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십 대의 여인이 대형 거실창을 통해서 해가 지며 분홍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는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서있다.
“부 풍월주님”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대철 대표를 만나 보시겠습니까?”
“최대철 대표라... 만나는 봐야 되겠지.. 그런데 아직 풍월주님이 답이 없으시네.. 최대철 대표를 우리 백성으로 만들지 아니면 그저 이용만 할지에 대해서 문의를 드렸는데... 사안이 크다 보니 풍월주님도 고민을 하시나 봐...”
“아마 오늘이나 내일이면 답신이 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최대철 대표한테는 내가 이번 주는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다음 주 중에 시간을 보겠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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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 저 왔습니다. “
“아-녜.. 고생이 많으시죠..”
“오늘은 형수님한테 물어볼 말이 있었서 찾아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시해당하신 그날 원장님이 신라호텔에 왜 갔는지.. 그리고 아드님은 왜 데리고 갔는지 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신라호텔에 가기 바로 전주 토요일이었어요.. 아이가 물건을 살게 있다고 백화점에 데려다 달라고 보채는 겁니다. 애아빠는 물론 없고 저도 그날 여성 의료인 모임이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평상시 아이를 보살피는 미스정한테 성북구에 있는 현대백화점에 같이 갔다 오라고 시켰습니다. 평상시에도 제가 시간이 없을 때는 종종 그렇게 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애를 데리고 갔다 오라고 했거든요.”
“....”
“그런데 제가 의료인 모임에서 인사말을 하고 모임에 참석하신 분 들하고 인사를 하느라 휴대폰이 들어 있는 가방을 테이블이 있는 곳에 놓아두어서 얼마간 보지를 못하다가 자리에 앉으면서 휴대폰을 보니 미스정으로부터 10여 통의 전화가 왔었던 기록이 찍혀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미스정한테 전화를 하니 흐느끼면서 약 1시간 전에 지환이가 매장에서 갑자기 없어져서 다급한 마음에 나한테 전화를 했고 현재는 진환이를 찾아서 안전하게 데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친 곳은 없느냐고 물으니 다행스럽게 겉으로는 다친 곳은 보이지 않는다 고하여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었습니다.”
“지환이가 혼자 없어졌든 아니면 누군가 데리고 갔었든 전체적으로 봐서는 지환이가 실종된 시간은 약 1시간 이내인 것 같군요”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럼 형수님은 전화를 받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나요?”
“네 걱정이 돼서 나머지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지환이랑 미스정이 먼저 와 있더라고요..”
“그때 형수님이 보신 지환이 표정은 어땠습니까? 예를 들어 형수님한테 갑자기 달려들며 안긴다든가 울음을 터트린다 하는 평상시와 다른 점은 없었나요?”
“전혀요.. 어쩌면 다른 때보다 훨씬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했었어요”
“미스정은 지환이가 없었지게 된 시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던가요?”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현대백화점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옷을 고르고 있는데 지환이 또래의 깜찍하고 이쁘장한 여자아이가 다가와서 지환이에게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처음 미스정은 평소 습관대로 다가온 아이를 경계를 하였으나, 하는 짓이 너무 이쁘고 아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지환이에게 살갑게 말을 하며 장난치는 것을 보고는 그냥 가만히 놔 두었다고 해요..
둘이서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깔깔되며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마음에 안 들면 옆의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또 입어보며 무슨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어요.
그래서 미스정도 마음을 놓고 잠시 한눈을 팔았는데 어느 순간 지환이하고 여자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미스정은 원장님께서 직접 뽑은 재원 아닙니까. 머리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자신의 오빠가 지환이 같이 지적장애가 있어서 누구보다도 더 지환이를 잘 이해한다고 했었는데요. 그리고 미스정은 눈썰미가 뛰어나서 눈이 백개가 있는 메두사 같다면서 칭찬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미스정이 어떻게 지환이를 놓쳤을까요?”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지환이하고 여자애가 새로운 옷 매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삐끗하며 푹 넘어지더라는 겁니다. 미스정은 바로 할머니를 부축하여 일으켜드렸고 할머니는 고맙습니다 하며 가셨데요.”
