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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Oct 02. 2022

혁이의 심리 보고서 [1]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평소에 나에 대한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좀 아쉬울 따름.


일에 치여살다보니 객관안에 확연해진 현실주의 나를 맛보게 되었고, 결국 본능적인 이상주의자 enfp의 일탈은 사라지고 말았다.


허나 겉으로는 현실, 속 마음은 언제나 이상을 꿈꾸는 나에게

다시 한 번 더 도전을 하며 속마음을 풀어헤쳐본다.




연애관

J가 자주 물어본다. "넌 왜 연애를 안 하냐? 게이냐?" 그래 이제야 말해본다. 난 확실히 '게이'가 아니다. 당연히 이성주의자이다.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연애관을 2위로 미루었다. 1위는 일이다. 나의 성공을 위해 일을 하거나 스스로에게 투자 한다. 아무튼 우스갯소리를 해본다. 당연히 J는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내가 듣기에는 그만큼 일에 철두철미하여 연애가 소홀하다는 점을 돌려말해 나에게 각인시키는 듯하다. (사실 남들에게 내가 여자친구와 연애한다는 이야기를 소문내고 싶지는 않다. 썸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 아직 2달이니까. 물론 내 블로그를 보는 내 지인들은 이제야 무릎을 탁 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난 이성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다. 하지만 공적인 부분에서는(일 포함) 현실주의자이다. 


그렇게 바뀌어간다. 연애 또한 그렇다. 처음에 썸이란 것 자체가 이상주의와 낭만주의로 물들어진다. 하지만 점점 현실적인 본능이 드러난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순간 연애 관계는 갑을관계로 변질될 수도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녀 차별, 차이를 떠나기 전에 균등하게 서로 사랑을 주고 보듬어준다는 것. 이론적인 부분은 누구나 알 것이다.


플라톤이 그랬다. 사랑은 무조건, 무의식적으로 주면 안 된다고. 그저 균등하게 5:5로 가지라고. 그럼 누군가가 따지고 언급하겠지.


"연애는 순수한 마음이 아닌가요?"


응 아니야. 그건 너무 순수한 바보야. 반대로 생각하면 그 바보를 가지고 놀 양아치가 언젠가는 밝혀지고 서서히 드러난다. 아니면 옆에 있을지도. 현대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연애관계가 상위, 하위로 구분되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 그저 봉건제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노예로 남을 것이냐. 부농이 될 것이냐. 아니면 그 상위권이 될 것인가. 잔인한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조차 생각하는 나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스스로 연애관은 아직 미숙하다고 느낀다.


허나 과연 사랑 앞에 무조건적이란게 있을까? 어쩌면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이기주의 만연한 인간 본능 심리에 취해 그 가면을 쓰고 연애를 하는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자주 성찰해야한다. 난 가끔 일기를 쓴다. 연애일기뿐만 아니라 사람관계 일기에 대해 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내가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반성할 기미조차 1프로 안 보인다면 그 사람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나 혁이는 장담하는데 블로그를 계속 연재하는 이유에 있어서 사실 사람관계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연애라고 해서 전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뒤덮을 생각은 없다.


어쩌면 연애란 것은 스스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상대방과 서로 사랑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결혼관

L이 언급했다. "너 결혼 안 해?". 난 결혼은 서로 의미가 맞을 때 하는 법이라고 느낀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5:5 균등한 관념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사랑을 수치화시킬 수 있을까? 당연히 어렵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수치적인 부분은 그저 허물에 불과하고 다시 달콤하게 말하자면 서로 아끼고 보듬어준다는 관념이 서로 머릿속에 박혀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게 1순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 연애관에서 이미 실패였다. 우선순위가 당연히 2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혼 관념 또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미 치고 올라오는 결혼 달리기 대회에서 난 그저 꼴찌로 밀릴 뿐이었다. 상대주자들과 동시에 달리고 있어도 평균 속도 이하로 달리는 내가 결혼이라는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들과 상대 우월적인 비교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본다. 고민거리는 아니다. 나의 1순위 커리어 부분이 확정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돈이다. 결국 자본주의 시대에서 결혼은 사치일 것이냐 아니면 행복일 것이냐로 구분될 것이다. 돈이 없는 남편이 될 것인가. 그 반대급부가 될 것인가. 물론 후자가 좋지. 그래서 주말에도 열심히 일한다. 참고로 여자친구가 "오빠 뭐해?"라고 말할 때, "응 나 쉬어."라고 말하는 쉬운 남자가 되기 싫다. 말이라도 저 정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연애 센스는 배우는 것이다. 못 배우면 죄이다. 웃기게도 그게 당연한 요즈음 세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애관은 곧 결혼관으로 이어진다. 경제적인 부분은 후술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




직업관

N잡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이제부터 조금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간다. 공적인 부분이 얽혀있으니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남자는 20대 후반 30대 초에 들어서면 갈팡질팡하는 오춘기가 한번 온다. 일명 직업관에 대한 사춘기이다. 이 일이 정말 적성에 맞을까, 아니면 그 지옥일까. 난 그렇게 겪어오는 중이다. 지금도 오춘기이다. 생각보다 버티기는 쉬웠다. 문제는 그 버티는 과정이 올바른 방향인지 아닌지 그것이 내 미래를 결정했다. 지금 내가 편한 길을 택하자고 우회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당장은 편하겠지. 그저 안내해준 대로 따라가니까. 하지만 30대 초로 진입한다면 과연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톱니바퀴 일부에 불과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사 없다고 기계 작동 못하는 톱니바퀴 인생이라면 난 스스로 자책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거기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어찌 되었든 여러 피드백을 받고 쓴소리 마다하지 않고 계속 부딪혀봐야 한다.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은 좋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바꿔볼까?"라는 더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즈음 빠르다면 20대 중반부터 스스로 사업을 차리거나 가맹점이라도 준비하는 젊은 후배들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게 요즈음이다. 그 친구들로부터 많이 배우는 것도 정석이다. 경험과 경력을 많을수록 좋다. 물론 많이 싸울 것이다. 그들은 사실 현실적으로 나의 거래처가 되어 일적인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외나무다리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영업직일수록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 끝에 낙이 오고, 피와 눈물범벅의 결과 큰 보람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난 그 일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난 회사원이 되기 싫었다. 사실 그랬다. 회사원 하면 떠오르는 고리타분, 사무직, 의자, 컴퓨터, 네모, 회색, 반듯한, 정적인, 타자소리, 회색소음, 백색소음 등 이런게 난무한 키워드가 싫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입장이다. 어떠한 사무직에 업을 삼고있는 분들을 조롱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1도 없다.) 조금 더 힘들더라도 다방면, 상쾌한, 밝은, 다양한, 창의적인, 소통, 센스적인, 융통성, 알잘딱깔센 이런 용어가 더 좋다. 그래서 난 프리랜서가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그게 조금 더 성장한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연애관뿐만 아니라 직업관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자부하는 점이 있다면 결국 이벤트기획사와 여행사를 다녔던 이유에 대해 후회가 없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말이다. 결국 사람을 좋아하니까(사람을 원망하고 극도로 분노했던 날이 많았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풀어지더라. 그게 인생이고 인간 본능이더라.)



나머지는 추후에 올려야겠다. 힘들다.

글 쓰는 것 또한 일로 삼으면 힘들다.

문제가 된다고 느끼는 것을 문제로 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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