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산하게 파스타를 만들었다.
마늘과 양파,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볶고 거기에 소금과 후주로 간을 맞춰 마지막으로 파스타면으로 마무리를 했다.
요리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니 촌스럽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장 찍는다.
지난번 싸다고 산 포도주는 지금까지의 포도주 중 최고로 맛이 없었으나 파스타와 같이 먹으니 먹을 만했다.
'싼 게 비지떡' 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파스타를 잘 만든다고 벼리가 말했다.
순간 일류 요리사가 된 듯 으쓱하며 잠시 착각한다.
식사 후 아토차역에 가서 내일 바르셀로나 가는 표를 예매하려고 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번호표를 보니 약 3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국내선 기차표는 인터넷 예매가 안 되니 모두 매표소에 가서 표를 구해야 했다.
너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근처 레티로공원에 갔다 와도 될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중고 서점이 길게 널어 섰는데 몇 곳은 막 문을 열고 있었다.
낡은 헌 책을 넘기니 퀴퀴한 냄새가 풍겨왔다.
"킁킁.. 아, 이 냄새."
요즘 맡기 쉽지 않은 향이다.
헌 책과 함께 걷는 길이 정겹게 다가왔다.
공원으로 들어서서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나무가 푸르르게 우거져 공원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삼림욕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은 공원도 많이 보이고 녹지 조성이 잘 되어 있다.
가로수들의 키가 쭉쭉 뻗었고 그늘도 짙다.
다시 매표소로 돌아오니 순서가 조금 가까워고 지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표를 사고 나서 우리는 시내 관광지 몇 곳을 갔다.
먼저 티센보르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1700년대에 오픈한 초콜릿 가게가 너무 멋져서 들어갔다.
고디바와 버금가는 초콜릿인 것 같다.
유럽 어딜 가도 시식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으며 거의 없다.
근데 이 고급스러운 매장에서 예쁜 아가씨 두 명이 시식용 초콜릿을 들고 다니며 먹으라고 했다.
"아싸, 이게 웬 떡. 맛보자."
"시식용인데 크고 먹음직스럽게 잘랐네."
종류별로 맛보고 여러 가지 상품들을 구경했다.
선물용으로도 좋아 보였다.
정말 오래된 가게인데도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티센보르네 미술관에 도착하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거 횡재 아냐?~~"
초콜릿 시식에 무료입장까지...
오랜만에 미술품들을 만나 문화의 향기를 듬뿍 느낄 수가 있었다.
여행으로 몸은 피로하지만 마음만은 충만하게 다지고 싶었다.
시벨레스궁전과 개선문을 지나는 길이 걷기에는 너무 뜨겁다.
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하려고 탑승했다.
버스 안에서 한낮의 더위를 잊을 수 있는 달리는 또 다른 관광이다.
잠깐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다리도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마드리드의 햇빛도 중동 못지않게 강렬하다.
살인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쏠광장과 마요르광장을 찾아갔다.
마요르광장은 오래전에 우리 가족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했을 때 왔던 추억의 장소로 옛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아이들과 자유여행을 어떻게 했을까?
많이도 했고 젊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
10일 정도였으니 문제가 될 게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마요르광장 바로 옆에 산미겔 시장이 있어 한 바퀴를 둘러봤다.
과일 가게에는 주스와 빵 한 조각에 과일을 장식해서 간식 및 요기로 판다.
다른 가게도 빵 위에 연어와 채소, 고기와 채소 등을 올린 게 대부분이다.
이런 류의 식사를 많이 했으니 오늘은 다른 메뉴를 정했다.
스페인의 유명한 빠에야를 먹기로 했다.
잘한다고 이름난 식당은 골목골목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곳으로 계속 안내한다.
"여기다. 이런 데서 식당을 다하네.."
어렵게 찾은 식당 입구는 예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 손님이 가득 찼고 딱 한 자리 있었다.
이 분들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보다 활기 있고 멋진 분위기의 식당에서의 저녁이다.
시원한 맥주 한잔과 빠에야가 나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벼리는 입맛에 안 맞단다.
짜고 물기가 많다고...
'나는 맛있는데, 참 다르다.'
식사 후에 왕궁 갤러리, 소피아왕비예술센터를 방문했다.
특히, 소피아왕비 예술센터에는 스페인의 내전 때 화가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방을 찾아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대작이다.
이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우리도 그중 한 사람으로 제일 먼저 게르니카를 찾아갔으니까.
다른 작품들이 너무 많아 다 보지 못했다.
스페인어 어학시간에 게르니카와 파에야에 대한 설명을 했었다.
스페인에 가면 게르니카를 보고 파에야를 먹어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우리는 말 잘 듣는 모범학생인가 보다.
둘 다 실천했으니까..
두 마리 토끼를 마드리드에서 잡았어요.
선생님 칭찬해 주실 건가요?
밤 9시가 되었음에도 이곳은 날이 밝다.
시계를 보고 다니지 않으면 숙소에 가는 것도 늦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그림들이 인사한다.
'다음에 또 만나자. 안녕~~'"그래,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