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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행 열차를 붙잡고.../23년7월28일(금)

by 강민수

어제부터 수영복을 버리고 가겠다고 했다.

오늘 드디어 캐리어에서 수영복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진짜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영복 안녕~ 그동안 잘 입었어. 잘 가..."

벼리는 주저리주저리 이별식을 하고 있었다.

내년 3월 말에 호주 크루즈에서 입을 거라고 보관해서 가져 다녔다.

짐 줄이기 대상 1호가 벼리 수영복이었다.

"버려도 되겠어요? 후회할 텐데..."

중간중간 호텔 수영장에서도 할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하라고 하니 8개월 동안 가지고 다니기에 짐이란다.

마음은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별의 눈물인가?

스위스로 가는 열차가 오후 2시라서 아침 운동 겸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몽마르트르언덕에 한번 더 갔다 오기로 했다.

"와, 또 몽마르트르에 간다.~~ 좋지요."

좋아하는 벼리가 며칠 전에 갔다 오면서

"이제 몽마르트르에는 올 일이 없겠지요?"

앞 일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진짜 알 수 없네.

시내를 구경 삼아 길 따라 걸어갔다.

우리가 걷는 길 옆 가게는 예쁜 드레스와 예사롭지 않은 양복이 멋지게 폼을 잡고 있다.

파티 문화가 파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니 그에 걸맞은 파티복들인 것 같았다.

예쁜 드레스가 벼리의 눈에 포착되어 잠시 멈췄으나 그림의 떡인걸.

"에이, 가요."

파리에서도 가게 점원들은 주로 흑인들이 많이 하는 걸 봐서 직업의 구분이 있는 듯하다.

비가 내리는 몽마르트르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약간 놀라면서 며칠 전에 했던 말.

"아니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오래전에 애들과 함께 와서 봤던 그 잔디가 왜 안 보이지?"

"잔디 옆에서 미끄럼 타며 꼬물거리며 놀던 우리 애들의 놀이터였는데..."

지금 올라가는 계단 옆 잔디가 며칠 전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와, 잔디가 여깄 다."

"왜 이렇게 기쁘지?"

가족의 추억이 어린 잔디가 보이지 않아 섭섭한 마음에 몽마르트르언덕이 많이 바뀌었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여기에 다시 온 보람이 있네.

두 번째 와서 드디어 찾았으니...

사크르쾨르 성당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비가 오니 몸이 빨리 움직이질 않는다.

"이제 슬슬 가 볼까?"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고 해서 식품 구매를 하려고 마트에 가니 살 것이 별로 없어 달랑 라면 4개만 사들고 나왔다.

프랑스 동역에서 프랑스 북동부 지역에 있는 라인강변의 도시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열차를 탔다.

2시간 정도를 달리면 역에 도착한다.

문제는 열차를 갈아타는데 여유 시간이 10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미리 짐을 챙겨 열차 문 앞에 갖다 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열리는 순간 짐을 두 손으로 밀며 뛰었다.

열차 출발 플랫폼을 잘못 찾아가는 바람에 되돌아 다른 곳으로 또 달렸다.

"걸음아, 날 살려라."를 이때 쓰는 말이 맞는지?

뛰는 게 아니고 날아 간 게 맞을 것 같다.

결국은 우리가 타야 할 열차의 출발 시간쯤에 나는 도착을 했다.

그러나 벼리의 이동 시간이 나와 같지 않고 몸이 아프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오직 열차에 올라타야 한다는 생각에 1등석을 향해 빨리 달렸으니 벼리와는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벼리는 저 멀리 2등석 앞에서 나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

'아 어떡하지? 벼리가 시력이 안 좋아 내가 안 보이겠는데...'

스위스 바젤로 출발하려는 열차 난간을 붙잡고 한 발은 땅을 짚고 벼리에게 있는 힘을 다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바로 앞에 보이는 열차에 올라 타요"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객실에 앉아 있던 손님이 일어나 나에게 와서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쏘리"

그러거나 말거나...

호루라기 소리가 "휘. 휘. 휘... 호루룩... 호루루루...."

