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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Nov 02. 2022

내 인생 꽃갈피를 만지작거리며

허망된 메아리만 울려퍼지고.

인생의 운명론적 관점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만, 적어도 돌잔치 때 어떤 용품을 잡느냐에 따라 인생의 갈림길이 결정된다는 미신을 예로부터 믿어왔다. 난 사실 보이는 거에만 집중하는 녀석이다. 과학에 신봉하지만 미신은 불신한다. 귀신이나 악마, 심지어 철학적인 부분은 안일시했다. 하지만 내가 예술에 눈을 뜬 계기는 환경적 영향이 컸다. 사촌누나인 인경누나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응원단 동아리, 에버랜드 공연단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보라카이 가이드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 등등 정말 다양하다. 난 어쩌면 돌잔치 때 잡았던 건 펜이나 붓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한테 물어보니 난 돈을 찢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배고프다는 증거라며 나에게 제발 돈 되는 일 좀 해달라며 간청하셨다. 애증 어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아, 네네 지금 돈 열심히 벌고 있잖아요. 본업은 이벤트 기획, 부업은 코인, 취미는 작가.


엄마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그럴 바에 그냥 잠이나 쳐 자라며 허망된 꿈은 꾸지 말라며 또 꾸짖으셨다.

이런 그녀가 좋다. 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갑자기 던지셨다. 너도 조만간 꼰대 되게 생겼다. 원래 어릴적부터 생각이 많은 친구들이 크면 반항심이 생겨서 젊은 꼰대가 되거든. 정말이다. 난 이런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든다. 나도 점점 mz세대 중 유일한 젊은 꼰대가 돼간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에 끼게 되었다. 행복하다. 그래서 난 어떤 운명을 살 것이냐가 중요하다만 정답은 모르겠다. 적어도 돈을 찢었으니 그 반대로 돈을 붙이면 재벌이 되지 않을까? 그럼 안되는 이유만 생각하지 말고, 되게끔 하는 이유도 자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

요즈음 어딜 가나 이태원 참사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슬픈 언약식 같았다. 인생의 허망함이랄까. 나 또한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생은 운명이지. 3일째다. 여전히 뉴스나 언론, 여론에서는 이태원 참사 이야기가 자자하다. 하다못해 정부의 행정력까지 엮이면서 정치판으로 올라섰다. 그로 인해 젠더갈등, 세대갈등에 이어 또 다른 이슈가 되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들의 죽음은 애도로 끝나면 된다는 나의 생각. 언제까지 우려먹으며 정치적으로 악용될지 부지기수이다. 참으로 한탄스럽다. 덧붙이면 이걸로 돈을 벌자는 심보로 SNS에 보란 듯이 필터링 거치지 않고 올리는 머가리 없는 사람 새끼도 못한 짐승들이 들끓는다. 그로 인해 뉴스나 커뮤니티를 삭제했다. 어딜 가나 다 그 이야기이다. 식당에 가도 그 이야기이다. 친구들과 이야기해도 그 이야기이다. 그런데 있잖아. 그들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냐고? 많은 영향을 끼쳤지. 지금부터 이야기해줄게. 


이벤트 기획사의 하소연

난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불쌍하다. 한 번뿐인 청춘을 날렸다. 유가족들은 뭔 죄인가. 지인들의 처참한 곡소리가 여전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냄비근성 여전하다. 언제까지 착한 척 코스프레 다하고 일주일 뒤면 다시 잠잠해질걸?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 결국 원상복구다. 세월호 때도 안 이랬다. 학생이기에 20대 청년들의 죽음보다 더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만 불 싸질렀던 그때를 기억한다. 물론 나도 어려서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그들의 죽음은 순국선열인가? 난 차라리 천안함 사건을 더 애도하고 추모하고자 했다. 적어도 국가에 이바지했던 분들이었기에 말이다. 이태원 참사. 국가 이바지. 전혀 상관없다. 그저 감성적인 판단에 의하면 죽음으로 인한 슬픔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식어버린다. 난 그래서 이런 군중심리가 참으로 싫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이제 그만 듣고 싶다. 길거리 어딜 가나 다 떠들지만 결국 남는 게 뭐야? 허망된 그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남용되길 바라지 않아.


11월은 축제, 행사가 지속되는 날이다. 가을야구, 대학 축제, 각종 지역축제 등등 대표적인 관광지 활성화를 명목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바에 따라 특정한 예산을 퍼주고 대한민국 경제 내수 활성화를 위함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70프로가 대부분 국가 예산이다. 국가에서 퍼주는 돈으로 지역 축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30프로 축제는 대부분 사설 축제이다. 예를 들면 한화, 삼성, 한화 등 몇 개 클라이언트 및 스폰서, 대형 광고주를 끼고 축제를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눈물 나는거 하나 알려주마.


