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스위스 취리히...
오늘은 어디로 가 볼까 생각하다가 오전에는 공항에 가서 유심을 사고 오후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이야기가 탄생된 알프스 산골 마을에 가 보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려면 트램을 타야 하는데 표를 사는 곳이 없어 그냥 올라탔다.
한 정거장을 가니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다.
"엄마야, 큰일 났다. 저 사람들이 표 검사하러 올라오겠네."
빨리 내리자고 벼리가 말했다.
트램이 도착하니 순식간에 들이닥쳐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 먹듯이' 승객들에게 티켓을 요구한다.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꼼짝 마라' 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우리 앞에 다가와 "티켓"
트램표가 없다.
유레일패스라도 보여주려니 인터넷이 안된다.
표가 없는 우리를 발견한 검표원은 트램에서 내리라고 했다.
내리자마자 우리 옆에 두 명의 검표원이 양 옆에 붙더니 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우리는 상황 설명을 짧은 영어로 하였다.
지금 인터넷이 안되고 휴대폰 속에 유레일 패스가 있다.
그래서 티켓을 준비하지 못했다 등등...
그렇게 했는데도 표를 보여 달라고만 몇 번 말했다.
"닦달하지 말고 기다려 봐라.
핫스파 부탁한다."
여러 말하지 말고, 엉터리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 표만 보여 달라는 표정이다.
결국은 다른 검표원의 휴대폰으로 핫스파를 이용하여 유레일패스로 트램표를 만들어 보여 주었다.
그러자 ‘오케이’ 라며 우리에게 가라는 표시를 했다.
사실 유레일패스가 트램을 탈 수 있는지 모르고 탔는데 다행히 통과가 되었다.
공항을 간다고 하니 건너편 트램을 타라고 알려 주었다.
태도가 친절 모드로 약간 바뀌었다.
반대편 트램을 올라 타니 검표원들이 우리 쪽으로 우르르 건너와서 표 검사를 했다.
한 검표원이 우리를 보더니 '반대편에서 확인된 그 사람들이네'라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저 쪽에서 두 검표원들과 표 검사 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뒤따라 올라온 검표원도 우리를 보며
'당신들 놀랐겠네. 이제 안심해도 된다.'라는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만약 유레일패스로 트램을 탈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고생과 엄청난 벌금을 물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우리 간도 크다. 그냥 타다니... 뭘 믿고? 무슨 배짱으로..."
카드나 현금으로 내도 되는 게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탔는데...
알 수 없다.
스위스는 자기 나라의 화폐는 있는데 말은 독일어를 주로 사용했다.
별도의 스위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억양이 딱딱해서 자세히 들어보니 독일어였다.
공항에 도착해 유심 파는 가게를 찾아보았다.
스위스 7일 유심을 20프랑에 샀다.
휴대폰에서 인터넷이 되니 새 생명이 탄생한 것 같아 힘이 났다.
현대인들에 인터넷이 안 되면 눈 뜬 장님이나 다를 바 없다.
공항을 한 바뀌 둘러보는데 큰 마트가 보여서 들어갔다.
유럽에서 우리가 본 마트 중 제일 크다.
우리나라 코스트코 정도다.
몇 가지의 식품을 사서 숙소로 들어와 점심을 먹었다.
비가 내리는 취리히의 역을 향하여 출발했다.
역전에 도착하니 타고 갈 열차가 1분 전에 출발해 버려 1시간 뒤에 있는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만 했다.
"아! 조금만 일찍 왔으면..."
기다리는 1시간이 아까워 정차해 있는 몇 대의 열차 중 어디로 가는지 이 열차 저 열차를 기웃거렸다.
보통 왕복 6시간이 소요되어 다른 목적지로의 변경은 포기하고 당초 목적지인 하이디 마을로 가기로 했다.
출발 준비 중인 열차 안의 쓰레기통 뚜껑을 닦고 있는 청소원을 봤다.
