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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ul 02. 2022

<궁중문화축전> 경복궁 스태프 안내요원 후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처마 밑 비가 한 방울 떨어지는 경복궁 풍경이 연상되더랍니다. 불과 저번 달 5월에 다녀온 경복궁 사진을 다시 꺼내봅니다. 당시 궁중문화축전이라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궁중 축제가 열렸는데요. 당시 인파도 많았고, 한참 거리두기 해제할 당시라 관광객들의 유입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5월 주말 이틀간 경복궁 스태프 하면서 인솔자 역할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부단체에서 주관하는 홈페이지에서 아르바이트 공고문이 내려오자마자 바로 지원하게 되었고 가까스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전에 경복궁 스태프를 해보았던 저는 당시 기분이 상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5월 21일 ~ 22일 이렇게 진행했던 시점이었고 날씨는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분위기였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업체 스태프 직원분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제 제가 경복궁 스태프 직원을 했던 이야기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흥례문 앞에서 관광객들을 인도하고 안내했습니다. 좌, 우 구분하여 스태프가 각각 두 명으로 배치되었고, 문화재청 직원분도 한 명 계십니다.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하여 인근 실습교육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처음에 현장 인력 감독관님과 문화재청 담당 직원분들이 계셔서 현장 안내 업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교대조를 편성했습니다.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로 나누어집니다. 보통 군대 위병소 근무를 연상하면 됩니다. 1시간 30분의 근무보다 30분 더 진행하면 2시간이 되죠? 그 2시간을 3번씩 교대하여 진행합니다. 제가 맡은 장소는 흥례문이며, 저 포함 앞 전각 양옆에 스태프를 두 명씩 배치받습니다. 물론 저는 오른쪽 전각 옆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은 왼쪽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관리인으로 문화재청 직원분도 함께 근무합니다.


당시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답니다. 그래서 청바지에 맨투맨을 입고 온 저는 살짝 후회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웃음꽃이 만발한 어린 학생들 패키지 투어팀과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땀 범벅이 되었지만 얼굴은 찌푸리면 안 됩니다. 스태프도 엄연히 사람들에게 무형의 기쁨을 선사해 주는 서비스직이랍니다. 직종과 관계없는 모든 서비스직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어린 친구들에게 인사부터 건넵니다. 정동에 있는 예원학교에서 놀러 왔다고 합니다. 예원학교면 예술 학교로 유명한 곳입니다. 문득 고종이 걷던 역사적인 장소인 덕수궁이 연상됐습니다. 그들과 자연스레 덕수궁과 관련한 이야기를 10분 동안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소명과 가치관이 올바르게 깃들었는지 잠깐 테스트하는 시간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역사를 좋아합니다. 아니 무척 좋아합니다. 지금은 정치학, 외교학, 세계사학에 대해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어린 친구들은 이제 곧 6월 모의고사를 볼 예정일텐데, 아니면 예원학교는 예술고라 모의고사를 진행하지 않을까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역사적 지식으로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부여했다면 그만한 성취감이 또 있었을까요? 나름 기분이 좋아졌고 인솔자가 예원 학생 친구들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향합니다. 그 뒷모습마저도 감미로웠습니다. 이 경복궁에서는 모든게 신선하게 좋았습니다.


30분 정도 멍하니 근정전을 응시하다 보니 시간이 꽤 빠르게 지나감을 느꼈습니다. 제발 이렇게만 시간이 가길 기대했지만 30분이 지나자 여러 변수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보통 관광객들은 인포메이션에서 안내문을 받고 흥례문까지 입장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 단체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많았답니다. 저 멀리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Hey sir, sir"


이 걸쭉한 어느 중년 외국인의 목소리가 귀청 떨어지게 들리더랍니다. 한 3번 불렀나. 이윽고 화가 났는지 제 앞까지 당당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스스로 뭘 잘못했나 이 생각이 먼저 들더랍니다. 더군다나 부끄러움은 덤이었습니다. 당시 외국인들이 다가올 줄은 몰랐으며, 심지어 회화까지 해야 할 상황까지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만국 공통 바디랭기지가 통하는 엄연한 현대 사회라고는 하지만 영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생각은 여전히 만무했습니다. 전 당연히 바디랭기지로 이 외국인의 니즈를 파악하고 해결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니더랍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입만 열면 된다. 적어도 쫄지말고 자신감 있게 어법이 틀려도 입을 열어보자.


당시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자 외국어 공부에 대한 체득이 점차 떨어지니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떨어지고, 더욱이 감이 잡히지 않아서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과 1년 전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줌으로 다양한 펜팔 팸을 만들고 가끔씩 회화 공부를 진행하였고 그나마 현재 실용회화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만들었답니다.


