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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un 17. 2022

반걸음 프로젝트 : 제 4, 5, 6강

2022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국제도서전을 다녀오고, 읽을 책이 참 많아서 여러 다방면의 책 후기를 올리는 중. 물론 다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파트만 콕 집어서 올려야겠다. 특히 이번 포스팅은 후반부에 나올 내가 현재 관심이 많은 도시재생과 로컬과 관련된 책이 많아서 무던히 보면서 뜻깊은 내용을 정리하기 좋았다.



제 4강. 좋은 세상으로의 균형을 위한 생각들

'자신'과 '타인'의 공유와 공감 적절성을 보여주는 대목이 짜릿하다.


#미래의피해자들은이겼다

#타인이라는가능성

#나자신을알라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정말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신과 다를 바가 없을 듯.

진심으로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정말 현생에 많을지 곱씹고 고민하면서 10분 동안 읽게 되었음.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정치적 동물의 길)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 중 하나는 타인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을 적절히 알기 위해서는 타인과 소중히 소통하는 방법을 길러야 한다고 보는데, 여기서 글쓴이는 정치적 악용에 의해 사람들이 권력의 소산물적인 요소로 등하할까봐 굉장히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한 예시로, 영화 DP에 나왔던 '헌병대장'의 역할에 잠시 주목하면 그렇다. 군대라는 특수한 '의무적' 소산의 젊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과연 이 짧지만 굵은 2년 동안 겪는 사회에서, 그들은 헌병대장의 목숨에 보장하고 자신들의 목숨에 대한 담보를 그 헌병대장에게 제공했던 취지는 어쩌면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적인 '우리'들에게는 또 하나의 괴리감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중요하게 엮이는 여러 사례를 차례로 본다면, 현실적(국가적인) 책임감과 자유롭고 싶은 인간적인 주체성 사이의 갈등의 곡선이 이루어진다.


-군대와 사회에서의 갈등, 소시민들의 현실 타파적 상승곡선 일대기를 그리는 법

-서울대 청소노동자여도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하는 국가적인 법 제도 안에서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법

-개인의 희생과 집단의 정체성 사이의 모순과 갈등


사실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에 덧붙여 철학적인 내용이 깃든 책인데 나에게는 어려운 부분 또한 많았다. 아마 글쓴이는 '국가'와 '개인'사이의 갈등과 소통을 '타인'과 '자신'의 관계로 비유한 게 아닐까 한다.


공감은 지능이다.

신경과학이 밝힌 더 나은 삶을 사는 기술.


요즈음 mbti 시대가 아니던가. 기업이나 사업, 심지어 영업 과정에서도 친분이 아니더라도 90프로 이상은 MBTI를 묻게 된다. 이는 통계적으로 증명된 하나의 과정도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비롯된다.


그 속에는 바로 '공감'이 분포되어 있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공감은 사람 사이의 도덕성과 이성, 그리고 감성 사이를 갈팔질팡하며 자신의 숨결로 돌이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공감적 지능과 지식적 이성 사이에는 무조건 중첩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핵심을 파고들어야 진정한 사람 관계가 완성된다고 본다.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다보면 공감을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심지어 표면적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진심을 담아 상대방을 대하는 행동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모순이 담긴 부분이며, 특히 사람 사이는 참으로 추상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핵심이 바로 이 감성적인 '공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공감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순수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하게 스스로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되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중에서_김승섭


PS.

한국 사회에서 범죄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난무하지만 진정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혹은 피의자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법적으로 제시된 가해자의 행동과, 피해자의 감성, 그리고 피의자는 이유가 과연 고스란히 현실에 반영되고 있을까?


이 책에서는 언어폭력, 행동 폭력, 심리적 폭력, 성추행과 성폭행, 섹슈얼 어썰트와 같은 예민한 질문 사이에서도 누군가의 암묵적인 커뮤니티가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서로 갑을 관계를 막론하고 현대의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코스프레를 깔끔하게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비판하고 있다. 학폭사건, 군대 폭력 사건, 회사 왕따 사건, 남녀갈등, 세대갈등 등 여러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사회에서 당신은 피해자인가, 아니면 가해자일까. 아니면 동조하고 방관하는 공범자이면서도 제3의 인물인가.


