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말 못 할 이야기

by 홍승남

*본 에피소드에는 정신적인 어려움과 관련된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이런 이야기가 독자분들의 마음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고려하시어, 계속 읽으시거나, 아니면 이번 에피소드를 건너뛰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운동선수분들의 은퇴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어떤 교직원분께서 본인과 친분이 있는 가족이 선수 은퇴와 관련된 아픈 사연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 아픈 사연은, 선수분께서 은퇴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을 앓으시다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가족 분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남겨진 가족 분들의 마음을 저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 또한 운동선수의 가족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기에 도저히 상상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선수 분의 가족분들께서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시어 학교에 찾아와 주셨고, 그분들의 눈을 처음 마주 한 순간, 그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득히 깊은 슬픔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차마 말로 꺼내기 힘든, 가슴에 한이 맺히는 이야기를 저에게 담담히 전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참담한 비극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그렇게 젊디 젊은 그 선수에게, 그리고 그 선수분의 가족들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감당하기 버거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족분들께서는 용기를 내어 운동선수분들의 정신 건강, 특히나 은퇴 후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가슴이 미어져 도무지 꺼낼 수 없는,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으셨지요. 처음 만난 저에게,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공유해 주실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선수의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은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는 선수분들의 사례를 안타깝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경험하시게 되는 분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정체성의 소멸이 그 요인 중 하나이고, 목표 상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같은 여러 중대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면서 선수분들께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시는 사례를 많이 봐왔습니다.


이렇게 선수분들께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주변에서 이해하고 도움을 드리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은퇴 전 미리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실 수 있다면, 그 또한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수분 개인께서 다 감당하셔야 할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가까운 가족, 친구, 지인들의 이해, 시기적절한 위로와 도움, 더불어 선수 분들의 은퇴 후 삶 준비를 돕기 위해 체계적으로 제공되는 조직차원에서의 지원 등이 함께 수반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때, 그 이해하는 마음이 당장 그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내가 해결할 수 있으리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여러 나라의 스포츠 조직들의 선수들의 진로 발달 및 은퇴 후 준비를 위해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들에 대해 조사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각국의 스포츠 조직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참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분들께서 얼마나 쉽게, 유용하게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고, 도움을 받으셨는지에 대한 연구가 아직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학문적으로도, 실무에서도 중요하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아직 하지 못한 연구가 바로 선수분들의 가족분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가족분들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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