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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un 21. 2022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고찰과 사유를 기록

2022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서촌 골목투어 프로젝트와 관련한 책을 읽고 이 글에 저의 생각을 옮겨봅니다.>


참고로 브런치에 기재한 이 글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록이다.

알다가도 모르게 내가 잊힌, 고스란히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글들의 흔적을 사유하러 떠나보자.


나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서촌 마을과 사람>에 대한 글을 끄적여 읽어보았다. 스탠딩 한 채로 30분 동안 아주 조용히, 그리고 사색하면서.




제 7강. 사는 공간 이야기


#무엇이도시의얼굴을만드는가

#누구도홀로외롭게병들지않도록

#독립하고싶지만고립되긴싫어


이 책들은 내가 현재 로컬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서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던 책 내용들이다. 내가 보는 서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함께 파헤쳐 보자.



로컬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하노라면

그 끝에는 결국 사람으로 끝나고

한편으로는 장소로 마무리됩니다.


<서촌 마을에서 나의 추억을 읊으며>



글쓴이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서촌 마을을 바라보며, 그리고 재개발되는 과정과 정부의 무분별한 도시정비 사업을 10년간 바라보면서 자신의 관점을 글에 녹여냈다.


특히 어릴 적 글쓴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통인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재미의 풍경, 야채 트럭을 운영하시는 아저씨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모습까지 순수했던 장면을 글로 표현하니 나에게 묵직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선사하였다.


거스름돈은 항상 챙겨주셨던, 부르는 값에 따라 야채 시세가 달라졌던 옛정이 담겨있던, 주머니에서 꺼내는 지폐의 냄새가 파릇파릇할 때, 디카의 순수한 흔적을 맛볼 수 있었던 장소와 골목을 사진 찍어가며, 그렇게 글쓴이는 자신의 어렴풋한 공간이 있던 이 서촌이라는 동네의 감성을 글에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ps.


현재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다.


빨간 벽돌과 좁아터진 골목길, 어디선가 냄새나는 해산물 냄새와 곳곳에 모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소중한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아직 그때의 감성을 잃지 않았던 당신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 동네로 돌아간다면 어떤 풍경을 만끽하고 싶겠는가.


난 아직도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강서구의 한적한 화곡동 구도로 사거리에서 말이야. 일요일 오후 2시만 되면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담백하고 묵직한 소리가 그립다.


"야채 팝니다~ 야채 팝니다~ 수박 오천 원, 애호박 천 원 팝니다~ 비닐봉지도 팝니다~"


이제는 들리지 못할 그때의 추억은 서촌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윤동주 하숙터, 옛 체부동 교회, 이상의 집, 대오서점, 통인시장, 박노수 미술관, 옥인길


<새문안로>, <옥인길>


참으로 내가 좋아하는 골목이자 소중한 문화재가 깃든 장소이다.

지금도 그렇다.


계절마다 보는 서촌 풍경은 제각각 감성이 돋기 때문이다.


ps.

인왕산 자락에서 청계광장까지 가는 골목, 이 길을 새문안로라고 한다.


새문안로란 지명은 예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대문(지금은 사라진, 서울 박물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이 동네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지금의 자영업자, 수공업자, 공장 직원 등 나름 전문적으로 국가에 수익적인 이바지를 했던 분들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 재개발로 인해 서대문이 헐어지고 곳곳에 마을 부군면 통폐합(지금의 도시 서양화 제도)이 이루어지면서 서촌 마을은 서서히 서양화되는 건축 재개편을 맞이하게 된다.


곳곳에 누비다 보면 곳곳에 풍길 수 있는 감성 골목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일식 가옥인 적산가옥(적군의 집, 우리로 따지면 일제)이 서촌 마을에 많은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서촌은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슬로 라이프의 환상이 복고풍 상권으로 현실화된 곳이다.'


<서촌 마을에 살았습니다.> 중에서


말이 굉장히 달콤했던 서촌 마을의 옛 모습이었다만, 사실은 무분별한 관광지가 될까봐 두려웠던 이 글쓴이의 마음을 대변해본다.


대중매체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마을의 정체성은 서서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곳곳에 보이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쓰러져가는 옛 체부동 교회, 그리고 예술인들의 아지트와 전시회가 그나마 "우리 서촌 마을에 있었습니다."라는 의미를 대변한다.


오늘날 서촌을 걷노라면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을 수 없다.


서울시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정책이 효과가 나기 시작한 걸까? 여전히 꽃집과 세탁소는 보이지 않고 대신 문을 닫는 가게와 임대인을 기다리는 빈 점포가 눈에 띄는 것을 봐서는 아직도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중인 것 같다.


