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 시내와 우후루 공원에 가려고 오후 1시쯤에 숙소를 나서 약 40분의 거리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며칠 전에 방문한 나이로비 의과대학이 가는 길에 있어 한번 더 갔다.
입구에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노점들이 양 옆으로 늘어섰는데 우리가 지나가면 열광을 한다.
"하이, 헬로, 하와유? 캄 히어...."
고함을 치듯이 큰 소리로 계속해서 말하며 오라고 했다.
"하이, 아엠 파인 땡큐 앤유?"
아프리카인들은 이국적인 우리의 모습이 신기한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었다.
마치 연예인이 된 느낌이 들 정도로 다가선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한국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중국인은 간혹 보였다.
손을 흔들면서 웃음으로 화답하며 교문을 들어서니 학생들 틈에 일반인도 많이 지나가니 번화가 같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말은 중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차이나, 니하오"
"노우 사우스 코리아."
"오우 사우스 코리아 굿."
코리아 말만 나오면 아주 좋아하고 얼굴이 환해지며 들뜬 반응이다.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져서 별로 설명을 안 해도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위상의 대단함에 어깨가 우쭐하며 자부심도 많이 느꼈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으니...
오늘은 의과대학교의 식당 문이 활짝 열렸는데 몇 사람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충전을 하려고 식탁에 앉으니 조리실 안 두 여인이 못 보던 사람이 왔다고 신기한지 빼꼼 빼꼼거리며 자꾸 웃는다.
'우린 개그맨이 아닌데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는 거야...'
우리도 같이 웃으니 그녀들은 개그우먼이네.
이 대학식당에 한국인이 왔을 리도 없고 아마 우리가 처음일 것 같다.
메뉴판을 본 벼리는 조리된 음식이 어떤지 궁금하다며 조리실 안에 보러 들어갔다.
"오늘의 요리를 볼 수 있어요?"
"네"
종류별로 설명을 듣고 나와서는 내게 되풀이했다.
점심메뉴가 닭고기 1100원, 소고기 850원, 생선 600원, 밥과 우갈리와 콩과 차는 각각 200원이었다.
"싸다 싸다 너무 싸다."
벼리 입맛에 딱 맞다는 우갈리와 좋아하는 콩을 먹으라고 하니 점심을 먹어서 오늘은 사양한다고 했다.
교정을 카메라에 담은 후 운동장 코너에 마련된 행사장에 갔다.
여러 개의 부스에 각종 의료기기들을 전시해 놓고 판매하거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라 낯설지 않았다.
어딜 가도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고 방식도 닮았다.
의과대학답게 흰 가운을 입은 판매자에 구매자는 대학생이거나 젊은 사람들이 많아 푸릇푸릇한 향이 가득했다.
젊음이 좋다.
꿈 많은 대학시절의 생활 장면들이 눈앞으로 밀려들어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시나마 젊음을 같이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갔구나.'
학교를 지나 골목 사이를 꼬불꼬불 내려가니 보자기 위에 물건을 펴 놓고 장사를 했다.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가게가 된다.
양말 만, 티 여러 장, 머리핀, 인형 몇 개, 땅콩 등을 조금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이가 넉넉하지 않을 것 같은데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되는지...
도심 가운데에 있는 우후루 공원으로 가니 공사 중인 관계로 입장은 불가했다.
공원 앞에 나무와 꽃으로 조경이 잘 되어 있었고 유원지 앞의 모습과 비슷했다.
계속해서 시내 방향으로 쭉쭉.
걷는 걸 좋아하는 벼리 덕분에 하루의 운동량이 차고 넘친다.
케냐의 관공서 같은 건물에 들어가니 우리나라의 종합정부민원센터 같은 곳이었다.
민원센터에 볼 일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앉아서 옆 좌석으로 한 칸씩 옮겨가며 차례를 기다렸다.
서서 기다리거나 번호표를 뽑지 않고 앉아서 순서대로 이동하는 점이 특이했다.
휴식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상한 조형물이 있었다.
'시내 한가운데에 조형물이 뭘까?'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한 발 한 발 내 디디며 케냐 시내를 빠짐없이 눈에 다 넣을 듯이 작정하고 나섰던 오늘은 우리에게 뭘 안겨줄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케냐 시내에 있는 어느 성당 앞 정원에서 행사 준비를 하느라 나르고 옮기며 정리하느라 바빴다.