“와 ~~ 쓰레기통까지 닦고 있는 스위스의 역 관리는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크기의 야무지고 심플한 스텐쓰레기통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거리의 쓰레기통도 유심히 관찰하니 마찬가지로 반짝였다.
거리에 쓰레기를 본 적이 없다.
중간 기착지에서 열차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시간이 6분 정도로 두 정거장만 이동하면 되었다.
며칠 전 바젤 가는 열차를 갈아타는 10분 전쟁과는 비교도 안된다.
홀가분한 몸이고 가깝다.
마이엔펠트라는 시골 마을은 스위스 여성문학가 요한나 슈필의 하이디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역에 도착하자 비가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하이디 마을까지는 세찬 비를 뚫고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도 뜸적뜸적,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조금 약해지거나 그치기를 기다리며 입구 입간판을 보니 우리가 아는 하이디가 아니다.
꾀죄죄한 여성 얼굴이 하이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에게, 저 모습이 아닌데....."
"상큼 발랄 귀엽고 어린 하이디는 어디 있어?"
하이디를 좋아하는 벼리는 약간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하염없이 먼 산과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더 쏟아져서 포기하고 다시 취리히로 돌아가려고 열차를 탔다.
"내일 다시 와야겠어요."
중간 기착지 역에서 취리히 가는 열차로 타려는데 비가 그쳤다.
열차 문 앞에서 다시 하이디 마을로 가자고 벼리가 제안을 했다.
열차로 10분 정도면 하이디 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내일 다시 찾아오려면 반나절 이상이 소요되니 온 김에 갔다 오자고 하였다.
눈앞에서 취리히 가는 열차는 문을 닫고 출발해 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지방 열차를 기다렸다가 마이엔펠트 마을로 갔다.
오늘은 열차 앞에서 '우왕좌왕, 왔다 갔다, 기웃기웃 거리는 날' 같다.
여기에 오니 비가 조금 약해져 있었다.
"하이디 마을로 출발이다.~~"
"하이디를 만나려면 이 정도의 비는 문제없지."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디니 알프스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마을 입구부터 시골 마을의 향기가 전해졌다.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들의 집들은 정감이 있었다.
낮은 집들 사이로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
올라가는 주변에는 작고 귀여운 포도알이 조랑조랑 달린 포도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포도주용이라 일반 포도와 품종이 달라 알이 잘다.
운치 있는 길을 둘이서~~ 랄라라~~
"하이디!" "클라라"
"왜"
"어딨 니"
"여기 있어." "하이디. 뒤에 있어..."
'하이디와 클라라'가 된 기분이다.
하이디 집이 나올 때까지 서너 번 반복했던 대화다.
비 내리는 골목들을 지나서 드디어 하이디 마을에 도착을 했다.
입간판의 환영을 받으며 좀 더 올라가니 1880년에 지었다는 하이디 집이 나왔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끼리 "찰칵찰칵..."
천진난만하게 풀을 뜯고 있는 염소와도 사진 한 장 찰칵.
하이디가 뛰놀던 알프스의 목가적인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다.
하이디의 탄생지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비 오는 랄프 산 아래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려니 비가 조금 세게 내린다.
내려가는 길 포도밭에서 익어 가는 포도 맛도 보고 카페의 불빛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흥겨운 대화 소리를 들으며 역전에 도착했다.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취리히 역에 도착했다.
공항에 있는 큰 마켓에 들러 고추냉이콩과 바케트를 사서 숙소로 왔다.
너무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은 비 예보가 있어 인터라켄 관광을 모레로 변경하고 가까운 곳에 갔다 오려고 한다.
하이디! 내 꿈 꿔~~
트램티켓 검표원
공항 내 마켓
하이디 만나러 가타다 본 쓰레기통
하이디 마을 가는 길
포도밭도 있고
하이디 마을 입구
지나온 아랫마을 배경으로
하이디의 집
포도맛도 보고
돌아갈 열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