정부 주도의 축제는 국립대학교라 생각하면 된다. 예산이 대부분 짜여 있다. 투명하게 확보되고 씀씀이가 적절하다. 그리고 통제력이 확고하다. 반대로 사설 축제는 대기업의 역량 차이에 따라 관광 활성화 명목에 상당한 영향력 변수 굴곡이 심하다. 한화가 이번에 썼던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과연 돈을 얼마나 썼을까? 참가객들의 만족도는 몇 퍼센트일까? 푸드트럭의 개수는 적정했나? 혼잡도는 계산되었나? 주차시설은 어땠는가? 시민들의 통제력과 안전성은 미리 확보되었는가? 지자체에게 행사 홍보뿐만 아니라 안전 관리 규칙 또한 허가를 받았는가?...


난 축제의 '재미'도 좋지만 결국 '행정력'에 더 관점을 두고 싶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섭외, 현장 관리, 사후 관리까지 모든 게 다 이 행사의 절차이다. 그걸로 먹고사는 나였다. 


그런데 엊그제 이태원 참사가 터졌네? 이태원 축제는 국가사업이 아니다. 사설 업체들끼리 짜고 치고 모여 만든 글로벌 축제라는 명분으로 휩싸인 행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태원하면 떠오르는 게 할로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연하다. 20년 전부터 그런 지역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결국 아까 위에 언급했다시피 사설 업체들이 껴있기 때문에 지자체에게 안전 관리 규칙과 허가를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당연할까? 당연할리가..? 당연하다고...? 그럴리가...


당연할리가 없어.


세상에서 100프로 당연하다는 건 없다. 99프로 된다고 반올림하고 그걸 확실히 '당연'하다고 할 거야? 말에 어폐가 있다. 공문 조작, 위조하면서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말에는 항상 '책임감'이 뒤따른다. 결국 이 사태 일어나고 당연하다고 장담할건가? 이 이태원 참사의 주원인을 어디에 중점을 둬야할지 모르겠다. 




책임론 : 국가 VS 개인

정말 예민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내 블로그니까 올릴거야. 볼 사람 봐도 된다.

난 중립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번 사건 계기로 꽤나 큰 충격을 받았어. 일단 솔직히 말해서 중립이라 칠게. 다만 단점들이 너무 개개별로 확고해서 써야겠어.


첫 번째. 국가 입장에서 이 사건에 책임을 진다면 축제 행정 통제력이야.

이번에 수리남 영화 여파가 깊게 터져서 할로윈때도 영향력을 발휘했다며. 결국 경찰 인력 200명 정도가 마약 단속반으로 투입됐지만 그 10만 명 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이겨내겠어? 그저 허울에 불과한 보여주기식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어. 일례로 예전 승리 버닝썬 사건 때에도 그러한 경우가 대다수였어. 경찰과 친한 사이가 만연한 혈연주의에 속아 국민들은 눈이 뒤 짚여졌잖아. 이번 할로윈이라고 다를 바 없겠지. 윤석열 정권은 지금 용산구에 자기 집무실 이전과 함께 개발을 지속하려고 했단 말이지. 그런데 하필 이태원 참사가 터졌어. 그럼 현 정권은 이 사태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했던게 거품이 돼버릴까 봐 더 고민했겠지. 그러니까 재난지원금 비슷한 피해 보상금을 지원해 준다는 명목이었고, 이를 재해로 표현했단 말이야.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난 그래. 이게 재해라면 재난이었던 코로나랑 동급 취급한다는 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태원 참사를 국가재난으로 선포한 윤석열아 눈 크게 뜨고 봐라. 넌  그저 용산구에 혈안되어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거 같아. 


두 번째.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의 개인적 참여 권리야.

어차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야.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구속을 받지 않지만 책임이 뒤따르지.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 결국 유가족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지.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상황에서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한 현장 참여자들에게도 무료 치료 예산을 퍼부어준다는 거야. 그럼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 겉으로 표현 안되는 예산이 속으로는 더 썩혀들겠지. 남용된다는거야. 돌고 돌다가 결국 국민 혈세가 다 빠져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피해를 남기게 된다는 말이지. 이미 말했지만 추모는 좋아. 하지만 분향소를 일주일 내내 지속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무한한 애도와 추모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 어차피 개인 참여는 자신의 권리이니까. 감정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게 맞는 거지. 그저 난 그들의 운명이었다고 봐. 숙명이지. 그냥 그저 안타까울 뿐이야. 그걸로 된 거야. 하지만 거기에 꼭 갔어야했나 싶기도 하다. 하아


마지막으로


축제 행사 기획자들은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는가.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의 헛된 이미지 덮기에 신물 난 우리들, 그리고 이미 죽은 자들에게 원망할 수도 없잖아.


내가 일반 사무직이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난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11월에 잡힌 모든 행사, 축제 대부분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서울에서 이미 축제 행사 취소 공문을 발표한지 2일째야. 일주일만 버티자. 반 백수가 되어버린 나의 신세를 누구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까.


적어도 이런 업을 먹고사는 우리들은 참으로 고달픈 인생에 살고 있다.


.

.

.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이런 말 해봤자 달라질 건 없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정부는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고.

그저 너가 이태원에 없었다는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고.


.

.


난 정말 옳은 생각을 가지고 이 글을 적는걸까?

모르겠다


예민하다 나

요즈음.

.

.

.


서늘함이 더 감돈다. 추위는 매섭다. 행사 어차피 못할 징조였나 싶다.

배고프다. 굶주린다. 그렇게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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