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인이십니다. 하하하”
“.....”
호탕한 성격을 가진 최대철 대표가 기분 좋게 웃으며 정치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말을 했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짙은 남색계통의 한복을 다소곳이 입은 여인은 살짝 미간만 찡그일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핫핫하 죄송합니다. 저는 킬러조직을 움직이는 보스라는 생각을 해서 좀 사납게 생기시지는 않았을까 했는데 너무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을 하고......”
하며 말을 이어가던 최대철 대표는 단아한 모습을 한 여인의 뒤에 선글라스를 끼고 서있던 남성이 “참 말이....” 하며 한걸음 다가서자 웃음과 말을 삼켰다.
짧은 순간이지만 뭔가 소름이 오싹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철 대표는 긴장감이 들었다.
오늘 첫 대면이며 짧은 순간이지만 이 모습들이 고도로 훈련이 잘된 군사조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세를 바로 잡고 정좌를 하고 바로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호호호... 우리 형제들이 있어서 부담스럽죠.. 그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며 오른손을 살짝 들어서 흔드니 뒤에 서있던 두 사내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오늘 손님이 오지 않습니다. 저희가 최대표님을 생각해서 조치를 다 취해 놓았습니다. 걱정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한테 의뢰한 일에 대한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를 하셨었지요?”
“네 검토를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대표님한테 전달한 조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겠습니다”
“네 요청하신 조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가지 조건 중 두 개의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좀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구 조건 중 첫 번째는 다음 총선에서 조직에서 요구하는 사람을 저의 지역구에 후보자로 내세울 것 두 번째는 남한산성 밑을 지나는 터널을 파서 송파에서 광주로 바로 연결되는 도로를 만들 것 세 번째는 현재 야당 의원인 최지만 의원이 앉아있는 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직을 여당의 이미정 의원으로 바꿀 것입니다. 위 세 가지는 제가 어떻게든 힘을 써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가지는....”
“잘 아시겠지만 저희가 최대표님한테 의뢰받은 일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큰일을 하시는 분의 부탁이라 저희도 최대한 긍정적인 가능성 열어 놓고 검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검토한 결과를 저희가 요청하는 조건을 첨부하여 최대표님한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대표님도 모든 것을 검토한 후 우리에게 일 처리를 요청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요구 조건이....”
단아한 모습의 여인은 왼손을 들어 최대표의 말을 저지시켰다.
“잠깐.. 우리의 조건은 명확합니다. 지금은 서로 협상할 때가 아닙니다. 협상은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는 것이고 지금은 조건에 대하여 실행하는 단계입니다.”
“아니 제가 요구 조건을 안 들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 힘으로는 어려우니 협상을 하자는 겁니다.”
“.....”
“네 번째가 혹시 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총리 인준을 조직에게 맡기라는 것인데 그건 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가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을 민간으로 넘기라는 것인데 그것 또한 반대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민간으로 넘긴다고 해도 당신 조직이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장담을 못하고요.”
“민간으로 넘기는 것 까지가 최대표님이 하는 일이고 다음부터는 우리가 할 일이니 우리 일까지 걱정하지는 마세요.”
“.....”
“최대표님! 최대표님과 우리를 처음 연결을 시켜준 이천 안상태 쪽 사람들한테 우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들었을 텐데요.. 우리는 단순한 살인 청부업을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
“조만간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갈 겁니다. 그때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 사람들한테 우리 측에 전달할 내용이나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와 최대표님을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믿고 이런 중대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직접 만나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들 모두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일들을 맡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한분은 현 여당의원인 한동철 의원이고 또 한 명은 서울 중앙지검의 구본수 검사장입니다.”
“예?”
“자 오늘은 시간도 늦었으니 여기까지....”
최대철 대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의문의 여인과 헤어져서 이천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상황을 생각하면 할수록 어떻게 이 상황을 수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조직의 방대함이었다.
