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이 너무 작아서 숙소를 옮기려고 했던 일 때문에 좀 더 큰 방을 보여 준다고 관리인이 어제 말했다.
벼리와 같이 베란다가 있고 주방이 큰방을 보러 갔다.
모든 것이 넓고 좋으나 베란다가 지금 방과 달리 사방으로 뚫려 온화한 맛이 없고 휑하니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같은 가격으로 베란다가 없는 큰 방으로 내일 옮기기로 했다.
요리 개시는 내일부터다.
오늘은 차이나타운과 한국식당, 한인마트, 한국교회가 있는 방향으로 가 보기로 했다.
차이나타운을 빼면 말 그대로 한국판의 하루인 셈이다.
걸어서 가다 보니 차들이 길 옆에 전시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렌터카입니까?"
"네"
렌트 가격을 물어보니 이런저런 말로 횡설수설 하더니 별도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렌터카를 물어보다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로 이야기가 발전했다.
결론은 한화 90만 원 정도면 두 사람 마사이마라 1박 2일 여행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카드가 없어서 생각해 보고 연락한다며 사무실을 나왔다.
차이나타운에 도착하니 20여 개의 중국 음식점과 마트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두 바퀴를 돌아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몰 정도인데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별 먹고 싶은 것이 안 보여 예정대로 한인식당을 가기로 했다.
가는 중에 몇몇 마트와 쇼핑몰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가게 앞에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귀여운 간이 의자가 보여 잠시 앉으니 보기보다 편했다.
사냥감을 본 듯 잽싸게 가게 주인이 나오더니 마주 보고 앉았다.
"차이나?"
"노우, 사우스코리아"
"오우, 코리아. 굿"
반응이 아주 좋다.
가격을 물었더니 터무니없이 비쌌다.
"너무 비싸요. 땡큐, 바이"
얼마에 해줄까 라며 마트 입구까지 주인이 따라와서 반값 이하를 불렀더니 가 버렸다.
마트를 둘러보고 한인식당 쪽으로 가니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정보로 30여 분을 더 걸어갔다.
도로 옆에는 난전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길 따라 쭉 앉아 있고 허름한 가게들이 있었는데 메뉴가 궁금하다며 벼리가 가 보자고 했다.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우갈리와 닭고기를 곁들인 접시를 앞에 두고 손으로 먹고 있는 분이 있었다.
우갈리가 번쩍 띄어 벼리의 눈이 반짝거렸다.
"한 접시 시켜 먹지요?"
"아니오. 닭고기는 빼고요.."
"우갈리만 주세요."
"오케이"
따뜻하고 큼직한 우갈리 한 덩이를 투박한 밀가루 봉지에 턱 담더니 건네준다.
50실링이니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이다.
의과대학 학식에는 20실링인데 양과 질은 모르겠다.
어쨌든 걸으면서 야금야금 떼어먹는 벼리는 맛있게 케냐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교회 정문에 다다랐다.
쇠창살로 된 철대문 안의 경비에게 물으니 한인 교회가 맞다고 했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니 일요일 예배가 있으니 그때 오라고 하면서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다며 손으로 흉내까지 내며 말했다.
문을 굳게 지키는 경비는 약간 무덤덤하나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몇 걸음 걸어가니 교회 바로 옆에 한인식당 간판이 길가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나무가 우거졌는데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고 화분과 꽃이 많았다.
식당 내부는 아주 넓었다.
지배인과 종업원은 모두 흑인으로 한인은 코 끝에도 안 보였다.
종업원들은 온순한 인상에 친절했고 부드러웠으며 예의를 갖추어 서비스를 했다.
메뉴판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먹던 음식이 수두룩 튀어나와 각종 요리가 눈앞에 아롱거렸다.
선택에 약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한국인의 입맛에 김치는 빠질 수 없나 보다.
김치찌개를 주문하니 밑반찬으로 나물 등 세 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하나씩 맛보다가 밥 나오기도 전에 반찬 그릇이 뚝딱 비워졌다.
드디어 김치찌개가 등장했다.
밑반찬과 밥 한 공기를 더 주문하여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쓱싹 비우니 내 배는 남산만 해졌고 세상 더 부러울 게 없다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니 맛이 좋고 든든했다.
서양식 위주로 속이 니글니글거렸는데 김치찌개를 먹으니 확 달아나는 것이 한국인은 역시 김치가 있어야 제 맛이다.
늦은 점심을 먹은 시간이 오후 4시가 조금 지났다.
멀리 다른 곳의 한인마트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바로 옆에 있으니 너무 반가웠다.
내일부터 거의 2주간 한식 메뉴에 돌입하기 위한 준비로 장을 봐 두었기에 몇 가지만 보충하면 된다.
된장, 고추장, 라면, 짜장 등을 들고 나오니 벌써 우리나라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봉지 싸 들고 바로 옆에 있는 한인 교회에 가 보았다.
예배날이나 차가 드나들 때 경비가 있는 길 쪽으로 정문이 있는 반면, 식당과 마트 쪽에서 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쪽문이 있었다.
작은 문을 살짝 열고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경비가 온 데 간데없다.
교회 내부는 어두컴컴했지만 자연광이 살짝 비춰 어렴풋이 보였는데 강당 같은 느낌으로 오밀조밀 아담했다.
맨 뒤 푹신한 의자에 잠시 앉아 쉬다가 입구 게시판을 보니 수, 토, 일요일에 예배가 있었다.
"어, 오늘 수요일이네요."
"오는 날이 장날이군."
경비가 일요일에 오라고 해서 주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벼리는 예배 있는 수요일과 딱 맞기가 쉽지 않은데 기다렸다가 참석하자고 했다.
