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는 3시 30분 정도에 도착하여 치과대학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굵은 플라타너스 나무 뒤쪽의 파란 잔디 위에서는 한무리의 학생들이 비행접시 같은 것을 서로 주고받고 던지며 즐거운 비명과 함께 유쾌한 웃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리아는 이러한 분위기가 매우 낯설었다.
물론 낭도 훈련을 받을 때 사회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받아서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 남녀가 자유롭게 친분을 쌓으며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매우 낯설은 행동이라 여겨지며 그러한 감정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섬에서의 낭도 훈련을 받을 때 옆에 있는 동료들은 경쟁자이면서도 피를 나눈 혈육과 같은 가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개별적인 친근감을 들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애뜻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리아는 씁슬한 감정속에 침울한 마음으로 웃음이 들려오는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리아는 순간적으로 왼발을 뒤로 빼며 상대를 바라보니 시에나가 특유의 활달한 미소를 보이며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 시에나”
“오-좋아 좋아 그렇게 부르니까 우리 정말 친한 친구 같다 그치 프리아”
“그냥 리아라고 불러요”
“우리 학교 다니세요?”
“아뇨 학생 아닙니다”
“참 팔찌는?”
“네. 치과 수술 수업 중에는 어떠한 장식품도 몸에 걸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놓고 왔죠. 그런데 도청장치가 뭐죠?”
리아는 시에나에게 어느 정도까지 사실대로 말을 해야 되나 하고 잠시 생각을 하였다.
“시에나... 혹시 몇 살이세요”
“24살인데요”
“어머 그래.. 그러면 동갑인데요... 우와 반가워.. 반가워... 우리 나이도 같은데 서로 말을 편하게 하면 안 될까?”
“어쩐지 처음 리아 얼굴을 볼 때부터 뭔가 친근감을 느꼈는데 역시 나이가 같았군요.. 참 편하게 말하자고 했죠.. 또..호호... 알았어..”
“시에나... 지금 당장은 내가 말하는 것을 못 믿을 거야.. 물론 나 또한 시에나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고... 일단 도청장치에 대해서 말을 해 줄게.. 도청장치는 말 그대로 시에나가 누구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듣기 위해서 사용하는 거야.“
“이런 나도 그런 정도는 알아..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런 도청장치를 부착한 이유가 뭔지가 궁금하다는 거야”
리아는 이렇게 말하는 시에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이제는 확실하게 전망대에서 사회생활을 단행한 낭도와 시에나는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앞전에 내가 시에나에게 물었던 9월 21일에 시드니 전망대에 가지 않았냐고 물었었지.. 그때 시에나는 시드니에 있었어?”
시에나는 리아가 9월 21일에 전망대를 갔느냐는 것을 묻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9월 21일 오후 6시경 시드니 전망대에서 일본의 전자 상거래의 대부를 포함한 보디가드 등 5명이 테러를 당했다는 내용을 방송매체에서 도배를 할 정도로 나왔던 뉴스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 맞아 그날 우리는 전망대 앞에서 잠시 있다가 영화를 보고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가서 놀다가 새벽 3시경에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가 잠을 잤는데”
“그럼 시드니에 간 것은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간 거야?”
“아니 아빠가 친구들 비행기 티켓하고 호텔 예약까지 해줘서 시드니가서 1박2일간 신나게 놀다가 집에 왔지”
“그런데 전망대 앞에는 왜 간 거야?. 전망대도 올라가지 않고”
“아빠가 시드니에 1박2일간 놀러 보내주는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하셨어. 전망대에서 시드니에 사시는 타이거 아저씨(시에나는 어깨에 호랑이 문신을 해서 타이거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함)를 만나서 전달해 달라고 자그마한 가방 하나를 주셨거든... 아빠 말은 전망대 앞에서 15분간 타이거 아저씨를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주차장에 가면 리무진을 예약해 놓았으니 그 차를 타고 영화 보고 놀다 오면 된다고 하셨거든..”
리아는 전망대.. 영화관.. 호텔.. 하며 시에나가 말하는 장소를 열거하며 생각에 잠겼다.
“참. 리아는 나한테 왜 팔찌를 보여 달라고 한거야?, 또 내 팔찌를 보고 도청장치인지를 어떻게 바로 알아봤지?”
리아는 시에나가 낭도는 아닌 것은 확신을 가졌으나 어떻게 낭도하고 얼굴생김이나 분위기 등 모든 면이 일치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어디까지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에나가 묻는 말에 대한 답을 바로 하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시에나는 답답한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시드니에 간 것을 어떻게 알았어?”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리아에게 시에나는 둥근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빨리 말해달라고 다그쳤다.
“일단 시에나가 시드니에 간 것을 안 것에 대해서 먼저 말을 해 줄게 내가 어제 시에나한테 도청장치에 대한 문자를 보내며 시드니에 갔었냐고 물었었지? 시에나도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9월 21일에 시드니 전망대 타워에서 굉장한 일이 벌어졌잖아.. 사실은 나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어”
“뭐? 그 끔찍한 살인 현장에 있었다고?”
“물론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전망대에 있다가 내려오고 약 10분 후에 사건이 발생한 거야.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내가 시에나를 보았다는 거지”
“뭐 나를.. 나는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리아는 시에나의 말은 듣지 않고 시에나의 눈을 빤히 쳐다볼 뿐 자기의 말만 이어갔다.