어떤 조직이길래 현역 여당 실세의 중진 국회의원과 검찰의 최고 실세인 중앙지검장을 수족으로 부릴 수가 있는 것인지 온몸의 힘이 빠질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처음 최대철 대표가 이 조직을 알게 된 것은 불가 몇 주 전으로 이선재 국정원장이 자신의 신변은 물론이고 수원지방신문 기자 살해사건과의 연관에 대한 것 등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자신을 협박한 후 안상태의 아들을 만나고 나서였다.
최대철 대표는 수원지방신문 기자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자신도 신문기자가 살해된 후 뉴스를 보고 알았으므로 직접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안상태에게 지방신문 기자의 입을 막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이니 직접 관여 여부를 떠나서 이 사실이 세상에 공개가 될 경우 자신의 정치생명은 끝나리라는 것을 불을 보 듯 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안상태가 죽은 후 한동안 사이가 소원하였던 안상태 아들 안태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최대철 대표는 속도를 내며 경충대로를 달리는 차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 안으로 들어왔다.
“휴-우”
최대철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이선재 국정원장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대철 대표는 머리를 흔들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은 바로 나온다.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최대철과 관련된 탑은 일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자신은 살인 교사죄로 차가운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최대철 대표는 운전대를 꽉 한번 잡고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서 만을 생각하기로 하였다.
우선 안태일한테 전화를 걸어서 저녁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
안태일은 저녁 늦게라도 보자는 최대철 대표의 전화를 받고 생각에 잠겼다.
육 년 전 안상태가 두 명의 측근을 시켜서 지방신문 기자를 살해한 후 태국으로 도피를 시키게 되었었는데 그중 한 측근은 사 년 후에 그리고 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또 다른 측근은 안상태가 죽은 후 안태일이 조직의 힘을 굳건히 하고자 부랴부랴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태국으로 갑자기 떠난 두 심복에 대해서는 어떠한 물음도 묻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려서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돌아온 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허태경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최대철 대표의 요청으로 안상태로부터 은밀히 누군가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지시의 대상이 지방 신문기자였다는 것이다. 허태경과 또 다른 측근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지방 신문기자를 살해한 후 태국으로 도피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듣게 된 것이다.
안태일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쾌재를 불렀다.
안태일은 최대철 대표보다 두 살이 아래다.
안태일이 생각하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는 최대철로 인하여 항상 비교되며 아버지 안상태로부터 혼이 나는 일상이었다.
바둑이든 싸움이든 공부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최대철에 비해서 자신은 말썽만 피우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안태일은 아버지의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어휴.. 저 놈하고 저놈이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탄식을 너무 자주 들었었다. 그때마다 안태일이는 최대철이인가 뭔가 하는 놈이 왜 나타나서 자신이 욕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최대철이가 검사가 된 후 자신이 이일 저 일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마다 친 형제처럼 알뜰하게 챙겨주고 이천에서 자신이 힘쓸 수 있도록 남모르게 뒷배를 자처해 준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이제는 최대철이를 미워하기보다는 은근히 최대철의 힘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친삼촌처럼 따르는 허태경으로부터 몇 년 전 최대철 대표와의 관계를 듣게 되니 안태일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태일은 근래 사업도 사업이지만 권력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도로사업이나 폐기물 처리 사업 등의 각종 허가나 민원 사항들이 있을 때 시청 직원과의 뒷거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효과가 있는 것은 시의원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특히, 신도로 건설이나 친 환경사업 등의 정보는 시의회에서 많은 부분이 계획되어 정해지는 것을 봤을 때 시의원 자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태일은 우선 자신의 고향 동네인 마장에서 출마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였다.
마장은 지금은 돌아가시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칭송 하는 노인네들도 많이 있고 특히 이곳은 최대철 대표가 국회의원을 하고 있으므로 시의원 공천을 받기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안태일이 이러한 공상을 하며 지내고 있을 때 마침 최대철 대표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최근 최대철 대표와 안태일의 관계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뒤로는 뭔가 관계를 연결하는 끈이 떨어진 것처럼 조금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던 터였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최대철 대표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