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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수 Sep 21. 2024

그리스의 로데스 /23년6월18일(일)

장미꽃이 피는 섬, 그리스의 로데스에서

일어나서 배의 운항 상태를 보니 아직 바다 한가운데를 순항 중이다. 

매일 나오는 일정표에 10시 30분부터 하선이라고 하니 아마도 9시 정도 되어야 섬이 보일 것 같았다. 

선상 위를 산책하며 하루를 맞이하였다. 

크루즈의 하루 일정은 시간대 별로 짜여 있어 그에 맞추어 따라 하려면 바쁘다.

예전에는 계획대로 따른다고 분주히 다니며 참여했는데 지금은 구애받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한다.

크루즈 경력이 쌓여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알 수 없다.

좋은 프로그램을 놓쳐 아쉬운 건 있지만 다른 활동을 했다면 그 또한 좋은 시간이라고 본다.

좀 더 여유로워지는 듯하다. 

배는 항구에 정박되었고 벼리는 9층 풀장 옆 데크로 가서 아침 운동을 즐거운 음악과 함께 댄스를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가만있지 않는 벼리는 못 말리는 막춤의 대가라고 해야 하나?

"벼리씨, 이제 그리스 로데스로 가 볼까요?"

세상에서 제일 크고 과즙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감돌아 정말 맛있었던 그리스의 복숭아를 잊을 수 없다.

옛날에 와서 먹었던 생각에 침이 꼴깍꼴깍..

지중해 크루즈에서는 그리스를 제일 많이 방문한다.

'행여나 맛볼 수 있을까?'

그 복숭아는 그때의 맛으로만 자리 잡을 뿐 이제 없겠지? 꿈깨...

배에 내려 땅을 밟는 순간 눈에 익은 그리스의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 맑고 깨끗한 물을 보며 바닷가를 조금 걸으니 항구 바로 앞에 올드타운의 시작점이 나왔다.

시티투어버스, 택시기사 등이 호객행위를 열심히 하지만 걷기로 작정하고 나온 터라 그 사람들을 뒤로하며 도로를 건넜다.

장미꽃이 피는 섬이란 어원을 가진 중세도시 로데스 또는 로도스.

터키 연안에서 불과 7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그리스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로서 고대에 번성한 항구다.

그리스 세계문화유산 17선 중 하나라니 벼리는 끔뻑 넘어간다.

올드타운의 성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관광객들의 오고 감이 복잡하다. 

어딜 가더라도 올드타운에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주변 건물들을 보며 걷고 있는데 저 앞 조그마한 분수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보란 듯이 졸졸 마신다. 

처음 보는 장면이라 신통방통.

근처만 가도 도망가기에 바쁜 우리나라 고양이와 달리 관광 지라서인지 사람들 속에서 끄덕도 하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는 것이 신기했다. 

"넌 사람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아름드리 두 그루의 큰 나무가 만들어낸 짙은 그늘은 500명 이상 쉴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은 쉼터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 큰 앵무새 한 마리가 알록달록 현란한 색깔로 눈을 자극하며 떡 버티고 있는 것이 나무 그늘에서 텃새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벼리가 가까이 가도 “너 누구니, 어디서 왔냐?” 는 식으로 자기 자리를 잘도 지키고 있다. 

앉은 모습이 연예인 앵무새 같다면 우스운 걸까?

앵무새와 사진을 한 장 찍으며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 동네 고양이와 앵무새 녀석들 도도하군.'

폭신한 흙을 밟으며 조금 걸으니 한적한 길 옆 울창한 나무 아래 온통 흰색으로 장식한 여자가 우뚝 서 있었다.

진짜 사람인지 가까이 가니 얼굴에도 흰색 칠을 하고 눈을 깜빡인다.

짓궂은 남자 관광객이 손을 잡자는 요란스러운 말에 살포시 내민다. 

사진을 찍고 동전을 떨어뜨리니 무릎을 까딱거리는 인사를 한다.

돈을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성 안에 있는 마을 곳곳에는 그리스의 느낌을 담은 골목이 있고,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시절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 동화와 동요는 벼리 마음 깊은 곳에 쏙 들어와 자리 잡았다.

벼리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산토리니와 프로방스에 재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게 딱 내 스타일이야. “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꼭 소녀 같다.

골목골목 줄지어 늘어선 상가들이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프로방스와 비슷한 느낌인 가게들은 특색이 있으며 예쁜 장식으로 뽐내고 있다.

상가와 골목 안의 정겨운 주택들의 구경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눈길이 떨어지지 않고 자꾸 뒤돌아 보기를 여러 번.

이리저리 이어지는 여러 길에 들어서니 방향 감각이 흐려지며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다.

“입 뒀다가 뭐 하니 또 묻자. 먹는 입도 중요하지만 모를 때 묻는 입도 마찬가지다,“

"으쌰."

"이 길로 가면 바닷가가 나옵니까?"

우리가 가고 있는 골목이 해변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싸, 아직 감각 살아있네. “

저 멀리 우리 배가 보였다. 

그리스는 출입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다소 자유스럽게 보였다. 

배에서 내릴 때도 검문이 없고 다시 돌아올 때는 탑승카드만 보여 주면 끝이다. 

며칠 생활했다고 배에 들어서니 꼭 우리 집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 든다.

월풀에서 시내 구경으로 지친 몸을 풀고 사우나로 갔다. 

쇼는 밤 8시와 10시에 두 번 한다. 

10시에 하는 쇼를 봤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 8시로 옮겨 볼까 한다. 

쇼, 음악회, 뮤지컬, 연극을 즐기는 벼리는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

제일 앞쪽 중앙자리로 성큼성큼 들어서니 비워있다.

남성 인기 가수 1명에 백 댄스 겸 가수 3명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노래와 퍼포먼스가 변화무쌍하다.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벼리는 누구보다 열렬한 박수로 그들의 열정에 화답한다. 

오늘 쇼는 나 역시 손뼉이 절로 쳐지며 흥겨운 분위기에 몰입되었다.

노래가 열기를 띠는 쇼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그들 중 한 명이 백 댄스 가수 3명의 땀을 꾹꾹 누르며 잠깐 닦아주는 휴머니즘을 보였다. 

그 수건을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손뼉 치고 응원하는 벼리에게 던져 주었다. 

'땀 닦은 수건을 주다니? 고얀 녀석들. 그래도 팀원들의 정이 깃든 수건이니 봐주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벼리는 그들의 노래에 맞춰 수건을 위로 향해 들어서 돌리며 세차게 흔들어 보인다.

우리 모두의 일상은 쇼타임 아닌 것이 없다. 

쇼쇼쇼~다 같이 즐겨볼까요?

                로데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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