<글쓴이가 현 서촌을 보고 느낀 점>


2012년 여름(7월) 수성동 계곡 복원공사가 완료된 것도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_한겨레 2014년 11월 24일 자

솔직히 내심 곱씹은 흔적이 보였던 글이었다.

나의 마음을 탁 치는 느낌이랄까.


글쓴이는 '나 같은 사람들이 서촌에 몰려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었다.'라고 콕 집어서 나를 언급하는 듯했다.


아니, 애초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하소연을 하는 듯했다.


그래서 죄송할 따름이다. 오히려 관광지가 아니어서 더 아름다웠던 마을이었는데, 점점 대형 프랜차이즈와 문어발 다리 대기업의 만행으로 속속 원주민들이 떠나는 느낌이다. 그들의 노고를 누가, 과연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서촌 마을은 Y자로 된 골목이 많다. 그 말인즉슨, 인위적인 상권을 위한 동네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살았을 흔적이 이 자리에 대변하고 있다는 뜻인데 그 주변 길모퉁이 건축물들은 깊은 고민에 의한 결과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지금도 여전히 옥인길 자락을 거닐다 보면 이런 구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광객의 유입으로 인해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전시회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유입이 많아지니 사적 공간 개입이 점점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서촌적인, 너무나 서촌적인>


한때 유치하기 짝이 없던 촌스러움의 대명사인 '빨간 벽돌'이 다시 재구성되고 있다.


붉은 벽돌에 대한 재평가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이렇게 주목받은 이유는 단 하나. 미래유산으로 지정됨에 있어서 서촌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었던 점이다.


우리 동네의 흔하디 흔한 교회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은 다 알 터이니 그 마을의 정체성을 알고 싶다면 무조건 빨간 벽돌이 시야 앞에 무자비하게 보이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골목길을 누벼봐.


거기가 그 마을의 정체성이야.



<이상의 집>


한때 구한말 조선의 예술가이자 문학가로 알려진 '이상'

그분의 집은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이토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걸까.


난 최근에 안도 다다오에 대한 글을 보았다.

"건축가는 복서와 같다. 순수하고 고독한 싸움"


기하학적인 평가로 대중들의 시선이 미처 널뛰지 못했던 당시 옛 모습을 기억하면서, 한편으로는 복서 또한 힘든 나날의 연속을 겪으면서 끝까지 연습 삼아 결과로 좋아지는 과정까지 이 모든 게 다 예술가에 투영되었던 것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를 통해 이상이 추구하고자 했던 작품 세계에 대해 '조각'을 하나의 '건축'으로 재배치하고자 했던 노력이 보인다.


남들이 뚜렷이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하나의 진리처럼 말이야.


마지막 줄이 굉장히 와닿았다.

'언어에 의한 구분이 가끔은 깊은 이해를 방해할 때도 있다.'



<도시형 한옥에 서다>


우리 어머님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고즈넉한 한옥 집에 살고 싶다는 말이 귀청 떨어지도록 이야기하신다. 아버지 또한 동조하셨다. 하지만 서울에 한옥 마을은 10억 아파트도 저리 가라인데 그게 가능할까? 그와 맞물려 이 글을 읽고 내 마음이 도드라진다.


서울시의 주택난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근대화, 도시화와 맞물려 주택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에 따라 1930년대부터 낮은 비용으로 대량 공급하기 위한 새로운 주택 양식, 도시형 한옥이 등장했다.

오늘날 서촌에 남아 있는 대다수 한옥은 그 당시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ps.

얼마나 고풍스러운지 이도 저도 모르고 가면 그저 하나의 한옥으로만 치부되더라.


한옥 러블러들은 알 것이다. 하나의 마을에 대부분 진귀한 장관으로 포장된 건축물보다 순수한 아름다움이 깃든 집이 더 와닿다는 것을 말이야.


결국에는 고풍스러움의 집이 곧 정체성임을 알게 되었다. 그게 서촌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동자동 사람들>


동자동은 현재 서울역 11번, 12번 출구 옆에 있는 행정동이다. 최근에 다큐멘터리 <동자동, 그리고 쪽방촌>를 시청하였다. 어디 허름해 쓰러져가는 자그마한 집에서 기초생활수급자분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사연을 읽으면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했던 의지와 열정과 다르게 사기와 연루된 자본주의의 이면에 쓰라려 이 지역으로 이주한 셈이었다. 이주라기도 뭐 하다. 그저 정부의 기초 지원하에 이들의 삶은 이 자리에 투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10,11번 출구 인근


동자동 골목, 로드뷰 (2018.4)


쪽방촌이라고 하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그마한 집을 의미한다. 그들이 어떠한 사연으로 이곳에 모여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이 갈구하고 필요한 점은 바로 정부의 '도시 공공정책'이다.


