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들다.

제24화 이선재 국정원장..

by 이and왕

이철주의 국정원장 인선은 속절속결로 이루어졌다.

여당 쪽에서 추천을 하고 야당에서는 일부 반대가 있었으나 형식적인 사항이었으며 야당 대표인 최대철의원이 국정원의 완전한 개혁을 조건을 걸며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철주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 바로 내부 인사를 단행했다.

우선 중요 본부장급은 외지의 한지로 뿔뿔이 떨어뜨려서 발령 조치를 하였다. 특히 국정원의 실세 중에 실세인 오새근 총괄본부장을 남미의 지부장으로 발령을 하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조치에 대해서 많은 반감이 있었으나 여권은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최대철 대표가 과감한 혁신이 필요할 때 이를 용기 있게 실천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어 별다른 잡음 없이 넘기고 있었다.

전 국정원장의 시해에 대해서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오새근과 옥혜인 본부장 등이 각각 한지로 발령이 나면서 주도적으로 이 사건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국정원 내부에는 없게 되었다.

오새근 총괄본부장은 남미지부장으로 발령을 받은 즉시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사직서는 바로 수리가 되었다.


오새근은 팔당의 수원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선재 국정원장의 가족묘역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국가에서는 이선재 국정원장을 현충원에 안장을 시킨다고 하였으나 국정원장이 애지중지한 아들 지환이하고 같이 묻히는 것을 더 원했을 것이라며 가족묘역에 묘를 만든 것이다.

오새근은 노란 양재기에 막걸리를 넘실넘실 따라서 상석 위에 올리고 한뺌도 더 되는 마른오징어의 다리를 북 찢어서 옆에 두었다.

우선 노란 양재기에 따른 막걸리 잔을 들어 묘테를 따라 죽 붓고 오징어 다리와 담배에 불을 붙여서 상석 위 묘테위에 얹혀 놓았다.


오새근은 이선재 국정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이십사 년 전이었다.

부산지역 마약 단속반과 합동으로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연계된 국내 조직을 추적할 때였다.

오새근은 부산 국정원지부 소속으로 명태를 잡는 원양어선으로 위장을 하고 다량의 마약을 명태의 뱃속에 집어넣고 들어 온다는 첩보를 받고 매복하여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복을 하고 있었고 이선재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이 규모가 크다 보니 서울 본부에서 직접 파견 나온 팀장이었다.

현지 정보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첩보 내용은 배에 탄 사람들은 국내 조직원들 몇 명과 실질적인 어부들 이십여 명이 타고 있다고 하여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이들을 덮쳤을 때 러시아 마피아 소속 세명도 타고 있었고 이들이 저항을 하며 쏜 총알을 이선재 팀장의 어깨를 관통하는 총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선재 팀장이 총을 맞고 쓰러지자 근처에 있던 국내 조직원 하나가 칼을 빼들고 덤비는 것을 오새근이 몸으로 막으며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선재 팀장은 몸을 추스르고 부산을 방문하여 오새근을 만나서 저녁에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배짱이 서로 맞아 이선재 팀장이 자기 밑으로 오새근을 불러 올리면서 인연이 된 것이다.

이선재는 오새근이 사내다운 면면도 있지만 일처리도 무척 깔끔하게 처리를 하여 남다른 애정을 보였었다.

둘은 술도 국정원 내에서도 소문난 주당들이었다.

술자리의 맨 끝은 항상 두 사람이 남았으며 맨 마지막 술은 막걸리였고 안주는 마른오징어였으며 장소는 강이 바라다 보이는 장소는 어디든 자리를 잡았다.

이선재는 술이 거나해지면 부산에서 자신을 살려주었다며 오새근을 “내 목숨 주인”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한잔 마시고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노래를 부르고 또 한잔 마시고 “우리 지환이 지환이” 하며 호탕하게 웃고는 하였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차까지 거나하게 마시고 마지막으로 막걸리 세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사고는 한강변에 앉아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이선재 국정원장은 전라도 삼례읍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부모님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부엌옆의 공간에 기둥을 세우고 여기저기서 얻어온 판자를 덧붙여서 만든 작은 전방을 했었다.

전방이라 봤자 작은 시골 가게였고 아이들 주전부리로 건빵이나 알사탕 등과 같은 것 몇 개와 막걸리를 팔았다.

막걸리는 어머니가 직접 쓴 누룩으로 만드셨는데 맛이 얼마나 좋던지 주위의 타 마을까지도 소문이 자자해서 막걸리를 마시려고 오고는 하였다.

