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떠나 파티마로 가는 날 아침.
기차를 타기 전에 어제 가려고 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마지막 장면 촬영지인 역으로 갔다.
영화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의 역이다.
각자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돌아가려는데 벤치에 앉은 여인이 같이 찍어주겠다고 다가오는 것이다.
아마 영화를 본 것 같다.
열차 맞은편 시계가 있는 곳에서 영화를 생각하며 마주 섰다.
헤어지는 장면을 우리는 악수하면서 "찰칵"
영화 속 주인공인양 폼을 잡았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러간 줄 몰랐다.
여기까지는 서로 기분이 좋았다.
파티마 행 열차 출발이 1시간여 남아서 급히 그 장소를 떠났다.
기차 출발 10분 전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차를 기다렸다.
그 사이 유로화도 조금 찾았다..
기차가 도착하여 탑승을 하였는데 좌석번호가 없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예약 영수증을 보자고 한다.
'아참! 어젯밤에 짐 정리하면서 영수증이란 영수증은 다 버렸는데 이를 어쩌나!!!'
영수증이 없다고 하니 다시 예약비를 내라고 한다.
'이게 웬 말이야~~'
전산에 우리 자리가 있으니 찾아보라고 해도 자기 휴대폰 단말기로는 확인이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예약비를 다시 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산 연결이 되어 영수증이 없어도 확인될 것 같은데...
이 나라는 안된다고만 할 뿐 찾으려는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만난 외국인 중 가장 불친절하고 인상도 고약하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어쩔 수 없이 예약비 10유로를 다시 내고 좌석번호를 받아 자리에 앉았는데 벼리가 그냥 있을쏘냐!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따지는데 실실거리는 게 우릴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혼자서 내뱉기만 했다.
"어이가 없네."
식당칸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니 자기는 모른다는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
역시 모르쇠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수업료라 생각하기로 하자.
승무원과 입씨름하느라 기분이 상했다.
그러는 사이 파티마 역에 도착했다.
파티마는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데 천주교인도 아닌 우리가 여길 간다고 벼리가 별 신통찮게 생각한다.
며칠 전부터 가지 말자고 했다.
성인에 대하여 종교적 편견과 선입견이 없다고 했는데 여행이 힘이 드는 모양이다.
종교적 신념보다는 인류의 성인들을 고루 존경하고 있으니 발현 장소에 와 보고 싶었다.
창원파티마는 몇 번 가 보았다.
문상과 병문안으로...
나이 들어서 인지, 긴 여행이어서 인지, 짐이 무거워서 인지 자유여행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그것도 몇 달씩이나.....
과연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티마 역은 파티마에서 약 28킬로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
사전에 알았지만 유레일패스를 사용하겠다는 생각에만 앞섰다.
가는 길에 잠깐 보는 것도 아니고 이틀씩 머물며 역과 멀리 있는 촌구석에 왜 가냐고 할 때 마음을 접었어야 했는데...
역과 마을까지 대중교통이 잘 연계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것이 나의 실수였다.
파티마 역에 달랑 우리 두 사람만 내렸다.
직원이 아무도 없다.
역이 썰렁하다.
이거 유령역인가 싶을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아담한 역과 뜸적 뜸적한 마을은 우리나라 시골 같은 풍경이다.
역 앞 카페에 가서 대중교통을 물어보니 5시 40분에 한대가 있다고 했다.
아니면 택시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 하면 우리 벼리가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회피하는 교통수단이 아닌가!
벼리는 '한적하니 힐링하기 좋네.' 놀다가 버스 타고 가자고 한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차마다 세워 파티마 가면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야말로 영화에서만 보던 '히치하이킹'이다.
살다가 별 걸 다 해보네.
아무도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옮겨가야 할 것 같아 물어보니 저쪽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약 2시간의 시간이 흘러 다른 카페에 도착했다.
직원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오늘은 차가 없고 내일 있다고 한다!
