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1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서울에 명문대를 나왔고 지금은 대기업에 입사하여 다니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애인을 사귀고 연애를 했었다. 연애 횟수는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까지 합해 총 다섯 번이다. 애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첫 애인은 간호사였고 두 번째 애인은 펀드매니저였다. 세 번째 애인은 IT기업 직원이었고 네 번째 애인은 모델, 현재 애인은 스튜어디스다. 연애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최장 2년이었다. 지금 애인과 사이가 딱히 나쁘진 않다. 내 외모는 우리나라 남성 평균 키를 웃돌았고 몸무게는 80킬로그램 정도 되었다. 애인들은 내 얼굴에 대해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라고 평했다. 머리칼은 탈모가 없고 새치도 잘 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적금은 150만 원 정도를 매달 넣고 있다. 차는 부모님 차를 몰다가 얼마 전에 외제차를 사서 타고 다닌다. 월급은 500만 원 정도 되는데 내 기준에서 많아 보이진 않는다. 퇴근은 6시에 해서 7시 쯤 집에 도착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내가 하는 여가는 웹서핑이다. 인터넷 기사들도 보고 O튜브에서 영상도 찾아본다. 커뮤니티도 하는데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지잡대 다니는 애들은 솔직히 노력 안한 거임. 편입이나 재수해서 인서울은 가야되지 않음? 지잡대에다 문과이기까지 하면 그냥 미래가 없다고 보면 됨."
댓글란에 단어들을 하나 씩 적어내려간다. 문장을 확인해보니 오타는 없는 것 같다. 마우스를 눌러 댓글을 등록한다. 내가 쓴 댓글이 그대로 댓글창에 옮겨져 붙어 있다. 원래 게시글은 지방에 사립대를 나오면 취업이 어렵냐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은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대게 나오는 대답은 게시글 글쓴이가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본질은 놓쳐버린 대답이다. 노력을 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고민을 글쓴이가 적지도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노력했다면 이미 글쓴이는 명문대에 진학했을 것이 아닌가. 대답들은 하나 같이 근본적인 문제를 짚지 않고 기회가 남아 있다고 열어두기만 하고 있다. 근본적인 글쓴이의 잘못은 질책하지 않는다.
"이런 애들 특, 지잡대 문과 나옴."
나의 댓글에 누군가가 답글로 도전을 걸어 온다. 세상엔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에게 도전을 건 상대에게 다시 반박글을 써본다. '서울에 S대학을 졸업했고 S기업에서 사원으로 일하고 있음. 너 같이 흥분해서 글 쓰는 애들은 고졸 이하고.' 마우스 커서가 등록 버튼으로 향한다. 등록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다시 도착한다. 보나마나 상대는 방구석에서 하는 일은 없이 뒹구는 백수일 것이 분명하다. '나도 서울에 L대학 졸업함. S기업 다니면 지금 사원증 까보셈.' 내 사원증을 굳이 꺼내 보여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너야말로 L대학 학생증이나 까봐라. 남 신분 깔거면 네 신분 먼저 까야지?' 답장을 보내니 상대는 침묵해버린다. 자판 영어 Z키를 여러 번 난타하며 비웃어줄까 했다가 지운다. 상대와의 다툼 이후 댓글창을 보니 다른 댓글들끼리 물고 물려 난장판이 되어 있다. 날이 서려 있는 댓글들은 하나 씩 읽어내려가는 맛이 있다.
"난 지금 사귀는 사람 있고 지금 애인까지 포함해 5명 만나봤다. 근데 키 빼고는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임. 결국 자기가 솔로라고 징징대는 애들은 노력은 1도 안하는 거 아님?"
자신은 모태솔로라서 외롭다고 했던 게시글에 댓글을 등록한다. 방금처럼 도전을 걸어오는 상대에게는 맞받아쳐 응수하며 침묵하게 만들 생각이다. 상대가 내 이야기를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 없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면 내게 손해가 날 일은 하나도 없다.
"야, 너 이름 '정'으로 시작하지? 사는 곳은 경기도 T시라고 뜨네?"
"뭔 소리임? 서울 사는데."
답장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재답장을 날리고 난 뒤에 발신자를 확인한다. 발신자는 방금 내 사원증을 까보라던 녀석이다. 채팅창 속 화면에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이야, 바로 답장 오는 거 보니까 맞는가보네.' 키보드에서 손을 땐다. 더 대화를 한다면 녀석의 페이스에 말릴 것이고 온몸이 벗겨질 것이다.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로그 아웃 버튼을 클릭한다. 컴퓨터 화면 속 모든 창을 가위표로 닫아버리고 시스템을 종료시킨다. 전원이 꺼진 화면 속에 새치와 여드름이 듬성듬성 난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며칠 동안 깎지 않은 수염을 메만지며 방문을 연다. 짧은 다리로 부엌에 가니 엄마가 해놓은 찌개가 식탁에 놓여 있다. '찌개 했으니까 먹어.' 식탁 구석에 놓인 포스트잇을 보고 밥그릇에 가득 밥을 퍼담는다. 휴대전화엔 지인이나 애인의 문자나 부재중 전화 알림은 없다. 식은 찌개를 가스레인지에 놓고 뎁힌다. 한숨을 내쉬어본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