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폴리 2일 차다.
내일 가려고 했던 베수비오산을 먼저 갔다 오기로 했다.
베수비오산은 높이가 1,281미터이며 현재 활화산이다.
79년에 분화하여 폼페이 등 여러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 피해 내용으로 후손들이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어찌 해석을 해야 할지..
열차 역에서 산 정상까지 가려면 5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좀 걸어가다가 버스를 탈까 생각하며 걷는데 우리 옆에 자가용이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베스비오산 입구까지 갑니다."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니 타세요."
"이게 웬 떡. 땡큐~"
엉겁결에 올라탔다.
'왜 우리를 태워주는 것일까?
이탈리아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데 뭘 믿고 탔지?'
별 생각이 들었지만 떨쳐내고 청년들과 대화를 즐겁게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얘기를 이어갔다.
서로 한국과 이태리 자랑을 하다 보니 젊은이들의 심성이 곱고 활달해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도 이스라엘 렌터카 여행 때 배낭 여행자를 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준 적이 있다.
그 여자애가 고마워했을 것 같은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7부 능선까지 이태리 청년들 덕분에 편안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난다는 게 정말 좋다.
더 타인에게 잘하고 베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씨앗이 되고 돌고 돌아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넣어 주겠지.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걸어갔는데 1시간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쉼터 가게에서 와인 시식도 하고 설명도 듣고 각종 초콜릿도 먹으며 올라가니 힘이 부쩍 났다.
걷는 우리 옆으로 자가용이 쌩쌩 달려갔다.
차창 관광과 걸으면서 보는 경치는 확연히 다르다.
나폴리의 넓고 푸른 바다를 보니 시원스럽다.
한 참을 더 오르니 폼페이 시내가 쫘악 펼쳐졌다.
'아, 폐허가 되었던 도시가 아래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다시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마을을 이루고 살아 숨 쉬고 있는 폼페이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픔을 딛고 새롭게 재건한 도시에 사는 후손들이 무탈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정상부에 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고 입장이 불가하다고 했다.
"헉, 오 마이 갓"
바로 눈앞에 있는 분화구를 포기하기에는 아까워 조금 밑으로 내려가서 다른 길을 찾았다.
안내판에 있는 트레킹 코스로 올라가니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반가웠다.
'아하, 이 길로 가면 되는구나. 벌써 갔다 오는 사람이 있으니...'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따라 한 발 두 발 움직였다.
길 옆에는 화산재, 화산력 등 화산 쇄설물이 보였다.
화산으로 생긴 작은 돌 알맹이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1시간쯤 가니 또 다른 코스로 정상까지 가능한 산장이 있었다.
산장지기 관리원이 티켓을 확인하며 입장을 시킨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10명 안팎으로 우리처럼 티켓을 온라인으로 구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다들 입장을 못해 안타까운 눈초리만 역력했다.
우리는 외국인이라 상황을 몰랐다고 하니 자기가 한번 티켓 확보를 해보겠다며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산 아래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은 내일 표 밖에 구할 수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내일은 올 수 없다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하산을 결정했다.
아까 올라오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아마 되돌아가는 길이었나 보다.
베수비오산 트레킹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내려갈 길이 만만찮아 버스를 타려고 걷고 있었다.
"저기 가는 부부에게 차 좀 태워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며 벼리가 종종걸음으로 뛰듯이 다가갔다.
스페인에서 온 젊은 부부는 "오케이" 좋다며 같이 가자며 뒷 좌석을 정리했다.
걸어서 내려오려면 3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았는데 그들로 인하여 편하게 하산을 할 수가 있었다.
고마운 분들이다.
아주머니가 활달하고 밝았다.
밝음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얼굴의 모든 근육을 다 사용하면서 말하는 선이 크고 굵어 보기에 좋았다.
차 안에서 짧은 에스파니아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내까지 내려온 차는 우리를 내려 주었다.
"너무 고마워요. 덕분에 편히 올 수 있어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되세요."
"별말씀을요.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벼리는 아주머니를 안아주며
"잘 가세요."
그리고
"바이 바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헤어졌다.
예상보다 일찍 내려온 터라 폼페이에 갔다가 나폴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15분 정도 떨어진 폼페이는 몇 년 전에 왔었다.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고 가 보고 싶어 다시 찾아간 것이다.
베수비오산의 화산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재발견 현장은 유적공원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성인 일인당 2만 8천 원 정도다.
우리는 유적공원 이외 몇 년 전에 못 본 폼페이의 다른 곳을 돌아보았다.
유적공원은 주변 상가와 입장하는 곳이 현대식으로 좀 변해 있었다.
그 당시 우리가 자동차를 주차했던 주차장도 유적공원 바로 옆에 그대로 있었다.
폼페이의 추억여행이 되었다.
역으로 돌아와서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려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남미계 여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몇 분 동안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기실이 너무 시끄러웠지만 서로 힐끔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통화에 참다 참다 일어섰다.
"좀 조용히 통화하시라 “ 이야기하니 바로 그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밖으로 나갔다.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여행 다닐 때 중국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시끄럽기 이를 데 없다.
긴 여행을 하면서 겪어 보니 유럽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통화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신경 안 쓰고 큰 소리로 오랫동안 하는 걸 많이 봤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또 시작되었네."
라는 말만 주고받았을 뿐 참고 지내왔다.
오늘은 너무 심했다.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갈 열차가 30분이나 지연 출발했다.
빨리 호텔에 가서 내일 여행을 준비하려고 생각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
지연된 시간 동안 이나마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탈리아 남부 쪽 한 바퀴는 하루 렌터카를 이용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차를 찾고 반납하러 공항까지 왔다 갔다가 번거로울 것 같았다.
곡예길 운전도 힘들 것 같아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 열차와 버스로 아말피와 포지타노 쪽으로 갔다 올 예정이다.
아말피와 포지타노는 쏘렌도 아래에 위치한 해안가 마을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서 잡아 본 일정이다.
내일을 기대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산
산 위까지 태워준 이태리 청년들
정상부를 향하여 걸어가다가
나폴리만을 배경으로
마그마가 흘러내린 자국
폼페이를 밑에 두고 한 장
화산모래알을 밝으며
정상부근 입장권 확인하는 곳
베수비오산 분화구 안내그림
내려올 때 태워준 스페인 부부
폼페이 성당 내부
코끼리와 한판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