“그럼 미스정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바로 지환이를 확인했는데 그 매장 안에 지환이가 없었다는 건가요?”
“예 맞아요.. 그 시간이 5초도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미스정은 처음에는 다른 매장에 있나 하고 이곳저곳 찾아봤으나 6층의 모든 매장을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방재실로 가서 방송을 이용하여 사람을 찾는다는 안내방송을 한 후 CCTV를 확인해 보니 약 15분 전에 지환이하고 여자애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 식품코너로 가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하 1층 식품코너로 갔다는 거지요?”
“네 미스정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지환이하고 둘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CCTV로 확인한 후 급히 식품코너로 가 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서 백화점 방재팀과 식품코너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해 보니 떡볶이 판매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약 10분 전에 둘이 갔다고 합니다.
미스정하고 방재팀은 지하 1층을 샅샅이 뒤졌으나 어디에서도 찾지를 못해서 다시 방재실로 가서 CCTV를 확인해 보았으나 역시 어디에도 CCTV에 녹화된 흔적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미스정은 다급한 대로 지환이의 아빠 신분을 대고 모든 방재팀을 동원하여 백화점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게 하였으며 또한, 방송으로 지환이 찾는 안내를 몇 차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의 행방은 묘현 했었는데 몇 분이 지났을까 모니터링 직원으로부터 “여자애가 나갑니다” 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서 미스정이 급하게 가보니 지환이랑 같이 놀았던 여자아이가 정문을 통해서 바쁜 걸음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정문 근처에 있는 보안팀에 전화를 해서 여자아이를 잡으라고 했으나 여자아이는 정문을 나선 후 어디로 갔는지 찾지를 못했다고 해요.
그 후 백화점의 모든 곳을 이 잡듯이 찾아보고 CCTV를 확인하였으나 찾지를 못하다가 여자아이가 정문을 나간 후 20분 정도 지난 뒤에 4층 여자 화장실에서 지환이가 불쑥 나타났다는 겁니다. “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형수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컵을 들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미스정이 갑자기 나타난 지환이를 보고 어디 갔었냐고 물으니 생글생글 웃으며 ”화장실인데요. 화장실인데요 “ 하며 밝은 표정으로 말을 했데요.. 미스정도 혹시 나쁜 사람들한테 나쁜 일을 당했다면 감정을 컨트롤 하지 않는 지환이인 지라 진짜로 화장실에 갔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스정이랑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지환이가 ”오늘 재미있었어.. 그 아이 참 좋아,, 참 이쁘다.. 풍선도 잘 불어 그렇데 다섯 밤 자면 다시 볼 수 있다. 히히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며 아주 행복해했다는 겁니다. “
“아니.. 잠깐만요.. 미스정의 말에 의하면 방재팀이 백화점의 모든 공간을 샅샅이 찾아보았다고 하고, 또한 지환이가 여자화장실로 갔다면 분명히 CCTV에 녹화되어 있었을 텐데 왜 못 찾은 거죠?”
“그러네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도 그게 의문이네요. 그때 저는 단지 지환이를 다시 찾은 것이 기뻐서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럼 그날 형님한테도 지환이가 1시간 정도 실종이 되었었다는 것을 오늘처럼 세세하게 말씀을 드렸나요?”
“아니요.. 저는 지환이가 별 탈 없이 무사하게 돌아왔고 또 그날따라 지환이가 무척이나 흥이 나 있거든요.
“흥이 나 있었다고요?”