빨리 문을 닫으라고 여기저기서 불어 댔다.

땅에 내디딘 발을 올리지 않고 난간에 서서 벼리가 탈 때까지 버텼다.

마음은 위로 아래로 "콩닥 콩닥 쿵쿵.."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벼리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막 출발하는 열차에 다행히도 타게 되었다.

열차는 나 때문에 1분여 늦게 출발된 것 같았다.

열차 칸 내에서 벼리가 있는 곳으로 찾으러 갔다.

3칸 정도 뒤에 벼리가 정신없이 서 있었다.

벼리를 데리고 1등실 칸으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벼리는

"이런 여행을 계속해야 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열차 출발 시간 디자인을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일단은 사과를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의 우리 여행은 이동 때에는 항상 리스차나 렌터카가 있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짐을 가지고 이동하는 불편함이 있는 반면에 장거리 이동 시에 편안함이 있다.

벼리는 짐을 가지고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함만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 여행이 벼리에게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 힘들면 집으로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일주일간 머무르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된다고도 말했다.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벼리도 생각에 빠졌다.

소리 없는 눈물만 벼리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위로를 했지만 몸과 마음이 아파 말없이 흐느끼는 벼리를 보려니 견딜 수가 없었다.

벼리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밝고 기분 좋은 모습을 많이 보는데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가슴이 아려온다.

바젤에 도착하여 취리히 가는 열차로 다시 한번 더 옮겨 탔다.

취리히 오는 중간에 휴대폰의 인터넷이 계속 안 되었다.

왜 그렇지???

취리히 역에 도착해서도 인터넷이 안 되어 할 수 없이 카페 직원에게 부탁하여 역의 무료 와이파이를 좀 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무료 와이파이도 전화번호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데 데이터 유심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페 직원의 휴대폰번호를 넣고 빌려 쓰는 형태를 취했다.

숙소에 가는 방법과 위치, 숙소의 현관 비밀번호 등을 메모하고 시내구간을 움직이는 열차에 탔다.

10여 분 뒤에 역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았다.

숙소가 아파트인데 깨끗하고 아담하여 집에 돌아온 느낌이다.

'역시 스위스다.'

벼리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다행히도 숙소가 마음에 들어 그나마 우리에게 여행의 어려움에 대한 위로가 되었다.

안락한 숙소에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무리한 계획으로 강행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바퀴 한 개 고장 난 캐리어를 끌면서 플랫폼을 찾아 10분 만에 갈아타야 하는 시나리오를 짰으니...

불가능할 것 같은 힘든 일을 왜 하려 했는지 알 수 없다.

그 10분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며칠 전에 계단에서 헛디뎌 엉덩방아 찧고 욕조에서 미끄러져 가슴을 다쳐 걷기도 움직이기도 힘든 벼리 생각을 못했다.

정말 미안했다.

짧은 시간에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데만 목숨 걸고 달린 셈이다.

그 몸으로 뒤쫓아 온다고 너무너무 힘들었을 것 같았다.

벼리를 꼭 안아주며

"우리 마누라 오늘 고생 많이 했어요. 미안해요. 다음에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계획 세울게요."

벼리는 품에 안겨 흐느꼈다.

여행으로 서로를 더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많이 든다.

'정말 잘해줘야 할 사람은 내 사랑 벼리.'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맥주와 와인으로 "건배"

숙소에서 휴대폰 인터넷이 안 된 이유를 찾아보니 스위스는 유럽연합 27개국에 가입이 안 되어 내가 산 유심은 프랑스로서 끝이 났다.

내일은 스위스 유심도 알아보고 여기에서 6일간 다시 에너지를 보충해야겠다.

침대에 누운 벼리는 끙끙 앓으며 눈물이 뺨을 타고 베개를 적신다.

"많이 아파요? 약 바르자."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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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가는 시내 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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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사르코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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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들과 같이 놀던 사르쾨르성당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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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올라 탄 열차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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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려는 스위스 바젤행 열차의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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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가는 고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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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위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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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까지 가는 시내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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