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26)
10월 21일
방학을 했다. 행복하다.
수업을 하지 않거나 학교에 가지 않아서가 아니다. 방학을 했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출근을 할 예정이다.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을 무사히 끝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껴서 행복한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 4과목은 초보 교원에게 쉽지 않았다.
2학년 수업에서는 단문만 썼다. 초급 어휘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의 표정을 집요하게 살피며 미간이 굳어지거나 입꼬리가 내려가는 학생이 보이면 한번 더 말하거나 더 쉬운 단어를 머릿속에서 찾아냈다.
스리랑카 켈라니야 한국어과 학생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한국어를 써 볼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내 수업시간에서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한국어로 말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말한 것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 말고, 한국말로 진짜 의사소통을 하는 경험을 쌓아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게임을 자주 했다. 빙고, 시장에 가면, 초성 게임 등을 했다. 어떻게 게임을 진해야 학생들이 단 한 마디씩이라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게임을 하면 확실히 학생들의 활력이 높아졌다. 그러나 매번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버거웠다. 아이들과 게임을 하려면 게임의 룰을 설명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아이들은 '빙고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어 초급 학생들에게 게임 룰을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큰 시련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수업 준비하는 시간 중 게임 연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4학년 수업 중 하나는 정해진 교재가 없었다. 과목명은 "Analysis and Interpretation of Korean folk literature'이다. 이전에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 혹은 분석을 해 본 적이 있는 학생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는지...
교재가 없으니 매주 수업 할 내용을 결정하고 자료를 찾아서 학습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내용과 수준이 적당한지, 스리랑카의 학생들에게 가르칠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4일을 이 수업을 위해 고민했다. 이 수업이 아니었다면 학교생활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한국어 교육 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에 와서 문학 관련 논문까지 뒤져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초급 학생들을 위한 게임 연구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었지만, 이 수업에서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학생들과 한국 전래동화를 비평하는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4과목의 수업은 사전 의견 교환 없이 툭 던져진 미션이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현장에 던져졌다. 죽이 됐는지 밥이 됐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서, 일단 만족하고 있다. 안도감 속에서 주말을 맞았다.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놓고 커피를 마셨다. 지극히 편안했다. 아무라도 붙잡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스리랑카에 와서 가끔 이렇게 또렷한 행복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줄기차게 불행하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하며 행복한 오후를 보냈다. 잠자리에 들면서 잠정적인 답을 얻었다. 아마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상태라니, 유아기 이후로 처음이다. 이런 마음이 떠나는 날까지 계속된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