스켑틱_마이클 셔머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회의주의란 현대까지 이어진 만물 진리와 원칙, 원리를 곰곰이 생각하고 곱씹으며 비판을 얹혀놓는 방법이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애초에 이 진리가 과연 현생에서도 적용이 될지 의심하고 연구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방법까지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켑틱'은 현대를 살아가는 정보의 바다에 갇힌 사람들에게 강렬한 비판을 일깨워주고 있다.


PS.

"그래 이 말이 맞지. 이 분은 공인이니까."


"그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과학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해주었지."


"그래 수학적 지식이 많으면 이공계 계열 입사가 보장된다니까."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100프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관적인 일치 확률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동안 사람들은 그러한 통념을 믿어왔고 꾸준하게 그와 관련된 교육을 배워갔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서 점점 현실과 매칭이 되지 않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존재하며 심지어 학자들에 대한 의심까지 이어지는 결과로 도출된다.


여기서 당신들은 어떠한 관점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단순히 정보의 바닷속에 갇힌 어항 마냥, 관상용 물고기처럼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이 순간에 역행을 하고 싶은 고등 생명체가 되고 싶은가.

그 어느 순간 개입하기 싫은 회의론자가 되고 싶은가.


사실 정답은 모르겠다. 글쓴이는 모든 것을 'YES'로 치부하는 사회에 날카롭게 'NO'를 외치고 싶어 한다.


'알 권리'를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 권리는 우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쉬운 게 아니다. 적어도 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말이지.



말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새로운 말로 우리는 정말로 평등해질 수 있을까?


그런 언어를 디자인할 수 있을까?


한국말은 새로운 단어가 무척 많다. '어쩔티비'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과정에서 과연 문법적인 역동성과 말의 문맥의 상관관계가 있을지 언어학자는 새로운 분석에 몰두한다.


심지어 이러한 신조어들을 하나의 국어 체계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연구학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한다.


'한글은 쉽지만

한국말은 어렵다.'


나 역시 의미심장하게 생각하지만 그렇게 느낀다.


신조어에 대한 아름다움의 미적 가치가 마련된다면, 한국말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그건 본인들의 속 마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난 아직도 '어쩔티비', '킹받네.'에 대해 감미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한국어에 대한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해서 참 재미있다. 




제 5강.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에 덤벼보다.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전부가 아니기에 가능한 글들.


#자기역사를쓴다는것

#최소저항의법칙

#지혜롭게나이든다는것


유서를 쓰고 밥을 짓다_김민


죽음을 앞에 두고 진실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죽음을 뒤에 두고 살아보지 못할 삶은 없다.


'유서'란 단순히 죽음을 앞두고 쓰는 마지막 격언이자 조언, 삶의 지침서이다.

하지만 때로는 살아가면서 유서 쓸 일이 많을 것이다.


죽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이 많을 때마다 스스로 성찰하고자 유서를 쓴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발전시키듯이. 유서 또한 자신에게 알리는 마지막 조언이자 경고장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런 유서는 누구를 위해 작성되어야 할까.


자기 결정_페터 비에리


가장 중요한 점은 '행복'은 내가 '결정'한다.

일상의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감히 그것이 나를 위함이 아닐지라도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비평과 비난 가득한 세상에 살더라도, 행복과 낙관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지라도 결국 그 결과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개인주의를 권하다_이진우

개인주의는 나쁜 게 아니다.

첫째, 개인주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다.

둘째, 나를 알아가고 배워나가는 방법이다.

셋째, 다만 욕심과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피해가 생기면 이기주의가 된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모두 조직 사회에 살고 있다. 학교라는 굴레, 회사라는 굴레, 사업이라는 굴레, 그리고 가족이라는 거대한 굴레 속에서 정녕 나를 위해 되돌아보는 사람이 많을까. 자조적으로 스스로에게 무덤하게 이야기를 해본다. 




제 6강. 새로운 가족 (더군다나 여정, 여행)


#이상한정상가족

#아주친밀한폭력

#외롭지않을권리


자, 이제부터 로컬과 관련된 여행 분위기를 조성한다.

내가 가장 뜻깊었던 파트라서 곱씹으며 작성해야겠다 ._.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_김지선

여행, 단순히 떠나는 것만으로 말고. 곳곳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기록에 남겨놓는다.

책을 잠시나마 읽고 미래에 대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다.


