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은 도착으로 오늘은 푹 자야지 했는데 6시면 기상이다.
한국에서부터 훈련된 6시가 시차 문제도 없이 잘도 적용되고 있다.
라운지에 가보니 바로 앞에 스핑크스와 쿠퍼왕가의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 중에서는 쿠퍼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퍼왕과 아들, 손자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560년부터 4,580년 전에 만들어졌다니 현재의 내가 만나고 있는 이 현실이 어마무시하게 느껴진다.
이집트 카이로는 2번째 방문인데 처음에는 여행사를 통해 왔기 때문에 별 감흥을 느낄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고생해서 찾은 카이로의 피라미드는 역사 속의 나를 생각게 한다.
오늘은 옆에 있는 다른 호텔에서 묵기로 하여 짐을 옮기고 체크인을 한 다음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를 만나러 갔다.
벼리는 전생에 이집트 공주, 영국 왕실의 공주였다고 늘 말했었다.
그럼 나도 할 말 있지.
그리스의 왕자였다고...
닭살? 한국에서 하던 말을 옮겼을 뿐이니 이해해 주세요.
해리의 그리스와 벼리의 이집트는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니 우린 전생에 여기서 만났을까?
그때 살았던 이집트가 그리웠으리라.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렵니까?
몇 년 전에 왔을 때의 스핑크스의 모습 그대로다.
"넌 나이도 안 먹니? 동안 스핑크스야."
사진을 찍으려고 돌담에 앉으려는데 가게 주인이 날아오듯 잽싸게 나와서 포즈를 잡아주며 찰깍거린다.
이렇게 저렇게 손을 올렸다 꼬았다 꺾었다를 따라 하면서 킥킥 웃고 작품사진을 만드는 것은 좋았으나 가려니 돈을 요구한다.
"노마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와 버렸다.
이집트에 가면 달라붙는 장사꾼을 조심하라더니 바로 이런 거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넘어가지 말자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가운데 위치한 쿠퍼왕 아들 피라미드로 갔다.
아들 피라미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낮고 긴 좁은 통로를 포복 훈련하 듯 기어 들어갔다.
맨 안으로 가니 시체를 놓았을 듯한 돌 관이 보였고 나머지는 막아 두었다.
관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더니 어떤 외국인 사진을 찍어주고는 돈을 달라는 장면이 보인다.
우린 안 속지요~~
규모가 제일 큰 쿠퍼왕의 피라미드는 공개되지 않아서 주변을 한 바퀴 돌다 보니 일부는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벼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많이 보고 싶어 했고 피라미드에 꼭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올라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모습이다.
'만족스러운 저 모습!' 가슴이 훈훈해진다.
어제 몸부림치고 견뎌며 긴 시간을 이겨내고 여기에 온 보람이 있었다.
옆에는 큰 개 두 마리가 양쪽에 누워 잠을 자는데 왕의 무덤을 지키는 현대판 지킴이?
재밌는 상황이네.
땀을 닦으며 내려와 쿠퍼왕 손자 피라미드로 가는데 마차를 타라, 낙타를 타라며 끈질기게 따라왔다.
우리 앞의 어떤 이가 그 사람에게 여기까지 오면 안 된다고 가라고 하니 두말하지 않고 '후에' 하니 가 버린다.
두부 자르듯 경계가 확실하다.
영역 다툼일까?
자기들만의 법칙이겠지.
우리는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
'오! 우리 편? 제지하는 사람도 있구나'
착각은 자유. 호의에 덜렁 넘어가는 순간이다.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면 카메라를 안 줘야 한다는 걸 또 깜빡 잊었다.
요모저모,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주더니 조금 옆에 외진 곳으로 따라 오란다.
안 간다고 했어야 하는 걸...
찍고 또 찍더니
"마니"
"노 마니"
휴대폰을 달라고 하니 안 줄 것처럼 하더니 건네준다. 다행이다.
"마니 많이"
"아이 해브 노 마니"
으름장을 놓으며 우리 앞길을 막고 떡 버티고 섰다.
그 순간 어디선가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나서 같이 합세하며 못 가게 한다.
여긴 사람도 없는 단 네 사람.
2대 2의 싸움판이 벌어졌다.
두 명이 내 어깨를 밀치며 바짝 다가서길래 어깨를 뒤틀며 팔로 손을 쳤다.
몸싸움이 일어날 상황이다.
막무가내로 덤비려 한다.
"경찰 부른다."
옆에 있던 벼리도 팔을 휘두르며
"맛 좀 볼래, 경찰에게 가자. 경찰"이라 소리 지르며 나에게 힘을 보탠다.
