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햇살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꽃과 잔디에 내려앉은 이슬방울이 영롱하게 맺혀서 대롱거린다.
하늘 향해 두 팔 뻗어 기지개를 크게 켜며 공기를 들이켜니 신선하다.
몸을 슬슬 풀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 호텔에 또 언제 와서 조식을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니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니 맛이 새롭다.
오늘은 샌튼이라는 곳으로 하루 나들이를 나가기로 했다.
샌튼은 요하네스버그 중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고 안전하다고 하여 그곳으로 계획을 세웠다.
트레블월넷 모바일 기능을 이용하여 우버택시를 불렀다.
택시에 올라탔는데 결제가 안 되었다고 기사와 한참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웃음기도 없는 고약한 인상에 성격도 안 좋아 보여 우리를 제대로 데려다 줄지 걱정이 살짝 되었다.
그러는 중에 우리 호텔로 들어가는 차가 우리를 보고 멈칫거려서 세워 얘기하니 그분이 내렸다.
종업원인지 직원인지는 모르나 우리 입장에서 대변하며 폰 조작을 한참 했다.
마침내 결제가 되어 우버택시가 출발했다.
샌튼까지는 약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인데 택시비는 12,000원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줘서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힘차게 땡큐 바이를 외치며 샌튼 컨벤션센터 앞에 내렸는데 번화가라는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 들었던 바가 있으니 약간의 오싹함이 다가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거리를 걷기도 위험할 것 같아 아무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마침 할머니로 보이는 한 분이 우리 뒤를 따라 들어오시길래 문을 잡고 있었다.
"땡큐, 어디를 가고 있느냐?"
"쇼핑몰에 가려고 합니다."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따라오라고 하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데 나이 지긋한 분이 내내 웃음 띤 얼굴을 드러내는 인상이 고왔다.
건물 구조가 이상하고 복잡해서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며 여기까지 오는데 사람도 없고 찾기도 쉽지 않았다.
지하 2층으로 가서 왼쪽 오른쪽으로 쭉 가면 나온다고 하시며 하루 재미있게 보내라면서 그분은 위층으로 올라가셨다.
미로 같은 건물 안에서 할머니의 도움으로 쇼핑몰 거리 입구로 드디어 골인했다.
쇼핑몰 입구는 쉽게 들어오기 좋은 곳에 있었는데 우리가 이상한 문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지하로 내려 들어서니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닌 것이었다.
작은 운동장만큼이나 아주 넓은 공간에 쇼핑센터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유럽에서도 보지 못한 거대한 쇼핑몰을 보면서 잠깐 놀랐다.
현대식 건물 안에는 넓은 가게들과 통로가 크고 시원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번화가를 통째로 건물 안에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쇼핑센터에는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벼리와 가방 가격도 알아보고 마트에 들어가 이리저리 아이쇼핑을 했다.
넓어서 일부만 보고 오후에 다시 오기로 하고 만델라 광장을 가려고 구글맵을 켜고 쇼핑몰 입구에서 방향을 찾고 있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다가오는 젊은 아저씨 한분이
"하이, 하 아유... 어디를 찾느냐?"
"만델라 광장요."
자기도 거기로 가니 같이 가자며 안내를 했다.
나란히 걸으며 얘기를 나누니 이 아저씨도 여행을 많이 하는 분이었고 우리가 한국인인라고 하니 아주 반가워했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다면서 서울과 부산에 갔다 온 이야기를 신바람 나게 했다.
일본 중국 유럽 등의 여행에 대하여 얘기 나누니 통하는 데가 많았다.
몸이 가볍고 걸음도 빠르고 달랑달랑 거리며 톡톡 튀듯이 잘도 걷는다.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분이었다.
광장에 도착해서 우리의 사진을 찍어 줬는데 덩치와 키가 큰 만델라 동상의 다리 옆에 매미처럼 붙은 우리의 작은 모습을 찍어 놓았다.
얼마나 웃겼는지...
"오, 이게 아니고 이렇게..."
전신이 나오게 카메라 구도를 잡아줬다.
사진도 찍어주고 친절을 베풀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같이 한 컷을 찍었다.
"여행 잘하시기 바랍니다."
"땡큐 소 마치."
밝은 인사로 헤어져서 생각하니 크고 작은 불편함에 도움을 주는 분들을 여행하면서 많이 만났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선한 마음이 뭉게구름을 타고 몽실몽실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돌겠지?
만델라 광장의 분수와 조각품을 보면서 조금 가니 바로 앞에 샌튼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의 시설은 깨끗하지 않고 헌 책들이 많아 중고 서점 수준이다.
휴대폰 충전을 해 놓고 만델라에 관한 어린이 도서가 있어 펼쳤다.
대통령의 일생을 그림책으로 꾸며놓은 책이었다.
문장이 간단하고 얇은 책이어서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오려는데 젊은 대학생 세 명이 컴퓨터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하이, 이 부근에 가 볼만한 곳은 어디인가요?"
알려달라고 부탁하니 생기발랄함이 톡톡 튀었다.
"오, 유명 관광지. 잠깐만요."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더니 한참을 노트에 적더니 쭉 찢어주며 여기에 가 보라고 권했다.