이때다 싶어서 경복궁에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다양한 안내를 진행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회화 수준만 주야장천 남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느꼈던 생각은 굳이 내가 회화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고, 이윽고 바로 구글을 꺼내 번역기를 돌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세계화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대처 빠른 상황에서 외국인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며 저에게 초콜릿과 일종의 팁을 제공해 주고 훌훌 여정을 찾아 떠났습니다. 인센티브 개념으로 받은 팁은 저에게 있어서 이 아르바이트라는 직업에도 큰 동기부여를 작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관광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안내 스태프라는 직업은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모를 때 당당히 이야기를 해주고, 심지어 그들에게 경복궁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잠시나마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 큰 성취감을 느끼도록 자극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단지 그들의 첫 이미지가 이 광화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분명하겠지만, 그들은 저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더 좋게 느낄 것이고, 더욱이 한국을 브랜딩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홀로 오신 여러 관광객들도 보입니다. 그들은 디카와 DSLR, 삼각대를 가방에 싸매고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순간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옛 가이드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군요. 최대한 다리까지 나오도록 길게 찍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화면이 아래로 향하게 하면 끝납니다. 3번 연속 촬영을 하니 매우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에게 명함을 하나 건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일하는 기자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예전에 문화체육관광부 기자단으로 일하고 싶었고 여러 이력서를 넣었지만 광탈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눈을 돌렸던 곳이 그나마 유사한 서울문화재단 기자단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기자단으로 활약하고 싶어서 정말 여러모로 제가 작업했던 제주도 아카이빙과 국내 여행 사진을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는 했지만 다른 직업에 눈을 돌리게 되어 아쉽게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그 꿈은 이제 깨져버렸고 누군가에게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기자단을 대신해 주시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잠시나마 동질감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겨 질문을 걸어봅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기자단으로 서울에서 예술 하시는 분들의 작업물과 박람회, 전시회를 찾아가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업을 삼습니다."


"우와... 제가 진짜 딱 해보고 싶은 업무 중에 하나였습니다. 경복궁도 그런 일로 오신 걸까요?"


"뭐.. 그렇죠. 오늘 궁전문화축전이 있다고 해서 오늘까지 마감이라 겨우겨우 왔거든요. 역시 마감에 치이는 일이라 참 그게 고달프네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저도 순간 모르게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단, 스태프 이 두 직업의 공통점은 마감에 치이고 삽니다. 정확히 마감일 11시 59분까지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에 사로잡혀 삽니다. 어쩔 수 없는 프리랜서의 인생.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직업이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 발짝 더 멀어지는 그 기자분의 뒷모습을 보며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짓는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마 아쉬워서일까요, 아니면 당시 하고 싶었던 기자단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제 마음이었을까요.



중간에 문화해설가님들이 보입니다. 멤버 10명을 꾸리고 각자 편안한 장소에서 이 경복궁을 친절하게 설명하시더랍니다. 전 옆에 바로 바짝 붙어있는 해설가님의 설명을 의도치 않게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따분했지요. 교대까지 30분 남은 시점에서 그나마 역사기행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말입니다. 경복궁이 실제로 지어진 일자와 이방원이 왜 형제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는지, 이성계는 왜 그렇게 이방원을 못마땅해 하였고, 정몽주와 정도전의 사이는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국호명을 조선으로 정한 이유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한 이유는 무엇일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방원은 사실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 이성계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형제들을 죽였다고 하네요. 이미 알고는 있었다만 다른 이유가 있을 줄 알았거든요. 사실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오은영 박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즉 가족 관계도 여전히 해결 못하는 변수가 많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다 이유가 있나봅니다. 이성계 또한 아들 이방원에 대한 소홀함과 무관심이 컸기에 그런 왕자의 난이 발발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자그마한 비석은 품계석이라고 합니다. 문인, 무인으로 나누어 각 계급에 맞도록 나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 시간이 아니므로 저는 그저 들었던 내용만 기록해 봅니다. 그렇게 2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10분이 남은 상황에서 다른 스태프분이 오셔서 인수인계 과정을 거치고 저는 1시간 30분이 남은 시점에서 경복궁 곳곳을 둘러봅니다.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유가 뭐였을까요? 어차피 또 와서 교대 근무를 한 번 더 해야 합니다만...



시간이 남아 돌아서 잠시 목에 걸었던 스태프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고 관광객 놀이를 해봅니다. 날씨가 갑자기 무척 더워졌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가자 함바식당 같은 곳에 가서 도시락을 까먹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경복궁 직원들을 위한 노상 카페 트럭을 운영하더랍니다. 당연히 저 또한 무료로 이용 가능하여 커피를 3잔 들이켜고 나왔습니다. 배도 부르니 천천히 거닐어 보았습니다. 아까 같은 업무 교육을 받았던 스태프분들과 눈인사를 하며 동행합니다. 이분들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나 봅니다.


경복궁에서 어떠한 사유로 일을 하게 되었는지, 평소에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는지 생뚱맞은 이야기를 넌지시 던져봅니다. 의외로 다들 말이 통합니다. 다들 엔프피인가요? 아니면 인프피인가요? 오래간만에 사람다운 이야기를 해봅니다. 코로나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그 결과를 대변해 주더랍니다. 이 경복궁 자리는 저와 그리고 이 스태프 동지들에게 있어서도 꽤 큰 재미를 선사해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수문장 교대식. 2시에 진행함.


