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런던에서 벼리, 큰 일 날 뻔../23년7월26일(수)

by 강민수

프랑스로 나가기 전에 하루를 더 런던에서 쉬어야 했다.

오늘은 버킹엄 궁전과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된 포토벨로 마켓을 가 보기로 했다.

킹크로스 지하철 역에서 원데이 티켓을 구입하고 지하철 매표소 입구로 가는데 저쪽에서 벼리가 눈물을 흘리며 절뚝거리며 걸어온다.

놀라서 다가가 몸이 괜찮은지, 무슨 일인지 물으니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었다고 했다.

사고는 정말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더니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벼리의 인상은 울상으로 울먹인다.

원데이 티켓을 터치하려고 먼저 간 내 뒤를 빨리 뒤쫓아 오려다가 미끄러졌다.

벼리의 말에 의하면

"계단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순간 발은 헛디뎌지고 정신이 몽롱하고 아찔하면서 넘어졌다.

내 옆에서 외국인이 일으켜 주며 괜찮냐며 물었다."

이런 상황에 있어야 할 남편은 없고 엉덩이와 팔이 아파 눈물만 난다는 것이다.

걸음이 빠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바쁘니 더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인정했다.

여유롭고 편한 여행을 하기로 하고 나왔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벼리와 나란히 걷지를 못했다.

시정해야 할 일이며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타국에서 이런 난감한 일을 겪는다는 것과 옆에서 나의 보호를 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 모양이다.

나도 벼리를 잘 챙겨 주고 싶은데 자유여행이란 게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 보니 소홀한 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을 꼭 잡고 다녀요."

몸 상태는 걸을 수 있는 것으로 봐서 뼈에는 문제가 없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좀 더 경과되어 봐야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큰 부상이 아니니까 다행스럽다.

어렵게 지하철을 타고 버킹엄 궁전으로 갔는데 때마침 경비병들의 행진이 있었다.

많은 인파들이 길 양쪽에 모여서 거리의 진기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 보기 힘든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궁전 앞에서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예쁘게 가꾸어진 궁전 정원도 걸었다.

궁전을 뒤로하고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노팅힐' 영화 배경이 되었던 포토벨로시장을 가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기 위하여 이동하던 중에 벼리가 걷는데 힘들어 길 옆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애로점과 힘든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예전과 다른 것은 나이는 무시할 수가 없다는 당연한 진리였다.

서로가 이해할 것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다시 버스를 타러 길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 신용카드를 터치하니 안된다고 했다.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꺼내 "이거? 동전? 지폐?" 모두 아니라고 했다.

기사가 그냥 타라고 해서 감사히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영국에서는 신용카드로 지하철은 탑승이 되는데 버스는 별도의 카드를 사야 했다.

노팅힐은 멜로 영화로 유명 여배우와 무명 기자 사이에 피어난 사랑의 이야기를 표현한 영화다.

남자판 신데렐라 영화인 셈이다.

포토벨로 시장은 동네 시장으로 양쪽 옆으로 상가들과 간이 점포들이 즐비하게 진을 치고 장사를 하는 소박한 마켓이었다.

몇 년 전에 노팅힐을 찾아왔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운영하는 여행전문 서점은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변신해 있었다.

주변도 관광 상품으로 상업화되었고 변한 게 너무 많아서 그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영화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포토벨로 시장을 걸어 다니며 우산을 썼다 접었다를 반복했고

쉬다 걷다 먹느라 많이 걷지는 않았다.

비가 멎었다.

거리를 좀 더 구경하고 숙소에 맡긴 짐을 찾으러 갔다.

프랑스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러 역으로 가는 도중에 작은 가방이 움푹 파인 곳에 빠져 바퀴 하나가 부러져 버렸다.

바깥쪽 바퀴라 불편해도 우선 쓸 만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람...

가방 두 개 모두 다 바퀴가 하나씩 고장이 났다.

절름발이 가방 2개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여행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때아다 큰 것에 비하고 위안을 해본다.

프랑스로 돌아가는 유로스타에 탑승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승무원이 다가와서 뭐 잃어버린 것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니 자기 손에서 나의 신용카드가 '짠~' 나오는 게 아닌가?

'어, 내 카드가 왜 승무원 손에?'

상상도 못 한 일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승무원은 주워준 카드를 내 승차권과 대조하고 나를 찾아온 것 같다.

뒤에 숨겨놓고 갑자기 내밀며 약간 놀라게 하는 장나니가 깃들었다.

'신용카드를 떨어뜨렸다니... 이런 일이.... '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벌어졌다.

얼마나 감사한지 인사를 몇 번씩이나 하고도 모자라 뛰어 내려가서 같이 주워서 건네준 사람과 승무원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기념할 일은 아닌데 그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다.

서로 얼굴을 익힌지라 열차 안에서도 와인을 자꾸 주며 한잔 더 하라고 웃으며 권했다.

우리는 볼 때마다 '땡큐' 했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었고 다 괜찮다고 승무원이 말했다.

"열차에서 내리면 호텔로 바로 가느냐?"

"네."

가서 한잔 더 하라고 추가로 와인을 줬다.

우리의 "땡큐"는 끝이 없다.

헤어지면서 또 "땡큐, 바이~"

밤 11시가 넘어 북역에 도착한 유로스타는 기억에 남는 열차 여행이 될 것 같다.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으면 그 뒤 수습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것 같다.

오늘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바퀴 2개 부서진 것보다, 벼리의 더 큰 부상보다, 카드의 분실보다는

훨씬 더 나은 하루에 감사한다.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다.'

굿 럭~~ 내일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어야겠다.



20230726_110555.jpg?type=w580



지하철 계단





20230726_114746.jpg?type=w580



버킹엄 궁전





20230726_115318.jpg?type=w580




20230726_115948.jpg?type=w580




20230726_121150.jpg?type=w580




20230726_121526.jpg?type=w580




20230726_145300.jpg?type=w580




20230726_153015.jpg?type=w580



이층 버스로 노팅힐 가는 중





20230726_162836.jpg?type=w580



영화에 나온 여행자 전문서점





20230726_163541.jpg?type=w580




20230726_194307.jpg?type=w580



프랑스로 갈 유로스타





20230726_194954.jpg?type=w580



카드를 주워준 고마운 승무원들





20230726_195022.jpg?type=w580




20230726_202011.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뮤지컬 공연이 홈런을 날렸다./23년7월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