나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밤까지 있으려면 힘들 것 같아 오늘은 가고 일요일에 오는 게 좋지 않겠냐며 둘의 의견이 약간 달랐다.
마당에 나와 교회 주변을 둘러보려고 살금살금 두리번거리며 어떤 건물 앞에서 기웃거렸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일까?"
조그맣게 속삭였는데 누군가가 불쑥 나와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일에 깜짝 놀랐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요?"
"옆의 식당에 왔다가 한인교회가 있어 궁금해서 둘러보고 있어요."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분이 목사님이시라고 했다.
가까이서 목사님을 뵈니 어리둥절했다.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예배가 있고 6시 30분에 지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니 같이 하자고 하셨다.
목사님의 온화함과 따뜻함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벼리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건 신의 뜻일까?
저 쪽문 고리를 열고 들어왔다고 하니 목사님이 설명하셨다.
예배가 있는 날 교회 앞 인도를 지나서 한인마트에 들랑날랑거리며 간식을 사 먹는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었단다.
이 쪽문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식당주인이 집사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사랑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문이라는 걸 알고 나니 조심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식당 및 교회 주변은 위험한 동네라고 해서 멀리 갈 수 없었다.
길 건너 바로 앞의 아파트 건물이 근사하게 보여 들어가려고 입구에 섰다.
주민이 들어가는 틈에 뒤따라 들어갔는데 경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겁도 없이 성큼성큼 마당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가니 여자 경비가 신원확인을 했다.
미소 띤 얼굴이 선 해 보였다.
아파트가 멋져서 내부를 보고 싶다고 하니 순순히 올라갔다 오라면서 눌러줬다.
집집마다 문이 굳게 닫혀 볼 것도, 별 것도 없는 사람 사는 아파트일 뿐이다.
가까이서 보니 벽에 금이 가고 마무리가 허술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케냐 건물의 부실한 면을 볼 수 있었다.
나이로비는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고 다들 말하였다.
불법 무기 거래가 많아서 강도들이 총을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교회 앞 도로에서도 총기 사고가 있었다고 모두 자가용이나 우버택시로 조심조심 다닌다고 했다.
시간이 되어 교회 지하로 내려가니 주방에서 바삐 준비를 하시는 여자 몇 분과 식사를 하려는 남자분이 계셔서 간단히 인사를 했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맛있게 또 식사를 했으니 오늘은 한식 데이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정서가 비슷한 한인교포를 만나 한국말로 주고받으며 정이 오고 가니 마음이 활짝 열렸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우리들이 나이로비에 오게 된 사연, 케냐에 머무는 기간, 세계일주, 여행한 곳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많이들 물으셨다.
그러면서 아프리카에 왔으니 사파리투어는 꼭 하라고 하셨고 인도양 쪽의 디아니를 한번 가보라고 추천을 해 주셨다.
사파리투어도 불분명한 상태에 디아니는 차선이다.
강아지 외에 동물에 관심이 없고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도 싫어하는 벼리는 사파리 투어를 안 가겠다고 말해왔다.
식사자리 벼리 맞은편에 앉은 목사 사모님이 사파리 투어의 소감을 눈앞에서 보듯이 설명하는 생생한 장면 묘사를 듣고 벼리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모님 조금만 더, 좀 더 더 더...'
속으로 사모님을 지지했고 리얼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어찌 말씀을 잘하시는지 들으면 가고 싶은 마음이 쏙 들 정도의 이야기꾼이다.
오늘의 이 자리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시간인지 어안이 벙벙하고 감사했다.
목사님의 설교와 찬양은 1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이어졌으며 감동적이었다.
이 귀한 시간이 있기까지 교인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준비를 해야 할까?
누구나 들으면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이었다.
우리는 종교에 편견이 없는 편이다.
유럽을 여행하면 관광지의 대부분이 교회와 성당으로 그 멋진 건축물을 빼놓을 수 없다.
동남아를 가면 절을 가듯이...
믿건 안 믿건 다른 종교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자기 믿음에 갇혀 타 종교를 비판하고 터부시 하는 건 올바른 신앙인이 아니지 않을까?
예배를 마치고 우리 숙소 위치와 어떻게 갈 건지 물으시며 걱정을 내비쳤다.
우버로 간다니 제일 안전한 방법이라고 했다.
교회 앞 길은 교통 체증으로 차량이 움직이지 않은 반면 건너편 차도는 술술 빠져나갔다.
매월 첫째 수요일은 월급날이라 있는 차들이 모두 거리로 출동하여 마트나 쇼핑몰로 향한단다.
우버를 불러도 체증을 뚫고 교회 앞까지 들어오지 못하니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이번에 부른 우버는 길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걸 발견했다.
교인 한분이 택시가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주시면서 조심히 들어가라고 배웅까지 해 주셨다.
교민들의 따뜻함이 마음으로 밀려들어왔고 함께한 시간이 고마웠다
타국에서 교민을 만나니 반갑고 그지없이 좋았다.
택시는 캄캄한 나이로비의 밤공기를 뚫고 쌩쌩 달려 아파트로 들어갔다.
방에 와서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그 교민에게 보냈다.
동시에 "카톡..."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다음 일요일에 교회에서 봬요...'오늘의 시간을 회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나이로비 길에서 행위예술을 하는 구걸팀
렌터카 사무실 건물
차이나타운
나이로비 시내버스(KBS)
현지식(우갈리)을 사는 벼리
나이로비 학교건물
한인교회 경비와 대화 중
한인교회 모습
한국식당 간판
배가 고파서 먹다가 찍은 한식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