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22)
12월 26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KF 결과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룰루가 먼저 연락을 했다. 룰루와 랄라는 지난 8월에 KF(한국국제교류재단)가 모집하는 한국어펠로십에 지원했다. 선발되면 한국에 6개월 동안 머무르며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다. 나도 참가하고 싶은 조건인데, 아쉽게도 한국인은 지원할 수 없다.
8월 말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서류 전형 결과를 기다렸다. 한국어 능력을 검증하는 인터뷰가 11월 중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그보다 훨씬 이른 10월 18일에 인터뷰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인터뷰가 끝난 날부터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 발표 예정일은 ‘12월 중’이었지만 이 역시 일찍 발표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결과는 좀처럼 발표되지 않았다. 기다리는 날이 더해질수록 기대감은 진해졌다. 11월이 다 지나도 결과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KF가 발행하는 뉴스레터가 자주 이메일로 날아왔다. 아이들은 이메일을 매일 확인했는데, KF라는 글자만 보면 일단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결과 발표랑은 하나도 상관없는 뉴스레터일지언정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 그러나 12월 들어서는 그것도 시들해지고 아이들 입에서 ‘이놈에 뉴스레터’라는 푸념이 새어 나왔다. 12월 첫째 주에 아이들은 다시 조금 기운을 내서 한 주 동안 열심히 결과를 기다렸다. 둘째 주에도 기다렸다. 너무 열심히 기다린 탓에 셋째 주에는 좀 지쳤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러다 1월에 날 수도 있다’며 깐족거렸다.
나는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걱정을 조금 했다. 둘 다 선발되어 한국에 가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차라리 둘 다 못 사는 것이 차선이다. 둘 중 한 명만 가게 되는 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룰루와 랄라는 가장 친한 친구다. 두 사람은 대학생활을 함께하면 희로애락을 공유했다. 그런 두 사람이 한국행을 두고 길이 엇갈려 가게 된 사람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못 가는 사람은 질투를 하게 될까 걱정했다. 많은 외국의 학생들이 지원을 했을 텐데, 한 나라에서 두 명이나 선발을 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여서 나는 인터뷰 이후로 아이들과 KF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고된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죽음의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메신저의 미리 보기로 본 룰루의 메시지 [KF 결과 나왔습니다.]에 가슴이 요동쳤다. ‘-습니다.’라는 정중한 종결어미에서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합격이면 이보다 덜 정중하고 훨씬 더 방정맞은 말투로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와츠앱을 열었다. 다음 문장을 읽었다.
[근데 어떻게 확인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결과를 확인하는 방법을 모른다니? KF에서 받은 이메일을 나에게 전달해 달라고 해서 내가 직접 봤다. 방법은 간단했다. KF홈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하고 ‘나의 사업’ 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그대로 했다. STATUS(상태)에는 Accepted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게 지원서가 제출됐다는 의미인지, 지원이 받아들여졌다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한국어 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했다. ‘상태’에 ‘지원 확정’이라고 쓰여있다. 합격이라는 건가, 선발이 됐다는 건가. 긴가민가했다. ‘합격’이나 '선발'이라고 쓰여있지를 않으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 보면 지원을 신청한 것에 대해 지원을 확정했다는 의미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숙면을 취하다 갑자기 긴장한 나는 한국어로 ‘지원 확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룰루도 같은 결과라고 하니 더 혼란스러웠다. “둘 다 선발이 됐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둘 다 안 된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룰루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확실히 물어보자고 했다.
[지원 확정이 무슨 뜻인가요?]
금방 답장이 왔다.
[상태에 ‘지원 확정’이라는 문구가 있다면 2024년 한국어펠로십 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
이 얼마나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인가(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아이들이 한국에 간다.’ 이 문장이 그날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들은 무척 신나서 하루종일 앉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여행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서 누운 채로 기뻐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다. 아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한국에 대해 제법 아는 것 같아도 직접 맞닥뜨릴 한국의 물가와 날씨, 사람들이 다 걱정이다. 아이들은 ‘선생님, 한국에서 생활비는 얼마나 들어요? 교통비나 식비는 얼마 정도예요? 옷은 얼마쯤 해요? 이런 것을 물었다. 아이들은 기숙사 비용 50만 원에 조금 놀란 눈치다. 나는 “그 동네에서 월세 살면 한 달에 100만 원이야...”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기숙사가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가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둘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복잡한 인천공항에서 복잡한 서울 도심으로 가서 복잡한 길을 찾아 숙소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들은 길을 잃어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나다.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다.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아이들이 스리랑카에서 반푼이처럼 살던 나를 도와준 일들이 하나씩 기억난다. 배시시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