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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공연이 홈런을 날렸다./23년7월25(화)

by 강민수

에든버러의 숙소에서 조금만 나가면 북해 바다가 있다.

바다가 있는 곳을 보며 찾아 나서는 산책길에 예쁜 꽃이 한들거렸다.

조용한 숲 속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가니 북해가 나왔다.

먼바다를 보니 푸른색이 아닌 잿빛이 돌아 살짝 실망의 마음이 지나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기와 다르게 맑은 바닷물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북해 바닷물에 손을 넣어 봐요."

차갑고 짭조름했다.

"해 해 해 자로 끝나는 바다?"

"카리브해, 아일랜드 해, 지중해, 북해, 홍해, 사해... 사랑해~~"

우리가 놀았던 바다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놀이를 했다.

"킥킥, 히히"

아침이고 외진 곳이라 몇 사람만 왔다 갔다 한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청년은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움직임이 없다.

명상에 잠긴 듯 내면을 바라보는 북해에서의 시간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상큼한 공기도 우리의 기분을 한껏 맑고 깨끗하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버스에 몸과 마음을 싣고 역으로 갔다.

역전은 어제 돌아보았던 구시가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전경이 참 좋았다.

"으응, 역 건물이 이렇게 멋졌네."

자고 일어나 세수한 역의 민낯이 새롭게 다가왔다.

에든버러에서 다시 런던까지 간다.

약 4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100년 된 서비스를 자랑하는 열차다.

"너 잘 만났다."

역시 점심과 간식거리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승무원의 인상이 곱지 않다.

못마땅한 표정에 "따다닥" 거리는 말투가 앙칼스럽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니 별 맛이 없다.

"먹는 즐거움을 앗아갔어."

"치, 치사하게 시리..."

사람의 표정과 말씨가 상대방에게 주는 이미지는 대단하다.

반면교사로 삼아 나를 돌아봐야겠다.

런던에 도착 후 역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짐을 두고 오늘 저녁 뮤지컬 공연이 있을 극장 위치를 확인하러 차이나타운 근처 극장으로 갔다.

당초에는 에든버러에서 런던에 도착하는 열차 시간이 공연시작 40분 전인 오후 6시 50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짐과 극장까지의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무리일 것 같았다. 에든버러에 도착하자마자 런던 가는 열차 시간을 오전으로 변경하여 런던으로 일찍 돌아온 것이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경하지 않았다면 바쁘게 서둘다가 공연을 망쳤거나 못 봤을 것 같았다.

극장위치를 알아둔 뒤에 다시 차이나타운에 가니 며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한국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구워 먹는 고깃집이 새로이 오픈하여 간판을 한글로 큼직하게 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북적이는 차이나 거리를 오고 가며 중국 분위기가 묻어나는 가게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다양한 표정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차이나음식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극장으로 향했다.

번화가에 인파의 물결을 헤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지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잠시 철학 시간이다.

걸으면서 사고하고 영감을 얻는다고 하지 않는가?

열차를 타고 나라와 도시를 이동하면서 사색에 잠기는 시간도 많았다.

여행으로 고생도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중심가에서 팔방으로 연결된 도로 위에 갖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것도 많은데 보이지 않는 지구촌 곳곳에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살아가는 게 정말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공연 45분 전이라 긴 줄이 늘어서지 않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상냥한 직원의 안내를 받고 입장했다.

극장 내 대기실에서 여유롭게 시작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좋다.

"어떠한 의상과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을까?"

벼리는 몹시 궁금하고 기대에 찼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뮤지컬 연출가가 되고 싶다고 십여 년 전에 말했다.

의상과 음악과 춤을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연출해서 무대에 올리면 관객들이 "뿅" 갈 텐데...

벼리 취향에는 뮤지컬, 연극, 발레, 오페라, 음악회 등 다양한 공연이 딱 맞다고 했다.

그런 반면 나는 음악회와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둘이 만나 지내온 몇 십 년 동안 취미도 문화생활도 많이 동화되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장르를 같이 즐긴다.

시간이 갈수록 관객들이 극장을 메우고 있었다.

정정차림에 와인도 마시고 간식도 즐기며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오늘의 공연은 '크레이지 포유'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여 1930년작 “걸 크레이지”에 음악 13곡을 추가하여 만든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었다.

은행가 어머니의 아들인 뉴요커 바비 차일드와 독신 여성 포리 베이커가 만나 첫눈에 반하여 사랑하게 될 때까지의 내용이다.

대사 중간중간에 관객들의 폭소가 터져 나올 때 못 알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장면들이 지루하지 않게 펼쳐졌다.

우리 앞에 앉은 남자는 혼자서 "껄껄껄 허허허..." 많이 웃는다.

내용의 흐름으로 우스운 장면도 아닌데도 마냥 웃는 게 아이 같다.

순수함을 잃지 않아서겠지.

10분간 휴식시간은 우리와 참 다르다.

유럽은 안주 없는 술만 마시는 것도 다르다.

와인잔, 맥주잔을 들고 파티장에 온 것처럼 이리저리 다니며 얘기를 나눈다.

예전의 공연 때는 못 봤던 장면이다.

남자 주인공의 춤 솜씨가 대단했다.

여러 종류의 춤을 다 마스트한 듯 음악에 맞춘 몸놀림의 유연함과 절도가 자유자재로 거침없다.

특히 탭댄스의 경쾌함과 발동작은 정말 신났다.

분홍색 윗 옷과 짧은 치마의 귀엽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6명의 여자 댄서의 탭댄스도 인상적이다.

'탭댄스를 배워볼까'

나이 들어 댄스가 좋다는데 저런 춤은 무리가 될까?

커튼콜에 개인의 끼가 담긴 인사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막이 내렸다.

"돈이 아깝지 않은 멋진 공연이었다."

나 역시 벼리와 같은 생각이었으니 둘 다 기분 좋게 극장을 나왔다.

여행의 힘듦을 한방에 홈런 치듯 '팍' 날렸다.

공연처럼 박수를 받으며 인생의 마무리를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것도 기립박수를...

깜깜해진 밤거리를 손 잡고 걷는 길은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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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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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열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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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행 1등석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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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공연장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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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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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차이나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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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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