고 나 또한 아내가 나에게 해준 수고와 헌신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다.

내가 아내로부터 당연하게 받았던 “해주기”.... 나도 당연하게 아내에게 “해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옷 또는 선물 해주기...>

길을 가다가 마네킹이 또는 아내와 비슷한 체형의 여성이 이쁜 옷을 입고 가면 “저 옷을 아내에게 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여기저기 사이트 검색, 쿠팡 검색...그리고 구매.. 물품이 오기까지 며칠 동안 마음속으로 아내가 좋아할까? 입으면 이쁠까? 하는 상큼한 긴장감을 느낀다. 드디어 오늘 배송한다는 문자가 온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흥분된다. 아내가 얼마나 좋아할까..

현관문을 여니 팔짝팔짝... 아내가 엄청 좋아한다. 좋아하는 아내를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내 물건을 산 것도 아닌데 아내에게 선물을 한 것인데 내가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아내도 그랬으리라..

아내는 내 옷을, 아이들의 선물을 사며 우리가 얼마나 좋아할까를 상상하며 좋아하며 행복해했을 것이다.

<같이 장보기...>

마트를 가면 장바구니를 카트를 아내보다 빠르게 얼른 잡아서 들고, 끌며 아내의 뒤를 따르며 실실 웃음을 짓는다. 앞서가는 아내도 발걸음이 유독 씩씩하고 신이 나 보인다. 든든한 남편이 카드를 밀며 따르고 있으니 마치 마트의 점장쯤 되는 듯한 발걸음이다. 이것저것 고르던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불쑥 한마디 한다. “남편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골라”

<음식점에서 해주기...>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기 위해 앉으면 수저와 저분, 물을 따라주고, 먹다가 모자라는 반찬이 있으면 냉큼 일어나서 셀프 바로 쪼르르 가서 가져온다.

아내는 나의 재빠름에 탄복을 하며 서슴없이 반찬을 먹는다.

<양파나 파 썰어주기...>

양파나 파를 써는 것은 정말 고된 노동 중에 하나다.

아내가 잠시 한눈을 판다던가 외출을 했을 때 집에 있는 양파나 파를 잘 다듬어서 먹기 좋게 썰어 놓는다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양파와 파가 고이 썰어져 있는 것을 본다면 정말 작은 일인데 아내는 무척 행복해한다.

<음식 해주기...>

토요일이면 술안주 겸 저녁식사 겸하여 음식을 만든다.

아내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주 맛있다” 거나 “이건 정말 행복한 맛이야”라는 말을 해주며 아무리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남김없이 먹으려고 한다. 남편이 애써서 만들었는데 어찌 남겨서 버리냐는 거다.

나는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아내가 기분 좋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한 시간여를 부산을 떨며 음식을 만든 수고스러움이 싹 없어지고 행복해진다. 문득 아내도 매일 같이 음식을 만들어주고 내가 맛있게 먹나 하며 나를 봤을 텐데 나는 그저 우걱우걱 먹었을 뿐 별다른 표현이 없었는데 하는 반성이 된다. 앞으로 표현을 잘해야 되겠다.

음식 해주기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해주기”다

준비하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같이 하는 모든 시간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기타 해주기...>

설기지 통에 설거지가 있으면 두 팔 걷고 설거지해주기--> 아내의 행복지수 급상승 행동...

세탁된 후 빨랫감 정리하기--> 아내의 흐뭇한 미소 발견 행동

용돈 아껴서 아내와 일주일에 1회 외식 -->아내의 감동 유발 행동

명절 또는 제사, 김장 등 아내 노동 후 여행하기 --> 아내의 우울증 급락 행동

 

아내는 우렁각시가 아니다.

아내는 과거도 아닌 미래도 아닌 현재.. 나와 같은 시공간에서 같이 존재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해주기”에 익숙한 아내일지라도 “나도 쉬고 싶다” “나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많아져서 수북이 쌓이게 되면 아내는 정말 쉬고 싶고, 정말 받고 싶어 져서 마음속 수렁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수렁은 깊은 늪이 되어 아내는 물론 모든 주위의 사람들이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내는 나나 자식들을 위한 “해주기” 촉을 바짝 세우고 우리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다. 이러한 아내의 “해주기” 촉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감사하며 나도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해주기” 촉을 적극 가동해 상호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면 내 글쓰기의 이념인 “내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기”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고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왜 이렇게 아내한테 잘해?”

“나의 아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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