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전역에 비가 온다는 예보다.
유럽의 날씨는 금방 맑았다가 비가 오다가 변덕이 심하다.
조금 덜 오는 지역을 찾다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잘츠부르크는 몇 번 갔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라 또 가고 싶다.
옆 동네 놀러 가듯이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자고 했다.
내가 사는 김해에서 서울까지 왕복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린다.
취리히에서 잘츠부르크 까지는 왕복으로 11시간 이상 잡아야 했다.
"무려 11시간이나 넘는데 가볍게 한 바퀴?"
"긴 시간인데 지겹지도 않은 이상한 사람들 아냐?"
많이 타고 다녔더니 이제 이 정도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열차는 버스보다 피로도가 덜한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은 운치가 있고 바깥 경치를 즐기기에 좋다.
긴 시간 동안 열차에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비 내리는 경치를 볼 생각이었다.
눈앞으로 지나가는 안개가 자욱한 고산의 풍경이 오늘은 더 멋지다.
산 아래 외로이 홀로 선 외딴집.
'무섭고 외롭지 않을까?
교통도 불편하고 도시와 먼 산골 마을은 생계수단이 뭘까?
약 2시간이 지나니 인터넷이 안 되었다.
스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를 지나고 있었다.
"맞네, 유럽 유심이 아니잖아."
스위스 유심은 단독으로 유럽에서 사용이 안 된다.
유럽 유심이 오늘까지 만료인데 버리려고 하다 보관해 둔 걸 찾아서 바꾸어 끼웠다.
여행기간에는 버릴 때 신중해야 한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난 후 몇 번 확인해서 버려야 한다.
돌아올 때 또 바꾸어야 한다.
"참 번거롭다. 내 같으면 안 가고 말지..."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데 벼리는 이런 일을 하기 싫어한다.
'참 다르다.'
열차 안의 풍경도 재미있는 게 많다.
이스라엘에서 온 듯한 유대인 가족들의 옷차림과 행동 등도 특별하여 눈에 띄었다.
젊은 나이로 보이는데 애들이 4명이나 되고 유모차를 가지고 가족 여행을 하고 있다.
막내는 유모차에 누워 자고 있었다.
한 가족이 다 같이 있기를 원해 자리를 양보해서 다른 데로 옮겼다.
유모차를 자리 뒤 넓은 공간에 두면 사람들 지나가기 편할 텐데 통로에 두고 있다.
가족 사랑이 대단하다.
지나가는 사람들 통행에 불편을 주는 데도 3시간가량을 그대로 둔다.
자리 옆에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궁금했다.
남자들 귀 옆 꽁지머리는 머리카락을 통해 하느님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 많이 봤지만 오늘 새롭게 보이며 우리의 시각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가는 열차에서 표 검사를 하는데 비스듬히 누워서 표를 보여준다.
'저래도 되나?'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우리나라였다면 '버릇이 있니, 없니' 난리 날 일이 아닌지?
헷갈린다.
서양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동이고 아무런 문제가 안 되나 보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고들 하는데 왠지 거슬린다.
그러는 사이 중간 역 인스브루크에 거의 다 왔다.
"잘츠부르크로 가는데 너무 오래 걸리니 인스브루크에 내릴까요?"
중간 역인 인스브루크는 동계올림픽이 두 번이나 열린 곳으로 유명하여 내렸다.
볼 것이 별로 없다는 말에 급히 옆 플랫폼의 잘츠부르크행 열차에 1분 만에 다시 올랐다.
열차 내에서 모바일 티켓을 만들어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1시간 30분을 더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하니 여기도 비가 오다가 말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꽃길이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을 벼리가 좋아한다.
예전에도 비가 왔었는데...
빗소리에 발맞춰 촉촉한 정원을 걸으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궁전에는 대리석의 조각품이 계단 난간과 복도와 벽을 장식하여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예술적인 조각품으로 아주 멋있는 계단에서 비옷을 입고 찍은 내 모습이 신부님 같단다.
"어느 성당의 신부님이세요?"
"김해롯데캐슬 성당요.."
우습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갤러리 사진을 확인하니 내가 봐도 신부님과 비슷하다.
"ㅎㅎ 마음을 비웠더니..."
정원을 걷고 궁전도 보고 모차르트 생가로 갔다.
잘차흐강 위 다리를 지나면서 저 멀리 잘츠부르크성을 바라보며 멈췄다.
몇 년 전에 자동차로 성에 갔던 추억에 잠깐 잠겼다.
모차르트 생가 앞에 우산 부대들이 모여 들어가려니 틈이 없었다.
조금만 부딪힐 뻔 해도 "쏘리"는 일상화된 외국인들에게 너무 다가서면 실례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내디뎌 도착한 생가.
태어나서 17세까지 살았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다.
게트라이데 거리의 중심에 있다.
생전에 사용했던 침대, 악보, 피아노, 바이올린, 편지, 초상화 등을 볼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강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는 비가 와도 북적인다.
시간이 부족하여 조금만 보고 가지만 예전에 이 거리를 오고 가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비 오는 날 짧은 잘츠부르크의 관광이지만 의미가 있었다.
이외 본 것 셋.
하나.
금발 단발머리에 무릎 정도 길이의 캉캉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가 간판을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 저 할머니 봐요."
우리는 싱긋이 웃었다.
벼리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을 알고 있으니 대충 감이 오고 마음으로 통한다.
거리에서 만난 할머니는 꼭 아이 같았다.
"나도 저렇게 입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걸림돌이 왜 많을까요?"
따가운 시선 때문에 못 입는다고 벼리가 말했다.
"나이에 맞게 입어야지, 옷이 그게 뭐고 등등.."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말을 안 해도 속으로 비웃는 단다.
벼리의 취향과 맞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 몇 번 돌아보며 힐끔거리는데 그 옆을 어린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원피스와 모습이 비슷했다.
할머니 짱~~
둘.
취리히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 할머니가 올라탔다.
흰색 티와 흰색 미니스커트에 흰색 운동화로 온통 하얗다.
대학생 스타일 같다.
그런데 머리는 어떨까요?
금발 긴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다.
"귀여운 할머니 탔다."
돌아 앉은 벼리가 잽싸게 보고 또 둘이 웃었다.
"아, 나도 여행기간에 머리 길면 저렇게 묶으려고 했는데..."
검은 고무줄 2개를 보여줬다.
할머니는 곧은 자세로 안경을 끼고 책을 보고 계셨다.
멋있어 보였다.
셋.
스위스에서는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길거리에 개가 조금 보였다.
큰 개와 강아지들이 주인을 졸졸 따른다. 스위스에서는 개들도 깔끔했다.
다른 곳에서는 애완견 같지 않은 꼬질꼬질 강아지들만 보았는데 처음으로 옷 입은 애완견을 만났다.
주인과 강아지의 모습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다가가 만져보는 벼리.
"우웅, 너무 귀엽다."
보고 싶은 다루와 토리가 생각난단다.
'눈물 아주 아주 찔끔..'
오늘은 90세 넘은 귀여운 할머니 두 분과 강아지들을 만나 입꼬리까지 입이 걸린 벼리가 예쁘다.
유대인 가족의 여행
차창 밖 모습
열차 1등실
미라벨정원과 궁전 배경
잘차흐강 배경
모차르트 생가
미라벨궁전 내부 계단
취리히로 돌아갈 열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