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 중 한 명이 운동선수였기에 저도 선수의 가족으로 살아왔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저의 부모님께서 선수의 부모로서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정말 뼈저리게 느끼셨겠지요. 저는 단지 제 동생과 저의 부모님을 바라보는 관찰자 입장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자유로운 대학생활에 취해, 동기들과 선배들과 신나게 마셨던 술에 취해, 비틀비틀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고3을 앞둔 동생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이야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사춘기를 먼저 겪고, 대학 생활을 한다고 바쁜척하며 나돌아 다니느라 동생이 다른 도시에서 가족도 없이 홀로 얼마나 힘들게 운동하는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런 철딱서니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던 많은 날 중의 하루였습니다.
‘누나, 나 운동 그만하고 싶어’
동생이 저에게 먼저 이렇게 문자를 보낸 것이 거의 처음인 것 같았고, 그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낚시하거나 만화책이나 보면서 가만히 있고 싶어’
동생이 그 당시 떠올릴 수 있었던,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는 일이 아마도 낚시와 만화책 읽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신나서 들여 부은 술이 확 깼습니다. 너무 그 상황이 간절하게 느껴서 인지, 그 순간 저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 아빠는 걱정하지 마. 누나가 알아서 잘 이야기할게’
저의 대답이, 다 표현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후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이후로 동생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날을, 살면서 종종 떠올립니다. 그때 내가 입을 잘못 놀렸더라면, 순간적으로 든 생각을 그때로 쏟아 내버렸더라면, 어떻게 할 뻔했을까 아찔했습니다.
‘야, 인마! 엄마 아빠가 지금까지 너 뒷바라지하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이게 뭔 약해빠진 소리야!!!’
라고도 할뻔했습니다. 실망하실 아빠의 얼굴이, 가슴이 무너질 엄마의 얼굴이, 가장 먼저 스쳤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운동선수분들의 은퇴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기 전 동생은 결국 아주 어릴 때부터 품어온 올림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은퇴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그토록 좋아했던 올림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올림픽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제 나름의, 올림픽의 꿈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꿈을 접은 제 동생의 마음과 제 마음을 절대 비교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떠올려 봅니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신 아빠, 동생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삶의 희망, 원동력을 가지시던 아빠, 다른 도시로 운동하러 간 어린 아들을 보내고, 가슴이 미어져 늘 눈물로 밤을 새우시던 엄마, 형의 시합을 보러 갔다가 너무 긴장하고 마음 졸인 탓에 시합이 끝나고 병이 난 우리 막내 동생.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운동하는 동생을 응원했었습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선수분들께도, 선수분들의 가족분들께도.
사랑하는 마음을,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밀려오는 절망감과 안타까움을 피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지금도 고민해 봅니다. 어떻게 하면 선수분들의 가족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가족분들께서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사전에 미리 하시고, 선수분들께 보다 건강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뒷받침을 해주실 수 있도록, 가족분들께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더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