'이건 또 뭔 소리~~'
벼리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택시를 타자고 했다.
짐은 벼리가 보고 혼자 걸어서 역 앞에 한 대 있던 택시기사에게 파티마를 가자고 하니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미터기로 25유로 정도 나오는 파티마 가는 거리를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파티마 시내에 도착하니 오후 4시.
호텔 체크인 시간은 5시.
1시간이 남아 그늘이 있는 벤치로 가는데 캐리어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살펴보니 바퀴 한쪽이 고장이 나고 있었다.
무거운 겨울 옷가방에 캐리어도 저항을 하는 모양이다.
양쪽에서 저항이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저항이지만 상대방을 생각하면 전혀 아닌 것을 잊어버린다.
벼리 말을 들을걸.
그랬으면 바퀴가 고장 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을.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겠다.
서로 의논하고 합의하여 한 곳을 향해 나아갈 때 마찰이 없고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
그래야 기분도 좋다.
여행뿐 아니라 일상의 삶도 같다고 본다.
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하자는 게 아니었는데..
나도 상대방을 생각해서 잘 맞추는 사람인데 이번에 내 위주로 했구나.
여행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드는 과정을 겪으며 성숙되는 것 같다.
이 여행을 슬기롭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에 휩싸였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여행은 렌터카로 움직였다.
그땐 정말 즣았었다.
"이번 유럽은 유레일파스로 하는 게 어때요? "
"좋아요. 기차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 재밌겠네요."
합의하에 진행되었다.
우리가 젊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레일 패스로 여행을 했다.
그때는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좋아했던 벼리다.
기간이 짧아서 그런 것 같다.
그에 비해 지금은 너무너무 길다.
전 기간 중 유레인패스로 이동하는 게 약 2개월이다.
자꾸 옮겨 다니니 힘들단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더라면 내가 오고 싶어 했던 파티마는 당연히 포기했다.
파티마 가기 싫다는 말하기 전까지 묵묵히 재미있게 잘 다녀서 예사로 생각하였더니 여기서 일이 벌어졌다.
곪은 건 터뜨려야 한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아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이제 벼리를 위한 여행이다.
힘듦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행계획에 돌입하려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었는데 벼리는 마음이 싱숭생숭.
밥도 먹기 싫단다.
혼자 갔다 오라고 해서 나섰는데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걷고 있는데 초밥뷔페가 보였다.
벼리와 같이 들어가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 통과다.
간단하게 혼자 먹으려면 버거킹이 좋을 것 같았다.
먹고 오니 벼리가 파티마 대성당에 갔다고 쪽지를 카운터에 맡겨 놓고 그쪽으로 오라고 했다.
해가 지고 있는 쌀쌀한 파티마의 저녁에 대성당으로 갔다.
웅장하고 거대한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성당의 저 위쪽에서 벼리가 손을 흔든다.
벼리와 재회하여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오른쪽에 성모가 발현한 장소가 있었다.
이곳을 보려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한편 성모의 마음이 내게 다가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으니 이런 것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신자들은 저 멀리서부터 무릎걸음으로 발현지까지 와서 기도를 했다.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삶의 반성에 대한 눈물인지 성모와의 만남에 대한 감동의 눈물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여기는 날이 저무니 춥다.
한국은 덥다는데 긴 옷에 패딩을 입어도 알맞은 날씨다.
잡은 두 손이 따뜻하다.
벼리씨!
내일의 계획과 다음 일정에 대하여 의논해요.
리스본 에어비앤비 숙소
지하철에서 춤추던 여인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티마행 주간열차
예약비 2번 받는 차장
역무원이 아무도 없는 파티마 역전
역앞 카페
역앞 택시 대기
버거킹 파티마
파티마 대성당
성당 내부
성모발현을 본 아이들 묘소
성모 발현 장소
기도하고 손수건도 적시고
파티마의 저녁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