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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Jan 09. 2024

바리스타의 단골이 되었다.

Ppaarami’s Diary(27)

1월 6일


  늦잠을 잤다. 컨디션이 별로다.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드문 일이다. 지금 나, 피곤한 건가? 왜 피곤한지 모르겠다. 요즘 스트레스가 좀 늘기는 했다. 그래봤자 히카두와(스리랑카의 아름다운 해변마을) 여행을 금요일에 떠날지 토요일에 떠날지를 고민하느라 생기는 정도이다.


  주말 아침에 피로를 느낀 현대인이라면 다음 행동은 뻔하다. 화장실에 가서 방광을 비우고 물을 마셔서 간밤의 갈증을 달래고 다시 침대로 올라간다. 눕는다. 휴대폰을 조물거리다 잠든다. 이걸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하다 하루가 끝난다. 내 10년 간의 주말이 이러했다.


  다르게 살려고 다른데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을 챙겨서 카페로 갔다. 집에서 3km 떨어진 카페 ‘Barista’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카페라테를 마시고 싶을 때, 꾸덕한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 적당히 조용하면서도 적당히 시끄러운 공간이 필요할 때, 집이 정전 상태라 달리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을 때마다 여기에 왔다. 

  매번 이곳에 온 이유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카페의 기준에 부합하는 장소(아메리카노를 판매하고, 브레이크타임이 없고, 에어컨을 가동한다.)가 인근 3km 내에 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적당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카운터로 갔다. 어떤 음료를 마실지는 이미 결정했고, 케이크를 먹을까 말까 정하지 못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직원이 말했다.

“카페라테지?”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알았지.


  나는 아메리카노 성애자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카페에 갔을 때 수많은 메뉴 중에 아메리카만 선택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신다. 하루종일 아메리카노만 마신 날도 있다. 반면 카페라테는 좋아하지 않는다.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스리랑카 우유는 더더욱 사양한다. 나는 분유를 먹지 못하는데, 스리랑카 우유에서는 분유 향이 난다. 그런데 희한하게 라테는 맛있다. 바리스타 라테는 특히 맛있다. 딱히 고소하지도 않고 더 부드러운 것도 아닌데 맛있다. 원래 내가 라테 체질인데 아메리카노 밖에 모르는 바보라서 그 맛을 즐기지 못하고 살았던 건가 싶다.

“그래, 라테 좋지.”     


바리스타의 카페라테.  650루피


  오랜 우기가 지나갔다. 두 달 동안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 비가 오고 있으면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런데 라테를 주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직원에게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머쓱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조금 따뜻해졌다. 성냥이 켜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냥한 마음을 받으면 마음에 켜지는 작은 불.     


길에 주저앉아 혼자 울고 있을 때 무심히 손에 휴지를 쥐어 주고 간 누군가의 상냥함.

소나기에 쫄딱 젖은 채 버스를 탔을 때, 나 때문에 자신의 옷이 젖게 된 것을 탓하는 대신 손수건을 건네준 상냥함.

빈약한 나의 식판 위에 바나나 하나를 얹어주던 여인의 미소와 

티도 나지 않게 내게 자리를 내주고 선 채로 책을 읽던 팔 척 장신 아저씨의 초록색 눈동자가 성냥을 켠다. 

성냥개비는 참나무장작처럼 오래 탄다. 성냥이 타는 동안 나는 따뜻하다.      





  라테가 왔다. 오늘 아트는 망한 모양이다. 서버의 얼굴이 낯설다. 신입인가 보다. 잘도 이런 라테를 가지고 왔겠다. 그렇다면 내가 아주 맛있게 마셔주겠다. 나가면서 기어코 오늘 커피 잘 마셨다고 말해줄 테다. 네놈 마음에 오늘 불을 지피고 말겠다 이 말이야.     


이미지를 설명해 보란 말이야.


치킨 라자냐도 먹었다. 2,20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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