엄마야 무서워라면서 도망갈 수도 있는데 대담하다.
물러서지 않고 그 사람 팔을 당기며 가자고 하니 조금 수그러들었다.
"빨리 탈출하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돈을 요구하는 행동은 거기서 빠져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실 벼리는 무서웠단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용감하게 큰 소리를 냈다고 했다.
끈질긴 이집트 장사꾼들.
이제 눈길도 안 줄 것이니 잘해보시지.
여기서는 현지인들이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직업(?)이 있는 모양이다.
공식적인 직업은 아니겠지만.
한바탕 하고 덥고 힘들어 숙소로 가고 싶은데 벼리는 사막에 걸어가 보자고 한다.
"어디까지 갈 거예요?"
"저기~..."
호기심이 많은 못 말리는 벼리다.
끝없이 펼쳐진 저 언덕까지 가는 건가?
죽기 아니면 살기구먼.
인생의 마지막 여행은 사막이라고 했던가?
벼리의 버킷리스트엔 사막 걷기가 있다며 가야 한단다.
벼리가 하자는 것은 무리인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과는 다 괜찮은 것이 대부분이다.
또 다른 뭔가를 경험하는 기회를 주니 따라가 보자.
낙타들을 타고 가는 사막을 우리는 인간 낙타가 되어 걸어갔다.
끄떡거리며 흔들어대는 낙타 위의 사람들은 "히죽히죽, 깔깔"거렸지만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리는 안 아프겠지만 온몸과 엉덩이가 자유롭지 못했다.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를 앞지를 때마다 거대한 낙타 무리가 역동적이니 무섭기까지 했다.
먼지바람은 거세고 오래 지나간다.
사막을 한참 걸어 모래 꼭대기에 있는 곳에 이색적인 건물이 있어 거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걷고 또 걸어 다가온 집들은 오르막이라 아껴 둔 마지막 힘을 쓰며 끙끙거리며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나의 기쁨 레스토랑.
고생 끝에 낙이라더니 오길 잘했다.
노후엔 마누라님 말을 잘 들어야 편하다고들 했다.
벼리는 거의 옳은 말만 한다.
어떨 땐 잔소리 같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 대부분이다.
벼리 말을 더 잘 듣자.
샐러드, 레몬주스, 빵을 주문했다.
중동에는 마켓에 맥주를 잘 안 판다.
이 식당도 그렇군.
술 판매 허가 내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란다.
술 판매전문점이 따로 있는데 내 눈에는 잘 띄지 않아서 맥주에 목말라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레몬주스가 아주 진하고 맛있는 게 마음에 든다.
화덕에서 바로 구운 따끈한 빵도 5개, 샐러드까지 9000원 정도다.
이 정도면 이집트 물가가 엄청 싸지 않나요?
우리나라의 반값 또는 1/3 정도 면서 푸짐하다.
날씨는 건조하고 여간 더운 게 아니다.
푹푹 찌며 화끈거리는 날씨에 발이 모래에 빠지면서 여기까지 왔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더니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만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앞에 뭐가 있든 두려워말고 도전해 보는 거다.
사막을 내려오려는데 화덕에서 빵을 굽고 있었다.
신기해서 쳐다보니 아주머니들이 정겹게 인사하며 금방 나온 뜨끈한 빵을 하나 건네주셨다.
"잘 먹겠습니다."
방금 먹고 나왔지만 사랑이 담긴 빵은 따끈한 게 한 맛 더 있다.
4시간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많이 걸었다.
"우리 왕자와 공주 맞나?"
"시종과 시녀 같은데... 하하 히히."
신분이 별 것인가?
왕자든 시종이든 무엇이든 좋다.
여기서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피라미드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내일부터 3박을 해야 하는 공항 부근의 시설이 좋고 깨끗한 호텔을 예악 했다.
마지막날 이른 시간의 모로코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밤 8시 야간 불빛쇼를 기다리며 라운지 카페에 올라갔는데 내일 한다고 했다.
진짜 아쉽다.
밤의 파라미드와 스핑크스는 흑백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흐릿하게 보이지만 또 다른 분위기가 좋다.
밤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빼곡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지자구역의 멋있는 밤의 우주쇼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뱅글뱅글 돌고 있다.
지구 여행에 빠졌던 그리스 왕자와 이집트 공주는 편안한 밤을 맞이한다.
호텔 식당 배경
피라미드 매표소
스핑크스 꼭짓점
피라미드 꼭짓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모습
쿠퍼왕 아들의 피라미드 속 관
사막을 건너서 점심식사
사막을 건너다 지나가는 낙타와 함께
해 가 진 뒤의 기자 피라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