막걸리 안주로는 그날그날 어머니가 만든 두부도 있었으나 팔다 남으면 보관이 어려워 소량을 만드셨고 대신 보관이 수월한 마른오징어를 몇 축 정도를 사서 돈통 위쪽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돈통 뒤쪽으로 황토흙을 이용해서 한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도록 작은 토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겨울에도 바닥이 따뜻하도록 흙바닥 밑에는 구들을 깔아 놓았다.

어린 이선재는 아슬아슬 추위가 느껴질 때면 어머니 무릎을 베고 토방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워 있으면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토닥일 때 어머니의 옷자락이 살짝살짝 펄럭이면 아지랑이 피는 언덕옆으로 파아란 새순이 돋아나고 새순이 엄지손가락만큼 커지며 하얗기도 하고 선홍색이기도 한 찔레꽃 꽃망울이 올라올 때 맡아지는 옅은 달콤한 향내가 났었다.

그리고 몸을 반듯하게 눕혀서 천정을 바라다보면 돈통 위쪽에 매달아 놓은 마른오징어가 새끼줄에 매달려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가난한 살림이라 고기는 추석이나 설 정도의 명절이나 구경을 할 수 있었고 그나마 오징어는 가게를 해서 항상 있었으나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눈이 무서워 감히 먹지는 못했었다.

어린 이선재가 오징어를 빤히 쳐다보며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빈 입으로 질겅질겅 찝는 시늉을 하면 어머니는 오징어를 바라보며 “먹고 잡냐?” 하시며 머리를 가만히 들어서 바닥에 눕히고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오징어에서 툭 불거져 있는 오징어 입을 뚝 띄어 내서 주시고는 하는데 까만색의 오징어 입부리를 살살 발라서 띄어내고 나머지를 돌돌 말아서 입에 넣으면 짭조름한 맛이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이선재 국정원장은 나이가 들어 국정원에 입사를 하고 나서도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술자리의 끝은 항상 막걸리 한 병과 오징어를 사서 한강변에 앉아 마시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고 했다.

이선재 국정원장의 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시일을 보내다가 오새근 국정원장이 중학교 때인 사십 중반에 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근 삼 년 동안 어머니를 모질게 괴롭히다가 돌아가셨고 이후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고생고생 하다가 이선재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막 입사하자마자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참말로 한 많은 세상 지랄스럽게 고생만 했다 그래도 우리 선재가 있었서 살았지.... 우리 선재 때문에 살았제” 하시며 자기 손을 꼭 잡고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죽거든 화장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시집을 가기 전 처녀시절까지 보냈던 곡성의 제월리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에 뿌려달라고 몇 번이고 말씀을 하셨었다 했다.

이선재 국정원장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외할아버지를 몹시도 그리워했었는데 외할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는 젖먹이를 부퉁 켜 안고 이리저리 젖동냥을 해서 키웠고 그렇게 자란 딸이 몹시도 불쌍해서인지 뱃사공이셨던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을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해가 늬엇늬엇 넘어갈 때쯤 외할아버지는 큰 양재기에 넘실넘실 따른 막걸리를 목울대가 위아래로 큼지막하게 움직일 정도로 마시고는 “커 – 좋다” 하고는 팥떡을 한 움큼 깨물며 “자 우리 이쁜 금실이도” 하며 손바닥만 한 팥떡 한 개와 송아지 눈알만 한 알사탕을 주시며 “허허”하고 기분 좋게 웃으며 배를 저어서 집으로 돌아가고는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막걸리 한잔을 거하게 마시고는 구슬픈 목소리로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라는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뱃길이 정말 좋았었다고 누누이 말씀을 하셨었다.

하늘은 붉은 노을이 가득 차고 넘쳐서 섬진강변으로 까지 붉게 물들이고 가끔 두루미 한 마리라도 날아올 때는 정말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러한 옛날이 그립고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팔다 남은 막걸리 한 되를 다 마시고 돈통 위에 걸어 놓은 오징어 한 마리를 빼내서 긴 다리를 북-찍어서 “이건 우리 선재 꺼” 하시며 주시고는 다른 다리를 북-찢어서는 달게 씹으시고는 하셨다.

어머니는 해 질 녘의 둑너머로 잔잔하게 흐르는 만경강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아버지가 부르시던 두만강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부르셨고 그럴 때는 어머니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고 했다.

이선재 국정원장은 어머니가 화장을 해서 재월리 앞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에 뼈를 뿌려달라고 하여 뿌려 드렸는데 한참이 지난 후 그 일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재월리 강변에 있는 흙을 퍼오고 어머니가 고이 간직해 둔 외할아버지와 찍은 딱 한 장의 사진을 넣어서 합장하여 현재의 이곳에 모셨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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