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파티마 역에서 마을까지 온다고 고생한 벼리가 아직까지 기분이 다운된 상태다.
대중교통이 잘 없는 이런 시골 마을에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무척 못 마땅한 모양이다.
세계일주 준비 중에 짐을 옮겨 다니는 게 힘들겠다며 최소한의 물건들만 챙겨 왔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와보니 훨씬 힘들다고 했다.
'상상초월'
부딪혀 보지 않으면 그 상황과 심정은 모른다.
10년 전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1박 2일 서울로 올라가서 강원도 쪽으로 내려왔던 때가 있었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초보자가 겁도 없이 강행을 했다.
11월 말의 추위와 비바람에 맞서 집에 도착한 밤 벼리는 펑펑 울었다.
오토바이에 다리를 벌린 채 꼼짝을 못 해 안아서 내렸다.
몸이 얼고 다리는 굳고 내일이 올 것 같지 않은 불확실한 마음이었단다.
이틀을 꼬박 탔으니...
너무 무리를 했던 것이다.
벼리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며 오토바이 타기와 이별선언을 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비슷할까 생각해 본다.
문제는 짐이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배낭을 메야하면 절대 안 가는 벼리다.
가방 무게가 버거워서 들어 올리고 끌어주며 많이 도우는데도...
홀가분하게 다닐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란다.
이 여행이 끝나는 날 활짝 웃는 벼리의 얼굴을 보고 싶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 님의 은혜로 숙소에서 하루 종일 앞으로 남은 약 50일가량의 유럽 여행일정을 짰다.
예전의 모든 여행은 날짜별로 관광지, 거리, 소요시간, 출발지와 도착지
시간, 숙박까지 세세히 계획을 세워 엑셀표를 만들어 다녔다.
나의 원래 계획은 일주일 전 일정만으로 여행을 해 나갈 생각이었다.
더 있고 싶으면 있고 가고 싶으면 떠나는 여행.
그러나 실전에선 생각과 달랐다.
유럽 전 지역의 짜임새 있는 일정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지역적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벼리의 의견에 동의를 한 것이다.
유레일패스와 항공을 필요시마다 배치하고 한 도시에서의 체류는 기본적으로 2박 3일로 만들었다.
중동지역에서 거의 한 달 가까이를 보내고 여기에 왔는데 유럽의 전체일정을 파티마에서 짜고 있다니....
그것도 성모의 발현지에서.....
그동안 벼리는 동네를 구경하고 성당을 갔다 오고 가게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중간에 들어와서 다닌 곳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마트에 가니 과일도 빵도 매주도 저렴하고 삶은 새우가 있으니 사서 먹으면 되겠다.
내 캐리어 바퀴가 고장 났으니 가방을 하나 사야겠다.
가게의 옷을 몇 벌 봤는데 예쁘다.
선물가게에는 성당 관련 기념품이 대부분이다."
걷고 보고 다리가 아프도록 다녀도 구경하는 게 흥미롭단다.
어제와 달리 밝아졌다.
그러더니 또 갔다 온다고 했다.
늘 같이 다녔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저녁 무렵까지 가졌다.
호텔방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고시생처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다.
유럽일정을 어느 정도 짜놓고 저녁 식사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마트가 크고 넓었고 건강 호밀빵이 진짜 저렴해서 벼리는 한 개 찜뽕.
과일과 맥주, 짧은 새우, 빵, 주스, 샐러드, 요플레 등을 샀다.
먹을 때는 행복호르몬이 나온다.
특히 과일과 새우를 실컷 먹었다.
맛있는 식사 시간은 둘만의 오붓한 분위기였다.
밤에는 대성당에서 야외 미사를 진행한다.
무릎으로 걸어오는 사람, 무거운 고통을 짊어진 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입으로 계속 성경구절을 외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어디서 왔는지 많은 신도들로 꽉 메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심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에 저렇게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고 고백하고 힘을 얻나 보다.
밤 9시부터 11시까지의 촛불미사였다.
다른 곳의 미사와는 달리 아주 엄숙하고 장엄하게 그리고 위엄 있게 진행되었다.
날씨가 추워서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미사를 지켜보았다.
대성당의 광장은 본 것 중 제일 넓었다.
미사 마지막에는 큰 십자가를 따르는 신도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촛불을 손에 들고 광장 가장자리로 행진하는데 까만 밤을 동그랗게 만들어 간다.
'꽃 보다 아름다워'가 이런 걸까?
걸음걸음마다 성모님의 마음이 실려있는 듯 진지했다.
맨 뒤에서 한 바퀴를 따라 돌았다.
제각각의 신앙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