글씨도 예쁘고 또록또록 빼곡하게 한 바닥을 적어놨다.
지도에 찍어 보니 모두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이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냥 나왔다.
대학생이 알려준 유명한 곳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산만하게 분산되었고 들쭉날쭉이었다.
위험하다는 곳을 다니기가 내키지 않아 시내에서만 머물기로 했다.
샌튼의 길거리에는 한낮에도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근사한 건물들만 쭉쭉 뻗었는데 다들 그 속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는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센츄럴공원이 근처에 있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약간 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원이니 사람들이 많겠지?'
용기를 내어 인적이 뜸한 길을 힐끔거리며 내려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뒤에 흑인 청년 한 명이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순간 긴장이 되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그 청년도 저 멀리서 서더니 길가 하단 턱에 걸쳐 앉는 것이었다.
우리는 소곤거리며
"저 놈이 강도 아냐???"
다시 공원 가는 길로 내려가며 동태를 살피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남아공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라고 해서 긴장되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도착한 공원은 노숙자와 허름한 옷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만 서너 명 보였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공원에 따라오려면 맨발로 뛰어도 못 따라 올 정도로 황량하고 썰렁하다.
아프리카의 무성한 초목들은 다 어디에 숨었는지?
산으로 치면 민둥산에 몇 나무들, 사람에 비하면 탈모 수준이다.
가꾸었다는 흔적도 없이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만 삐죽삐죽 나와 볼품이 없었다.
입구 쪽만 잠시 들여다 보고 바로 돌아 나와 반대편 인도로 건너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추운 아침 꼼짝 않다가 해가 중천에 뜨면 온화한 햇살을 받으며 나서는 차가운 겨울날의 한낮처럼 어깨를 펴고 지나가는 이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는 지금 여름이다.
다시 쇼핑센터 지하로 가서 피자를 한판 시켜서 점심으로 먹었다.
내가 선호하는 스파게티와 피자는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고 그 지역 요리의 색다름을 맛보고 싶기도 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맛이 좋아 빠지지 않는 메뉴다.
따끈할 때 먹으니 한 맛 더 있었다.
맛있게 먹고 벼리는 쇼핑센터 구경을, 나는 피자 가게 소파에서 다음 행선지 정보에 대한 검색과 우리나라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2시간 여 지난 후 벼리가 돌아와서 하는 말.
"샌튼몰은 쇼핑천국이에요."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값비싼 가게들만 들락거렸는데 대부분의 가게를 다 들어가서 샅샅이 보니 싸면서 좋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동일하게 크고 멋진 가게마다 고가, 중저가, 저가의 가격대로 구분되어 있으니 주머니 사정에 맞게 선택해서 쇼핑을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명품을 살 수도 있고 저렴한 구매도 가능하니 입맛대로다.
우리 호텔 직원들이 엄지를 세우며 추천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짐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다며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내일이면 짐바브웨를 가므로 남아있는 남아공 돈으로 가볍고 부피 적은 옷이라도...
막무가내, 초지일관이다.
그럼 맛있는 것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 마트에 가서 돈에 맞추어서 이것저것을 샀더니 한 보따리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돈과 먹거리를 맞추느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거의 근접하게 맞추었다.
시간이 많이 걸린 이 작업도 예사 일이 아니라 어렵구나.
밖을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차량 불빛이 이어지고 가로수와 빌딩을 밝히는 야경이 우뚝 솟은 도시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은 정신을 빼앗아 가려했다.
교통량이 많아 우버택시가 얼른 오지 않았다.
긴 차량 사이에 끼여 우리를 향해 오는 차가 멈춰서 확인하니 맞다고 했다.
어둡고 무질서한 차 속에 끼어 빨리 타려다 꺼림칙해서 다시 확인하니 아니었다.
"아닌데 왜 맞다고 하냐?"
"쏘리.
가버린다.
탔으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잠시 후 우리가 불렀던 우버가 와서 거듭 확인하고 탔다.
호텔로 향해 갈수록 불빛은 사그라들고 주변은 깜깜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잘 가고 있는지 계속 구글맵을 켜 놓고 확인하면서 갔다.
흑인들도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첫 이미지가 강하게 보여서 인지 경계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야간 운전을 얌전하게 하는 우버 기사는 호텔의 정문 앞에 정확하게 내려다 줬다.
"여기 맞죠?"
"오케이. 우리 호텔 맞아요."
철장 대문이 열리고 통과하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바이 바이"
"오, 땡큐 땡큐"
잘 가라는 인사말과 함께 차를 돌려 유유히 사라졌다.
세상은 믿을 만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당한 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는 몸을 사리고 더 조심하게 된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번화가에 보냈던 시간은 안전했고 화려했다.
아프리카에서 우버기사의 이미지가 급상승했다.
사람은 겉으로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또 다른 부작용이 따르겠지.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 같다.
서로 신뢰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 온 식품들을 펼치면서 깊어가는 남아공의 밤에 머문다.
침이 꼴깍~~
우버택시를 타고 샌튼으로~~
화장실 안내판이 손든 것은 처음 봄
꽃이 꽃과 함께
만델라 광장
내 가방이 무겁다고 들어줌
도서관에서
따라오던 괴 청년
프리토킹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