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하여 마드리드 아토차역으로 갔다.
아토차역은 2004년 3월 11일 아침 출근 시간대를 목표로 테러범들이 고의로 폭발사고를 일으킨 곳이다.
사망자가 192명 부상자가 무려 1,800명이나 생겼으니 큰 사고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우리도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을 하고 국내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폭발사고여서 충격적이었다.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했을까?
사람들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너무 놀랐던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가 그 옆에 있었더라면 어떡할 뻔했을까?'
더욱더 아찔했다.
그 사고의 여파인지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생각 저편에서 고속열차가 유연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티켓 검사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손에 쥐고 있던 티켓이 열차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순간 당황하여 승무원에게 달려가서 도와 달라고 하니 자기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못할 줄 아냐? 대신 열차는 세워 둬라.'
짊어진 배낭을 내려놓고 몸의 반은 플랫폼에 걸치고 한 발은 열차 밑 땅을 딛고 티켓 쪽으로 손을 뻗으니 겨우 닿았다.
좁은 틈으로 바다에 휴대폰을 빠뜨린 할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또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 생각도 났다.
'하루가 그냥 지나가질 않는구나.'
이번 여행을 통해서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당황스러운 순간이 오더라도 침착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열차는 얼음판 위를 스쳐가 듯 매끄럽게 바르셀로나로 향하여 달려갔다.
여러 가지 걸림돌은 가끔 발생하나 나름 열차 여행의 멋을 맘껏 누리는 것 같다.
성취와 희열감도 있고 낭만도 가득하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편히 쉬면서 즐기는 것은 또 어떻고?
그야말로 꿀맛이다.
넓은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긴 파노라마로 뇌리에 저장되고 있다.
도착한 이곳의 날씨도 훈풍이 불고 햇빛이 뜨겁게 느껴졌다.
역 안의 지하철과 일반 전철을 갈아타고 약 1시간 30분 뒤에 에어비앤비의 예약 숙소가 있는 루비라는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숙소까지 또 걸었다.
5분 거리지만 짐이 있으니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루비라는 동네인데 아담한 분위기가 정겹게 느껴졌다.
루비라는 작은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그런데 이 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과 함께 움직이니 무척 힘이 들고 여기까지 오는 길이 험난했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꼴이 말이 아니다.
예상했던 건 이것이 아니었는데... 빗나갔다.
도착해서 짐을 풀자 벼리의 기분이 영 별로였다.
너무 힘이 들어 짐을 던지고 싶은 심정이란다.
파리 여행 구간부터는 좀 편하게 다니고 숙소도 역이나 공항 근처에 정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즐거운 여행이 되니까..
벼리가 혼자서 마을 구경을 가겠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유럽의 일정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 갔다 오면 같이 나가기로 했다.
일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혼자 나간 벼리가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마을 중심가 쪽으로 벼리를 찾아 나섰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정도의 마을은 아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걱정이 밀려왔다.
평소에 방향감각이 없어 자칭 '길치'라는 사람이 외국의 낯선 마을을 헤매다가 고생하는 게 아닌지?
숙소에 와 있을지도 모르니 가보자.
게스트로 있는 영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왔다가 나갔다고 한다.
다시 마을 중심가로 가서 찾고 있던 중 저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벼리 같은 느낌이 드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갔다.
뛰어서 내려가보니 앞에 벼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와,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얼굴엔 땀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나의 얼굴에서 벼리의 손이 '쪼르르' 땀과 미끄러졌다.
땀이 나건, 비 오듯 하건 상관없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타국에서 의지하는 두 사람의 끈을 꽁꽁 두텁게 이어놓았다.
더 많이 생각해 주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리라.
벼리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예전의 여행들은 짐을 차에 싣고 다니거나 아니면 짐이 있어도 짧은 여행이었기에 벼리가 힘들게 느끼질 못했다.
그야말로 '룰루랄라' 였단다.
3개월 여행 때도 그러해서 좋았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줄인다고 줄여 온 짐과의 여행인데도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벼리가 힘들게 느낀다.
기내 가방 무게가 무려 16kg이 넘었으니 무척 무거웠겠다.
돌아보니 나라 간, 도시 간 이동도 많았다.
유럽 여행 기간에 렌터카와 유레일패스를 놓고 검토하고 많이 생각했었다.
기차여행이 재밌고 낭만적일 것 같아 결정된 것인데 짐과의 이동이 벼리를 힘들게 할 거란 걸 미처 몰랐다.
벼리도 예상을 못했단다.
잘 넘고 넘어 루비까지 왔고 오늘이 고비가 될 것 같다.
둘의 힘으로 뭐든 이겨낼 수 있다.
'우린 세계최강팀이잖아.~~'
아자 아자 파이팅!
혼자 다니면서 봐 두었던 빵가게, 과일가게에서 여러 가지를 사고 피자집에 들렀다.
작은 피자를 한 판 시켰다.
손님도 없는데 느리게 나왔고 뭘 시켰는지 몇 번 물어본다.
가게에서 알고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다른 걸 가져와서 맞냐?
먹고 간다는데 박스에 넣어서 가져오질 않나.
포크, 나이프, 접시, 피클 등 아무것도 안 준다.
웃기는 피자집이네.
맛은 있고 빵은 바삭바삭했다.
아무것도 안 줘도 맛있으니 용서할게.
후덥지근한 마을의 공기를 헤치며 작은 마을 번화가를 둘러보니 나름 볼 게 많았다.
늦게까지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린 내일을 위해 건배~~
"푹 자자"
바로셀로나행 고속열차
열차 내부
티켓이 빠져버린 공간
바로셀로나 시내 모습
루비가는 일반 열차를 기다리며
루비가는 열차
피자가게 앞 마을 모습
피자한판 먹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