나름 의미 있는 축제인 듯하나 우리는 알 수 없어 우두커니 서서 밖에서 지켜봤다.
흰 옷을 입은 단체객과 여러 신부님들이 분주하니 큰 행사인 것 같았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컨벤션센터를 찾아갔다. 행사 첫날은 사업자만 출입이 가능하고 일반인은 내일 오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행사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앞 길은 번화가이며 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며 아주 복잡했다.
길 건너편에 특이한 건물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군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에게로 와서 휴대폰을 내놓으라며 방금 찍은 사진을 보자고 했다.
보는 앞에서 삭제를 했으니 일이 끝난 줄 알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예쁘게 생긴 건물이라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고 하니 군용차에 가더니 종이에 뭔가를 적으려고 하다가 내려놓기를 여러 번 했다.
옆 좌석에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방관만 하고 실실 웃으며 차 옆을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너희들끼리 잘해 봐라는 식이다.
같은 군인을 지지하는지 우리를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저 군인이라면 우리의 사정을 봐줄 것만 같은데 이 지독한 군인은 인정사정도 없었다.
비스듬히 서서 거드름을 피우고 앉아서 협박하고...
저 건물은 국회인데 사진을 찍었으니 감옥에 들어가 있다가 재판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설마 사진 한 장으로 감옥과 재판까지...'
오기도 나고 이판사판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감옥에 가자."
진짜 차를 태워 갈 것 같은 낌새에 벼리가 말렸다.
"지금 뭐 하냐고요. 저 사람들 보니 데리고 갈 것 같은데..."
모르고 했으니 봐 달라고 벼리가 사정을 했다.
휴대폰을 빼앗긴 상태에서 달라고 하니 주지도 않고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휴대폰 달라."
"못 준다."
이 나라의 법규를 알 수 없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감옥과 재판이란 말에도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휴대폰 마저 빼앗겼으니...
이런 상황이 살면서 처음이라 마음에 안정이 되지 않은 벼리는 인상이 구겨졌다.
사진 한 장 찍음으로 당하는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살벌함과 두려움 등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 국 만 리에서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모르고 한 것이니 봐달라고 벼리가 또 사정을 해도 선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대사관에 연락을 해 달라고 했다.
그건 나중에 연락을 할 일이며 내일과 모레는 토요일, 일요일이니 월요일까지 감옥에 있다가 판사의 판결을 받으라고 하는 등 계속해서 협박과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되바라진 모습으로 능글거리는 모습이 아니꼬워 볼 수가 없었다.
벼리는 자존심도 상하고 모멸감에 견딜 수가 없단다.
"이 나쁜 놈들 두고 봐라. 가만히 안 있는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여행 중인데 몰랐다."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지만 30여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더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그럼 너희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냐?"
군인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나?"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10만 원을 주면 해결이 된다고 했다.
결국은 돈이다.
이런 일로 감옥과 재판을 받지 않으려면 돈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았고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여행자라 가진 돈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충혈되고 흰자위가 누르스름한 눈이 깜빡이지도 않고 자꾸 돈을 요구하는 태도가 역겨웠다.
협상 끝에 우리나라 돈 3만 원을 케냐 돈으로 주고 풀려났다.
그런데 이 군인의 행동이 가관이다.
동료군인이 저만치 있을 때 돈을 달라고 했다.
차에 앉은 상태에서 돈을 재빨리 받더니 허벅지 밑에 감췄다.
'그래, 그럼 그렇지. 말과 행동을 보니 수준을 알겠다.'
'정당하지 않은 행동을 한 널 그냥 둘 수 없다.'
흑인들에게 당한 것이 기가 차고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문화차이로 겪는 우리의 마음이 산만스럽고 얼떨떨했다.
그야말로 문화충격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로 걸으면서 차분히 생각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건너편에 경찰서가 보여서 이 사실을 낱낱이 말하려고 들어갔다.
"헬로, 헬프 미"
우리의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고 국회 경찰서로 가라고 친절히 안내했다.
가는 도중에 순찰 트럭에 총을 든 여러 명의 경찰들이 앉아 있어 사정 이야기를 했다.
'가재는 게 편' 이라더니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벼리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주의 깊게 들으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 말을 주고받았다.
다른 경찰과 다르게 국회경찰서에 가서 도움을 받으라며 그쪽을 가리켰다.
