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 친구들은 신월동으로 이사 갔다. 이미 신혼부부가 되어 SH가 제공해준 아파트에 당첨이 되어 오순도순 잘 지내고 있는지 어엿 3년이 지났다. 최근 한 녀석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보험 관련 종사업자에 몸을 담은 꽤 연식이 있는 친구인데 나보고 간만에 연락했으니 한번 동창회에 놀러오라는 것이 아니던가. 글쎄- 중학생 친구들이 곧 고딩 친구들이고 내 동네 친구들이지만 대학생 시절 대외활동을 하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동네 친구들이랑 친분 유지를 하는게 참으로 어려웠던 나였다. 결혼식이 잡혔으니 한번 만나서 같이 놀자는 친구녀석, 나야 가고 싶지. 그 동창회라는 명분으로 결혼식 청첩장 돌릴게 뻔하겠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자리 안 가면 나도 뭔가 죄인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말이야.
시간이 흘러 대학교 자퇴를 하고 사업을 하다가 곧 망해 어느 지인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영업일이 꽤나 잘 된 모양이다. 뺀질뺀질해서 사람들 마인드를 잘 읽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던 그 녀석이었는데 사람은 점차 성숙해지고 고통과 고뇌 시간을 가지면서 남다른 인격을 또 모방하고 완성해간다는데, 그래 그게 맞는 말인 듯하네. 아무쪼록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완성하고 미래 지향적인 삶을 일군다는 것은 정말 멋진 모습이야. 곧 성장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찾는 것이기도 분명하고 말이야.
또 다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여행사에 종사했던 찐 관광업의 모태였다. 무려 7년 동안 그 3부 리그 여행사에 들어서면서 신입 때부터 야근을 서슴지 않게 하여 결국 대리까지 달았던 친구. 얘도 대학교를 중도 자퇴했다. 그 이유는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사업의 일부분인 대학이란 법적 테두리에 옭아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일찍이 그 친구 따라 조금 더 밖을 나가고 싶었는데, 우연치 않게 대외활동에서 한번 마주치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될지 말자는 신념을 그 친구로부터 배웠던게 당연하다.
한 번은 홍대 삼거리 포차에서 만나 인생 굴곡 전환점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던 그 녀석, 코로나 타격 후 주식은 물론이오, 인력 감축으로 자신이 곧 구조조정이라는 개 같은 법에 걸려 나가리 될 것 같다는 소식을 급히 들었고, 어쩌면 나 포함하여 결국 인간쓰레기 소모품과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염없이 술만 퍼마시며 난데없이 고성방가하며 노가리나 뜯었던 인생의 가장 부질없었던 지난 2년은 이 친구와 함께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 지금은 다시 인생 고공 승진하겠다고 또 다른 사업을 일구는 중인데 담보 대출이 얼마인지 본인이 스스로 경각심을 느끼고 행했으면 좋겠다. 친구의 하염없는 걱정이 이제 곧 오지랖이 아닌 또 다른 조언으로 듣길 소 귀에 경 읽기가 아니길 간절히 빈다. 이 녀석은 처음 친구 녀석보다 다사다난했던 짜식이라 온전히 내가 맨 정신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더라.
마지막 친구는 내 인생에서 우여곡절 내리막길을 찍다 못해 지하통로 개척에 몰입했던 녀석이다. 이명박 정권때 이 녀석이 투자했던 수많은 초짜 사업이 파토의 연속을 이어갈 때 집에 독촉장이 날라오고 집문서까지 팔아야 했던 수많은 인생의 변환점을 때아닌 늦은 날에 돌이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군대란 녀석이 결국 요 녀석을 살린게 분명했다만 사람은 결국 못 고친다고 나 또한 고칠 수 없는 병명을 드러내놓으며 결국 돈 관계까지 얽히고 설켰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된다. 친구는 친구다. 다만 가족은 물론이고 돈과 얽힌다면 이건 가족도 아니고, 그 아래인 친구도 아니다. 친구는 그저 친한 인간에서 지나쳐갈 인생의 한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지 지난날을 회상하고 곱씹으며 그저 넌 어디선가 깜빵에서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추운 날이지만 아직도 두부가 이빨 시려 못 먹겠다는 하찮은 말도 괜찮으니 그냥 잘 지내길 빈다.
원래 ㅈ같은 추억도 결국 회상되고 하나의 인생 일대기 에필로그로 자리 잡힌다.
조만간 넌 하나의 인생 일대기를 만들 최악의 적이자, 최적의 친구로 자리 잡히겠지.
인생 친구들이 너무 많다.
대학교 시절부터 함께 했던 또 다른 패밀리하며,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응원단 친구들, 보라카이 가이드 친구들(사실 70프로가 다 대학교 친구들이다.), 여행사에 다녔을 무렵 함께 술팸을 만들기도 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름 모를 친구들, 청파동 어느 빠 술집에서 만난 지인들과 사람들... 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곡선이 굉장히 많았던 친구들이자, 선배, 후배들이다. 그들의 동반자 역할을 제때 수행하지 못해서 못난 내가 아니라, 난 진혁이라는 그저 그런 사람 중의 한명이길 간곡히 기대했다. 지금도 그렇다. 나라는 사람도 못바꾸는데 그러한 사람들을 바꾼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라 멘토겠지. 하지만 그 순간부터 갑을 관계가 생기고 돈 관계에 얽힌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난 이 자리에 머물러가길 그렇게 빈다.
추운 겨울날, 이름 모를 간판이 쓰러져갈 로컬 포장마차 안에서 20대 초중반 녀석들이 뭘 알겠다고 하염없이 만신창이가 된 술 하소연을 연거푸 외치며 옆 사람과 싸우며 다음날 눈을 떴는데 친구 녀석 침대 위에 오바이트를 했던 그날의 쓰라림까지- 모든 것은 인생의 굴곡점에서 시작되었고 비로소 내가 완성되어가는 하나의 자리이다.
내가 이 글을 적는 것은
너가 이 글을 보고 만족하고 발전하라는게 아니다.
그저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친구들아.
망나니처럼 살던 연희동 K, L형님, S, 화곡동 얼간이 J, 제주게하사장으로 떠난 K2, 화곡동 패밀리 E3-3녀석들, 대전망나니팸 3-2J패밀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