오후 2시가 되어서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수문장 교대식이 이어집니다. 수문장이란 궁궐 대문을 지키는 관리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종묘사직과 관련된 조선의 거대한 행사입니다. 유교 문화의 밑거름이 바로 이 수문장 교대의식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갑자기 문화재청 사람들과 인포메이션에 있던 스태프분들이 달려 나옵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진입금지 팻말을 ㄷ자로 연결시켜놓더니 곧 있으면 수문장 교대 의식이 있을 예정이니 다들 와서 구경하라고 합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이 거대한 의식을 보기 위해 표지 팻말 가까이 다가옵니다. 인근에 있던 외국인 가족들도 몰려옵니다. 그리고 저에게 조선의 거대 의식이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Just see, because very exciting." 이 말만 남긴 채 웃음만 머금습니다.


이내 외국인 또한 제 말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아하'를 외치시며 바로 거대한 북이 쿵쿵거리는 장소로 다들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교대의식의 순간. 문인과 무인, 심지어 각 종품에 걸맞은 색깔별 의복을 착용한 채 거닐어 옵니다. 그 광경은 흡사 동양판 에버랜드 문라이트 매직같습니다... 밤이었으면 광화문 전광에 모든 불빛이 화사롭게 켜지면서 이러한 분위기 연출된다면 또 다른 구경 할 재미를 선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도 모르게 동영상을 찍기 시작합니다. 그 옆에 있던 외국인도 찍어달라고 하셔서 가족사진을 여러 컷 찍어드립니다. 그리고 고맙다며 팁을 주셨습니다. 역시 외국인들의 팁 문화는 여기서도 통하나 봅니다. 저도 모르게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20분 정도 수문장 의식이 끝나자 또다시 근무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되었고 이 마음으로 조금 더 활기차게 진행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오후 3시 이후로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몰려옵니다. 하지만 1시간 뒤에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근에 서촌 마을도 있고 바로 끝나자마자 나름 유명한 로컬 재즈 바를 찾으러 갈 예정이거든요. 걸어가면 1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 시간까지 참기로 합니다. 사람들은 아까보다 2배로 더 몰려옵니다. 아니 5배 이상 더 몰려왔습니다. 이제서야 경복궁이 가지는 매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관광지는 역시 사람이 많을수록 더 재미있는 느낌인가 봅니다. 사실 일할 때에는 관광지가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일하면 오히려 심심해서 피곤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근무가 끝나면 오후 4시 30분입니다. 인근에 계신 문화재청 직원분이 저를 부릅니다. 그리고 근로계약서를 다시 확인시켜주며 다음 주에 일당이 지급된다고 재차 또 설명하십니다. 혹시라도 까먹지 말라며 자신의 명함까지 건네주십니다. 신뢰도가 팍 올라갑니다. 역시 문화재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부 단체 중에서도 나름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옆 동네 문체부는 그렇지 않아 !



끝나자마자 서촌으로 꺾이는 방면으로 이동합니다. 경복궁 내부는 상당히 넓습니다. 그래서 뚜벅이로도 아무리 빨리 걸어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여유롭게 걷다 보니 30분이 소요되었고, 청와대가 개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꽤 오래이지만 입구 정도는 들리기로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적이는 것은 물론이고 촬영 장비를 들고 있는 유튜버들도 보입니다. 의외로 중년 단체들이 많이 보입니다. 청와대 입구에 있는 인포메이션에 잠시 들립니다.


"청와대 가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나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늦었으니까 실시간으로 계속 확인해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청와대 예약 또한 경쟁률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5월 29일이 제 생일이라 그때 가족이랑 같이 가려고 미리 일주일 전에 예약했지만 추첨이라는 점에 한정되어 있어서 저는 결코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나중에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에 3번 이상 예약했지만 역시나 떨어졌습니다. 이것 또한 정부가 우려했던 하나의 단점이었을까요? 하하하.... (조만간 오버 투어리즘이 예상됩니다..)


청와대 입구를 찍고 서촌 방향으로 꺾으면 궁중문화축전 야외 행사가 이어집니다. 궁중 의복을 화려하게 입고 워킹을 선사합니다. 일종의 동양판 밀라노를 보는 듯했습니다. 왠지 자라 하나 받아 가야 할 느낌이었습니다. 각종 미디어 방송국과 유튜버들도 총집합하여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은 이제 싫었습니다. 10분을 더 걷다 보니 이내 서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왜인지 서촌 마을은 편안합니다. 아무래도 5월 기점으로 경복궁 축제와 청와대 개방으로 인해서 서촌 마을 또한 관광객 유입이 많았을 거라 예상됩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의미이고, 반대로 오버 투어리즘으로 변질될까 봐 우려됩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 서촌에 있는 자영업체, 소상공인들은 이 축제에 대해서 무척 기뻐하고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오히려 그들은 문화재청의 이 축제 정책에 대해 감사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은 이 내용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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