국회경찰서는 조그맣고 환경이 열악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팔꿈치를 난간에 대고 비스듬히 서 있는 경찰이 있었다.
이야기해봐야 도움이 안 될 것이 뻔한 인상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벼리.
사정 이야기를 하니 돈을 받은 그 군인 말과 같이 감옥에 가야 하고 재판을 받는다고 하는 표정이 비슷했다.
그러니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 가라는 식의 눈치라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더니 동족이 맞네.
벼리가 안에 앉은 여경에게 얘기하니 도움이 될 듯한 약간의 반응을 보여 조금 전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남자 경찰이 들어오더니 우리들을 쳐다보며 멈칫했다.
여경과 동양인이 무슨 일로 그러는지 고개를 내밀며 세심하게 들었다.
관심을 가져주는 제대로 된 경찰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더니 자세하게 자초지종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일이 있었냐?"
"장소를 찾을 수 있냐?"
"그 군인을 알아볼 수 있느냐?"
"네. 장소와 얼굴을 똑똑히 알고 있다."
30분 가까이 그 군인을 뚫어져라 보면서 말했는데 얼굴을 모를 리가 있으리오.
얼굴을 그리라면 표정까지 자세하게 그릴 수가 있을 만큼 실랑이를 벌였는데...
그러더니 벼리는 경찰서에 앉아서 기다리고 나만 가자고 했다.
나의 양 옆으로 나란히 선 경찰과 함께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힘차게 걸었다.
"어, 여긴데."
도착한 장소에 벌써 차는 떠나고 없었다.
관심을 기울였던 경찰이 여기에 기다리라고 하더니 길을 건너 안쪽의 어떤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머지 한 명 경찰과 길에서 20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군인 책임자와 함께 나왔다.
군인 책임자가 정중히 인사를 하며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갈 테니 경찰서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경찰서로 다시 돌아오니 거의 40분가량의 시간이 흘러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경찰 두 명과 갔다 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벼리가 초조하게 기다리다 경찰서 밖을 나가면 들어가서 앉아 있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다리니 경찰이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군인 책임자가 돈을 가져와서 말했다.
"돈 만 받을 거냐 아니면 다른 요구 사항과 조치를 취하고 싶냐?"
"돈 만 받고 가겠다."
굳이 어떻게 하고 싶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은 군인은 자체 내에서 문책이 있을 것 같아 넘어가기로 했다.
군인에게 시달리고 국회경찰서에서 하소연하면서 약간 지친 상태이기도 했다.
경찰은 군인 책임자에게 돈을 받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의 불찰입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케냐 경찰로써 이 나라를 대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하고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경찰의 눈빛은 살아있고 멋있었다.
정의로운 경찰이다.
"당신을 만나 기쁘다. 케냐 경찰을 믿는다."
"케냐를 다시 보겠다."
서로 따뜻한 미소가 얼굴에 번지면서 포옹하며 헤어졌다.
두 나라 간의 작은 외교를 한 듯한 푸근한 마음을 안고 경찰서를 나섰다.
국회 사진 한 장으로 문제가 생겨 계획된 일정대로의 움직임이 어려워 시내 거리를 보면서 숙소로 향했다.
케냐의 중심가는 차와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온 듯이 매우 혼잡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최근에 시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는 길에 오늘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화제였고 쉬엄쉬엄 걸으니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벼리는 아직도 씩씩거리는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자고 다독였다.
외출 전에 샤워실 물이 잘 안 내려간다고 고쳐달라는 부탁을 하고 갔다 오니 그대로다.
벼리는 샤워실에 문제가 있으면 많이 불편해하는데 안 고쳐났으니 엎친데 덮친 격이 되어버렸다.
낮의 일로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마음이 축 처져버렸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고 만났던 한인들 대부분이 말들 했다.
우리도 몇 번 겪으니 알 것 같았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거짓말을 일삼는 케냐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 벼리는 소리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부대니도 안 하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다.
이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우리나라에 가자고 하며 울적해한다.
향수병을 더 깊게 만드는 원인이다.
우째야 좋을지?
나이로비 의대 식당
케냐 시내 전경
케냐 시내버스 탑승 상담
군 옥수수 사 먹기
정부 만원 센터
밀레니엄 기념 조형물
구두 닦는 장소
공원에서 전통악기 공연
인파로 붐비는 나이로비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