“네 애 아빠가 들어오니까. 아빠 하며 달려가는 거예요. 뭐 평소에도 퇴근하면 꼭 지환이를 안아주기는 했었지만 그날처럼 지환이가 달려가서 안긴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거든요”
오새근 부장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정원장과 지환이가 얼싸안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며 또다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애 아빠는 지환이가 기분 좋게 웃으며 안겨오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지 환한 얼굴이 되어서 지환이를 평소보다 더욱 힘 있게 포옹을 해 주었어요,”
그러면서 국정원장과 지환이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빠. 아빠. 나 말이야 응.. 나 말이야 오늘 너무너무 행복하다..
오늘 말이야 오늘 말이야 풍선도 있었는데.. 그게 말야 진짜 많이 있었다. “
지환이는 흥분하면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그냥 마구 말하는 습관이 이었다.
“친구가 이쁜 친구가 말야 나랑 손잡고 이쁜데 말야 재미있게 놀았다.
근데 말야 이쁜 친구를 또 볼 수 있다. 나랑 약속했거든.. “
“우리 지환이 친구 생겼어?”
“아니 생긴 게 아니라 이쁜 친구가 나랑 응.. 나랑 놀았단 말야.. 히히”
“뭐 하고 놀았는데?”
“떡볶이도 먹고 응... 응.... 풍선.. 풍선이 아주 많았어.. 풍선놀이가 정말 재미이었어.. 응 풍선 말야.. 풍선.. 푸.. 부는 풍선 말야.. 히히”
“아이고 우리 지환이가 정말 재미있었나 보네.. 하하하”
“근데 아빠 말야.. 다섯 밤 자면 또 보기로 했다. 다섯 밤.. 그러면 이쁜 친구 만나기로 했다.. 히히히”
“다섯 밤 자면? 친구를 허-우리 지환이 새로 만난 친구랑 노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나 보네..”
“근데 말야 아빠 아빠 우리 거기서 자야 돼.. 밤에 보기로 했거든.. 밤에 말야 친구가 풍선 많이 가지고 온데.. 거기로 온데.. 정말 정말 좋아..”
“허- 참.. 지환아 아빠도 같이 가야 돼?”
“그럼 누가 나를 데리고 가? 나는 아빠랑 가야 돼.. 거기서 이쁜 친구도 만나야 돼.. 응.. 아빠.. 지환이 소원이야.. 소원.. 히히”
국정원장은 막무가내로 때를 쓰는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덖였다.
“엄마는?”
“엄마는 집에 있으면 돼.. 야호 다섯 밤 다섯 밤 다섯 밤.. 히히.. 지환이는 오늘 너무 좋아.. 히히.”
지환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뛰어서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지환이가 자기 방으로 올라간 후 그날 백화점에 있었던 이야기를 국정원장한테 해 주었으나 간혹 지환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눈에 띄면 그것을 쫓아서 가는 바람에 지환이를 찾는 일이 근래에도 몇 번인가 있어서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옆에 있는 비서를 시켜서 금요일에 신라 호텔 스위트룸 예약을 지시하였다.
여기까지가 그날 있었던 지환이하고 국정원장의 대화 내용이라며 말을 해 주었다.
“그럼 그 여자아이하고 만나기로 한 날 국정원장님과 지환이가 사고를 당한 거네요.”
“네 맞아요..”
“그럼 이런 사항을 수사관들한테는 전달을 했을 거고, 그럼 그날 만나기로 한 여자아이한테는 별이상한 점은 없었다고 하나요?”
“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여자아이는 자신은 백화점에서 지환이하고 떡볶이를 같이 먹고는 바로 헤어져서 집으로 왔었고, 지환이하고 신라호텔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형수님 제가 수사관들과 우리 쪽을 통해서 정보를 더 수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장님.. 꼭좀 잡아주세요.. 우리 지환이..지환이가 너무 불쌍합니다..”
“네.. 형수님..”
오새근 부장은 허둥지둥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더 오래 있다가는 또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였다.
오새근 부장은 너무나 익숙한 골목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며 하늘을 올려봤다.
등뒤에서는 낯익은 목소리로 부르는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하는 국정원장 형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