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에서 출생하여 1993년 1월 20일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몇 년 전 유럽 자동차 여행 시에 벨기에에 있는 출생지 집을 갔으나 그 뒤 여행에서 생가와 묘지를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못 갔다.
내내 아쉬움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마음먹고 꼭 가 보리라.
그녀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에 패션과 영화의 아이콘으로 활동한 배우이자 자선가이기도 했다.
내가 오드리 헵번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로마의 휴일” 영화를 보고 매력을 느꼈고 노후에 봉사 활동하는 그녀의 삶을 닮고 싶은 것이 나의 내면에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살아 있다면 우리 나이로 94세가 넘는 할머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항상 소녀의 이미지와 아주 예뻤던 배우로 이름 나 있다.
누구에게나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추억된다면 값진 인생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드리 헵번을 찾아가 보자.
출발 1분 전에 열차에 올라 스위스의 풍경을 즐긴다.
2시간여 만에 모르주에 도착했다.
이 동네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양산이 뒤집히기 일쑤다.
너무 한산하여 사람이 사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어제처럼 비라도 온다면 정말 가기 어려운 길이다.
역 뒤편 언덕길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헵번의 묘지가 나왔다.
유명한 세계적 여배우의 영원한 안식처로는 너무나 소박하고 검소했다.
동네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에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여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 주었다.
그녀를 만난 뒤 나오는 길에 벼리는 언덕 위 한편에 있는 자연산 자두와 아기사과를 따 먹느라 볼이 불룩했다.
"이 자두 진짜 맛있어요. 사과는 별로고요."
자두를 좋아하는 벼리는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태풍급으로 불어 오니 너무 시원하여 한참을 거기 머물러 주변의 풍경을 즐겼다.
묘지에서 조금 내려가니 작은 마을의 중앙에 오드리 헵번 광장이 있었다.
헵번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광장이 이렇게 작은 건 처음 보네."
빈 공터에 나무와 꽃 몇 송이에 노천 의자 몇 개가 전부다.
너무나 조용한 마을이어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어, 여기에 오드리 헵번 버스정류장이 있어요. 호호 우습다."
지나가다 발견한 길가의 조그마한 정류장.
벼리가 앉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할 때 텅 빈 버스가 그 앞을 지나간다.
손을 흔들며 "안녕?" 인사해도 버스는 제 갈길을 향해 갈 뿐이다.
광장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헵번이 숨지기 전까지 30여 년을 살았다는 집이 나왔다,
현재 이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았다.
집 앞에는 헵번이 살았다는 표식과 안내문들도 일본어와 함께 나란히 병기되어 있었다.
이 마을에 일본사람들이 투자를 했을까?
이곳은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아 불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사람을 두 명 만났다.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 채소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둔 가게를 발견했다.
시골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채소와 과일에 가격을 붙여두었는데 주인은 없으니 자율장터 가게인지?
갓 따온 듯 싱싱했고 친환경 신토불이 같았다.
"당신 좋아하는 길이 나타났다."
오는 길에 오솔길로 접어드니 바닥에 납작하고 부드러운 나무 조각이 쫙 깔려 있었다.
양 쪽에는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 그늘을 드리운 길을 걸었다.
나도 좋아하는 길이다.
길 옆 울타리 안에 염소 두 마리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뿔난 엄마 염소, 뿔 없는 아기 염소.
새끼가 엄마 머리에 발도 올리고 머리를 배에 대고 들이받는데 엄마는 눈만 끔뻑이며 가만히 있었다.
새끼 사랑의 모성애다.
코 옆 가까이 손을 대니 코를 발름거리며 따라왔다.
"아이 귀여워."
벼리 친구 집에 염소가 있다.
안고 비비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염소가 뭐가 귀엽다고 유난을 떨까?' 속으로 생각했다는데 염소가 아기 같다던 그 마음을 알 것 같단다.
염소와 정을 나누는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귀여운 염소들아, 잘 있어~~."
오드리 헵번의 추억 장소를 뒤로하고 다시 역으로 와서 제네바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르주에서 제네바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으며 이곳은 스위스에서 가장 크다는 레만호를 끼고 있다.
벼리가 열차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한국에 와 보신 적이 있느냐?”
“우리나라 정말 아름답다. 한번 오시라.” 등등 한국 홍보를 열심히 했다.
그 아주머니께서 "한국은 너무 멀어서 못 가~~ 유럽 내에만 있어야 해~~” 하시는 것이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행을 많이 하신 것 같고 열린 마음이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의 부부 중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느냐?”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서울, 부산도 알고 방문도 여러 차례 했단다.
현재 제네바에 살고 있으며 본인은 작가이고 남편은 음악가라고 했다.
우리도 소개를 했더니 많은 관심을 보여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아주 어릴 때 스위스로 온 것 같았다.
본인의 연락처를 주면서 우리 이메일도 알려 달라고 해서 적어 주었다.
짧은 만남이라서 서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 연락하기로 했다.
글씨가 얼마나 꼬부랑글씨인지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난해하다.
메일로 보내보려고 입력하니 잘못되었단다.
뒷 좌석 아가씨에게 알파벳을 정자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아가씨와 지우고 쓰고 어렵게 완성하니 작가 홈페이지가 나왔다.
"땡큐"
간단히 메일을 보냈다.
제네바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역전 주변에서 쇼핑만 했다.
제네바의 공기와 거리의 분위기만 느끼고 간다.
역내 상가를 둘러보다가 깔끔한 화장실을 발견했다.
1.5유로를 결재하면 문이 양쪽으로 '짠' 열린다.
어느 갤러리 전시장의 입장문 같은 느낌이다.
옆 가게에는 초밥이 10개도 안 든 도시락이 5만 원이다.
마트는 10~30유로로 조금 싸다.
스위스 물가는 이 정도다.
제네바는 처음 유럽 여행 때 왔던 곳이다.
집에 있는 뻐꾸기시계를 제네바에서 구입했는데 장식용으로도 예쁘다.
제네바에서 취리히까지는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아싸, 아무도 없고 우리뿐이에요."
열차 많이 땄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다른 손님들이 없어 한 량을 전세를 낸 것 같아 기분이 붕 떴고 쾌적했다.
우리만의 점심식사를 즐겼다.
취리히 도착 후 아인슈타인이 공부하고 교수를 시작한 취리히 공대를 갔다.
들어가니 아인슈타인 동상이나 관련 자료는 없고 식당 문이 활짝 열려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 칠 수 없지. 들어가 봐요."
안 먹어도 되는데 이 대학의 학식이 궁금했다.
음식은 별로 없었지만 샐러드 맛이나 볼까 해서 한 접시 살 큼 담았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씁쓸한 이 마음은 뭘까?'
스위스에서는 일반인에게 학식도 저렴하지 않다.
학교를 돌아다녀도 학생들이 많이 보이지 않으니 썰렁하기만 했다.
학교 전체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일반인들이 쉬면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저 멀리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와 도시가 확 다가온다.
천천히 걸어 취리히 호수에 가니 물 반 배들 반이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앉았다가 가족과 왔던 길을 걸었다.
'아이들과 참 많이도 다녔구나.'
내일은 로마로 간다.
긴 열차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레만호
오드리 헵번 묘지
자두 따먹기
햅번광장
햅번 정류장
햅번 생가
바람 부는 공동묘지 전경
저 멀리 레만호와 고산을 배경으로
스위스 시골마을의 건널목
한국홍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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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공대 학식
취리히 공대
취리히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