최근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이 골목을 전면 투자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윤석열 정권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길 터이니 아마 지대와 땅값이 상승하면서 이 쪽방촌에 있을 사람들도 쫓겨날 여지가 보였던 모양이다. 거기에 맞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까.


어쨌든, 동자동 사람들의 의견은 공통적으로 하나였다.

"제발 이 지역을 하나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주세요."



<착취 도시, 서울>_이혜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 책 내용은 위에 동자동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장소는 '창신동'이다.

글쓴이님 또한 미싱 공장으로 유명한 창신동으로 서울의 이면을 공개한다.


날같이 선 그녀의 말을 듣노라면 서울이라는 이미지는 그렇게 썩 좋지가 않다.

외면보다 내면으로 감동 주의가 만연했던 곳, 이제는 그 테두리 밖을 뜯어볼 때가 되었다.



<창신동 사람들> 중에서


보일러조차 들어오지 않는 낡은 방들로 매달 200만 원을 벌면서도, 단돈 1만 원에 20년 동안 알아왔다던, 친구 같은 그의 가난과 사생활을 전시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시스템조차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자본을 가진 자 혹은 연결을 가진 자(중개인)가 응당 받아내는 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이 세상은 가지지 못한 자는 계속해서 갉아 먹히고, 가진 자는 계속 쌓는, 착취로 굴러가는 세상임을 새삼 깨달았다.


ps.

응당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시스템 안에서도 서로 돌려 먹히며 까이고 계급투쟁을 하는 사람들, 내부 속에서도 첩자가 있었고 자본주의에 비참한 맛을 본 후 본격 돌아선 그들.


잘못은 아니었다. 사회와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쩌면 창신동 사람들은 다 그렇게 섞이고 섞인 존재가 아닐까 한다. 한편으로 힘들게 부단히 아프면서까지도.


2019년 5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골목의 풍경


현재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창신동의 옛 쪽방촌과 상권들



<벗어날 수 없는 쪽방의 굴레>


창신동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빈곤 비즈니스, 빈곤층을 대상으로 벗어나게 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빈곤층을 고착화시키는 산업.

가뜩이나 돈 없는 사람들 돈이나 착취하는 불로소득자에 대한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ps.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특별한 비극'이 없는 이상 외부인이 찾지 않는 도심의 '갈라파고스'처럼 비유했다.


여기서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미지의 섬이다. 즉, 서울 안에 있으면서도 특이하게 사람들이 모르는 미지의 섬으로 극단적으로 비유했던 것이다.



<로컬 지향의 시대>_마쓰나가 게이코


도시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동네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여행에서 비롯된 감성도 좋지만, 남들이 미쳐 알지 음지 로컬에 대해 설명한다.


음지에서 비롯된 장소는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잠시 머물러있는 것이다.


<일본 로컬에서 발견한 감성>


오사카와 고베, 교토 등 일본의 전통성이 깃든 장소로 이동해 본다.

연구진들은 도시를 하나의 생명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탄생기부터 시작하여 성장기, 중장기, 노후기, 사망기에 이른다.

집의 탄생과 장소의 재탄생은 여기서 비롯된다. 하나의 뫼비우스 띠를 연상케하는 그래프마저도 감미로웠다.


로컬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욱이 바쁘게 움직인다.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두 다리로 힘차게 미래로 달려간다. 그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인식은 그 동네와 함께해간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 간다. 아니면 발전할 수도 있겠지.


나의 옛 인연은 여기에 있다. 이 동네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없다. 벗어날 수 없다면 인연이기 때문이다.


나의 옛 감성이 깃든 장소는 어디일까.


고심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순수했고 감미로웠고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그곳이 바로 로컬이다.



<마을의 진화>_간다 세이지


간다 세이지라는 글쓴이가 '가미야마'라는 인구 5000명 정도 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도시 재생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사업을 구체적으로 에피소드화 시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젊은 청년들이 이 동네에 와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재생시킬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데 기존의 정부 주도하의 '하향식' 정책이 아닌, 민간 주도와 시민 단체, 그리고 도시 재생을 꿈꾸는 시민 전문가들이 합세한 '상향식' 정책이 이루어진 셈이다. 난 이 책을 잠깐 읽어보았을 때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에 대한 동기부여를 듬뿍 받아 갔다.


특히 마을 공무원들이 자기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마을을 살리려는 모습은 인위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의 반성 기미를 남겨주었다.


새로운 도전과 프로젝트 과정에서 서로 화합이 안되어 싸우는 청년 전문가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기획력은 많지만 실천력이 부족한 우리를 대변했다.


하여금 마을과 관련된 로컬 공부를 배우고 싶다면 꼭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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