<로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러한 사유를 현실 여정에 반영하는 리스트>

              나는 누구를 위해 여정을 떠나는가.            

              동물들이 나를 반겨준다는 것.            

              사람들이 머문 자리에 아름다움이란

              순례길을 왜 가는가

              걸어서 무엇을 얻으려는가.            

              여행은 그래서 여정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감성 짙은 걸음걸이에 무엇이 필요한가.            

              의미 부여하는 방법            

              여행 자서전을 쓴다는 것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_로먼 마스, 커트 콜스테트


평상시 마주치는 다양한 길들이 있다. 그런 골목길과 도시 사이에 있는 현대인들의 감성을 그려내본다.


어느 한적한 골목길부터 시작하여 메트로 상권,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공원까지 소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여기서 인비저블(Invisible = 보이지 않는)한 다양한 요소가 참으로 많다.


우리는 이 도시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도시인에 대한 관점은 정말 무엇이 있을지 말이다.


미쳐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도시 구조를 파악해 보고 '사람답게 사는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도시 행정가와 로컬 전문가들이 나섰다.


그분들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이 필요하다는 관점.


내가 서촌 마을 투어를 하면서 동시에 느꼈던 부분인데 책 내용 중 가장 곱씹었던 내용들이 참으로 많았고 덕분에 나의 골목투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대목이 많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의식주 해결로만) 등한시하지만 사실은 그 전부가 아니었다. 연구진들은 왜 사람들이 굳이 '도시'에서 살아가려고 하는지 더 멀리 관조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이런저런 특색 깊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부분을 캐치하였다.



-도시란 단순히 의식주 해결이 아니라 삶의 연속성이다.            

-전통성이 깃든 마을과 골목을 걷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기           

-그 도시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숙지하기.

-골목투어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분석하다.

-지역적 차별화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조금 더 읽기 쉬운, 본질적인 도시 인문학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겉표지는 아래와 같다.


The Address Book (주소 이야기)_디어드라 마스크


(제일 좋아하는 책이었다 ! 로컬에 권력이 투여되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의 주 내용은 (글쓴이가 하고 싶은 주제와 제재는) 주소가 가지는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나는 강서구 마곡동에 사는데 '번지'와 '주소'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마곡 oo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단순히 결과적인 요소에 치부한 비인간적인 증명 과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여기서 주소가 가지는 의미는 '비인간적 과정'을 '효율성'의 측면으로 보는 방법이다.


'저는 원래 OO 마을에 삽니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OO입니다."

"OO구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희 동네에 점수를 매깁니다."

(일종의 우리 동네를 평가한다는 척도였다. 수치적으로.)


그러니까 단순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측면을 수치적인 표지로 부여하여 '인간'의 정체성과 '마을'의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마치 교소도 OO번지 OO동에 산다는 느낌과 같다.


난 이 책을 곱씹으면서 읽어보았을 때 참 많은 부분을 느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구한말 시절 (1890년대 이후) 일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실현된 부군현 통합 제도(조선 8도 행정구역을 일본화, 서구화시킨 것)에 의해 변질된 느낌이랄까. 그 마을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일제는 당연히 목격했을 것이고, 그 근처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 또한 심기가 불편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OO 마을.. 아니 OO번지 OO동에 삽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서구화되는 과정, 어쩌면 문명으로 다가가는 발전이 맞다만, 마을, 동네라는 수식이 따로 없어지고 그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만 변질되는 과정은 로컬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심히 마음이 아프다.


서촌 또한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단순히 "서촌 마을에 삽니다."라고 하기에는 예전처럼 정이 있는 말투가 아닌 시대상이다.

점점 사람들 인식에서는 이런 느낌이다.


"아, 그 있잖아. OO카페와 OOO전시회가 있는 곳!"


이런 감성이 참으로 싫다. 점점 무더져간다. 마을의 정체성 의미가 퇴색되어간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곱씹었다.


주소는 위 세대의 권력이자, 기득권층의 권력 강화 산물임이 분명하다.

정작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며 평범하게 아주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텐데 말이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갓혁의일기 #도서전후기 #독서일기 #서울국제도서전 #코엑스전시회 #SIBF #2022서울국제도서전 #소설가 #국제전시회후기 #서울국제도서전후기 #주소이야기 #도시의보이지않는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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