“내가 본 시에나는 머리를 한 갈레로 따서 분홍색 리본으로 묶었고, 목걸이는 가는 금줄에 초록색 루비가 박혀있었으며, 바지는 청색의 청바지에 흰옷 반팔을 입었고 신발은 흰색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가 있었는데.....”
리아는 여기까지 빠르게 말을 하며 순간적으로 변화되는 시에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리아가 말을 마치자 시에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어떻게 어떻게 그날 내가 입고 있었던 옷과 신발, 그리고 장식품을 모두 알고 있지?“
여기까지 물어본 리아도 시에나만큼 깜짝 놀랐다.
혹시나 해서 그날 낭도의 옷차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건데 앞에 앉아 있는 시에나와 얼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일치한 것이다.
리아는 또 혼란스러워 졌다.
낭도와 시에나는 같은 인물인가?
낭도 아니 시에나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시에나 미안한데 왼손을 다시 한번 보여줄래?”
“왜 자꾸 왼손을 보여달라고 하는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리아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겠어”
“왼손을 한 번만 보여줘.. 그러면 내가 왜 이러는지 말을 해 줄게”
“사실이지...”
“정말 말해줘야 돼"
시에나는 한 번 더 다짐을 한 뒤에야 왼손을 내밀었다.
“시에나 미안한데 왼손 손등을 알코올로 살짝 닦아도 될까?”
시에나는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리아는 준비해 온 솜에 알코올을 묻혀서 시에나의 손등 전체를 꼼꼼하게 문 지렸다.
혹시 그때 입었던 상처를 화장품으로 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약솜에는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으며 아무리 자세하게 살펴보아도 상처 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리아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지만 낭도와 시에나는 많은 부분에서 닮았고 같은 것 같은데 틀린 인물이라는 아리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아는 알코올이 묻어있는 솜을 화장지에 잘 싸서 근처의 휴지통에 버리고 오면서 시에나 앞에 우뚝 섰다.
“시에나 우리 잠깐 걸을까?”
“.......”
“시에나 진짜 미안한 물음인데.... 지금 부모님이 시에나를 낳아준 부모님이야?”
“아니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입양한 것으로 알고 있어”
“입양?”
“그런데 리아는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묻기만 하지?”
“내가 아주 기분이 나쁘거든”
시에나는 입을 삐죽 삐죽하며 리아를 쳐다봤다.
“미안. 미안 내가 시에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정리가 안되어서 시에나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 중이야... 시에나 정말 미안한데 내가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다음에 시에나가 물어보는 것을 답해주면 안 될까?”
시에나는 뾰로통한 표정이지만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시드니에 갈 때 옷차림하고 머리 스타일, 장신구 등은 시에나가 직접 선택한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이 코디해 준거야?”
“응.. 시드니에 갈 때는 아빠가 옷도 사주고 장신구도 사주셨는데... 그리고 머리 스타일도 아빠가 채용한 미용사가 만져주고..”
“시에나 옷은 매번 아빠가 사주셔?”
“아니 어렸을 때는 내 학교 일하고 일반적인 생활을 봐주던 언니하고 같이 사러 다녔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1년에 몇 번을 아빠가 사 오시는 옷하고 장신구를 한 적이 있었어. 그때마다 얼마나 마음에 안들던지...”
“그럼 작년부터 올해까지 언제 아빠가 사준 옷을 입고 어디를 갔었는지 나한테 알려줄 수 있어?”
시에나는 듣고 있다가 드디어 폭발을 하였다.
“으와 머리 아프고 복잡하다.. 정말 정말 리아는 도대체 왜 그런 것을 자꾸 물어보는 거야? 나를 범인처럼 취조를 하는 것 같이... 그냥 됐어 나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기분 좋은 때 보든지 하자.. 빠이”
리아는 화가 나서 가려고 하는 시에나를 붙잡았다.
“실은 너하고 똑같은 또 다른 너가 이곳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뭐 나하고 똑같은 내가 살고 있다고”
시에나는 무근 가당치 않은 말을 하고 있나 하는 얼굴로 리아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아까 시에나에게 말했듯이 내 스스로도 정리가 안되어서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말을 해야 되나 하고 고민이 되었고 그래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시에나에게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묻고 있는거야 . 그러니까 기분 나쁘더라도 일단은 내가 물어 보는 것에 대해 대답을 해줘. 그리고 나서 내가 왜 이러한 것들을 시에나에게 물어 봤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줄게”
“정말이지...꼭 약속해야되?”
“알았어. 작년부터 언제 아빠가 옷을 사 왔고 또 어디를 가라고 했는지에 대해서 나한테 좀 알려줘 그걸 알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매일 일기를 쓰니 일기장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럼 새로 산 휴대폰으로 날짜와 장소를 보내줘”
“알았어”
리아는 생각해 보면 갑자기 나타나서 시에나와 똑 같은 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다거나 손의 상채기를 보자고 한다거나 부모님이 친 부모님이냐고 물어보는 둥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납득이 잘 되지 않을 황당한 이야기와 질문을 하는데도 시에나가 자신을 믿어주고 대답을 해주는 것에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
“시에나 날 믿어줘서 고마워”
“고마운 것을 안다면 다음에 만났을 때는 무조건 내가 질물을 하고 리아가 무조건 대답해 주기다 알았지?”
“그래 알았어 다음에 꼭 시에나가 궁금한 것들을 모두 말해줄게”
시에나는 시계를 보더니 실습시간이 끝날 때가 되었으니 들어가 봐야 된다며 치과대학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