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별칭이 되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또 고3 수험생 가족이 오지 않았겠지?'
얼마 전 이사를 나간 가족은
고3 수험생이 있어
우리 집 아이들 세 명이 아주 힘들게 했었다
나도 나름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지만
아이들의 발소리는
아랫집 자녀를 힘들게 했다
우리는 매번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지만
남보다 못한 이웃이 되었다
이삿짐이 많은지 이사는 어둑한 저녁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카니발 차에는 히터가 틀어져 있고
아이들 목소리와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차 창문을 똑똑 두드리니
할머니께서 아이들과 진땀을 빼고 계셨다
나도 다자녀 가족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하는 게 힘든 걸 알기에
"어머니~ 날씨도 추운데, 아이들 데리고 2층으로 올라오세요.
제가 아이들 볶음밥 해놓았어요."
차에서 아이들이 내리는데
'어머나!'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이 집은 정말 다자녀였다
4살 큰 아이, 2살 세 쌍둥이들
우리 집은
5살 큰 아이, 3살 쌍둥이들
아이들 7명 저녁을 먹이고
함께 목욕도 시켰다
밤늦도록 이사가 끝나지 않아
아이들이 지쳐 잠이 들고
아랫집 부부는 지친 기색으로
미안함과 고마움 가득한 얼굴로
자정이 다 되어갈 때쯤 2층으로 올라왔다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고
다자녀의 힘듦을 위로하며
종종 자주 아이들을 재워놓고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나이도 한 두 살 차이인 우리
친해지기 시작하며 우리는
서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하기로 했다
직업으로 엮이지 않고
나이로도 엮이지 않고
서로 존칭을 하기에 적당한 호칭을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
고향댁으로 부르기로!!
포천댁 서울댁 제주댁 양산댁
우리의 관계는 1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언제 어디에서 만나도
그때 그대로의 느낌이다
아랫집 윗집으로 살며
함께한 시간도 많았고
힘들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았던 건
매일 반찬을 서로 반반씩 나눴다는 것!
나의 주방일이 아주 효율적으로 이뤄졌었다
7명의 아이들도 자기들이 서로 형제자매인 줄 알 정도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면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자리에서 일상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